ⓒ 김연주
행정대집행이 있었던 날로부터 보름여가 지났다. 2006년 5월 4일. 끝도 없이 밀려드는 전경들이 한순간에 학교를 포위했고, 곧이어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부상자와 경찰에 의해 끌려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저녁마다 촛불이 밝혀지던 학교가 부서지고, 불과 몇 달 전 대보름 달집을 태우며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던 그 운동장이 파헤쳐졌다.
헬기가 실어 나른 철조망이 논바닥에 부려지고 공병부대는 신속하게 철조망 설치작업을 진행했다. 분노와 슬픔을 못 견뎌 주민들은 길바닥에 뒹굴면서 울부짖었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마치 실성한 듯 전경과 용역 깡패를 따라다니며 모래를 뿌렸다. 날이 저물자 사람들은 눈물이 차오른 가슴으로 어김없이 촛불을 들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하루였다.
행정대집행이 있기 전까지 주민과 지킴이들은 160만 평이 넘는 들녘에 볍씨와 비료를 뿌렸다. 그때 뿌린 볍씨에서 푸른 실처럼 돋아난 싹이 가뭄을 견디면서 자라고 있지만 이제 그 땅은 우리가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없는 땅이 되었다. 논으로 난 길은 모두 끊어지고 군 초소가 세워졌다. 볏짚을 태우는 연기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논을 가는 트랙터 소리가 들려오던 들판에서 지금은 군가를 부르며 군인들이 구보를 하고, 굴착기와 덤프트럭들이 드나들고 있다. 논으로 나가지 못한 농민들은 아침마다 언덕에 올라서서 ‘군사시설 보호구역’이 돼버린 들판을 망연히 내려다본다.
학교와 들판을 강탈당한 것 말고도 대추리와 도두리는 한 달 전과는 너무도 다르게 바뀌었다. 사복 경찰들은 아무 때고 마을에 들어와 골목길을 누빈다. 군인들이 탄 지프차가 오가고 길을 잘못 든 군용 굴착기가 마을을 가로질러 지난다. 밤 열시 무렵이면 수백 명의 전경들이 군홧발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면서 마을을 빠져나간다. 올해 10월 이후에 강제 퇴거를 실시하겠다는 국방부의 발표가 있었고, 길모퉁이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주민들의 불안은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것은 주민들에게 가장 큰 고통이었다. 골목길에 앉아 규찰을 서거나 경찰에게 항의하는 것으로 채워지던 일상은 무력감을 몰고 왔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철조망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민가 가까운 논에 물을 대는 작업을 개시한 것이다. 트랙터가 물을 채운 논을 갈고 비료를 뿌렸던 지난 5월 12일. 할머니들의 얼굴에 오랜만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이런 날은 소주를 마셔야 해’하는 이야기가 오갔다. 점심때가 되어 부녀회에서 준비해온 ‘들밥’을 나눠 먹고 논두렁에 앉아 트랙터가 작업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먹이를 찾는 황새들도 하나 둘 트랙터 곁으로 날아들었다.
ⓒ 김연주
모내기 작업은 도두리에서 5월 16일에 이뤄졌다. 무지개가 그려진 ‘대동 레인보우 이앙기’가 한 뼘 정도 자란 모를 싣고 논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거울 같은 수면에 푸른 모가 꽂혔다. 논가에 이르러 이앙기가 방향을 바꾼 자리에는 골이 파였다. 할머니가 쇠스랑으로 논바닥을 골랐다. 아들의 낡은 군복을 잘라서 만든 토시를 양팔에 끼고,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고무장화를 신은 할머니의 움직임은 힘겨워 보였다. 지킴이 한 명이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맨발로 논으로 들어가 할머니의 쇠스랑을 대신 잡고서 일을 했다.
논두렁에 앉아 쉬면서 할머니는 ‘길을 메운 전경 버스 때문에 시내버스가 마을로 들어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밤늦게 퇴근하는 딸은 마을을 둘러싼 전경들이 무서워서 안중의 오빠집이나 수원의 언니 집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들판의 가운데에 자리 잡은 도두리에는 경찰들이 온 마을에 포진해있다. 들판으로 이어진 골목 입구에는 전경들 예닐곱 명이 지나는 이들을 감시한다. 마을 인근에는 전경들이 먹은 도시락의 일회용 상자와 음료수통, 컵라면 용기 등이 분리되지 않은 채 산적해 있다. 새벽 네 시까지 굴착기의 소음이 계속된다. 대추리로 난 길을 통제하는 탓에 도두리의 주민들은 저녁이면 열리는 촛불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날이 잦아졌다. 이러한 현실은 주민들의 심장을 휘감는 또 하나의 철조망이다.
가뭄으로 논바닥은 갈라지고 있는데, 끊어진 수로에서는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는다. 벼이삭을 키워내던 물줄기는 철조망 가에 파놓은 구덩이로 흘러들 뿐이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보리는 벌써 이삭이 모두 패었고, 지난 가을에 심었던 마늘도 푸르게 자랐다. 어린 벼와 실하게 여물어가는 보리와 마늘이 자라는 땅이 굴착기와 군홧발에 짓뭉개진다. 그것을 지켜보는 농민의 가슴에서는 흐르는 붉은 피 같은 노을이 저녁이면 황새울 들판 위로 번진다. 철조망을 걷어 내고 평화를 옮겨 심을 사람들을 저 들판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