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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해대는 이사, 가는 집마다 문제는 꼭 있더라
월세 16만원짜리 산동네에서 살 때는 술 취한 젊은 녀석에게 쫓겨 헐레벌떡 뛰어내려오다 내리막길에서 구르기도 했었고 대림동 반지하 방에서는 기사에도 적은 적이 있지만 귀신놀음에 죽어나갈 뻔한 적도 있다.
그뿐이랴, 새벽 댓바람부터 물난리를 겪어 날이 새도록 물을 퍼내야 했던 적도 있다. 물론 수재의연금으로 꽤 괜찮은 금액이 들어와 '오호, 요거 할만하네' 하는 철딱서니 없는 생각도 했었지만.
옆집 조폭이 문 두드리며 물 좀 달라고 해서 "댁의 집 수돗물 퍼먹어!" 소리를 지른다거나 한여름 쓰레기도 치우지 않는 그 조폭들을 상대로 겁대가리 없이 바락바락 대들며 싸운 적도 있다.
우유배달원을 사칭한 도둑에게 잠결에 문을 열어줄 뻔했다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고 빌딩 옥탑방에 살 때에는 밖으로 나 있는 욕실을 한 겨울에 오가며 차가운 입김을 "호오 호오" 불어댔다.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이 가락동의 빌딩 4층 집. 다행히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혼자 살기엔 크고 깨끗한 집을 얻었다. 그나마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1년여 동안 '글질' 하느라 다 까먹어버렸지만 말이다.
그래도 옥상에서 2년, 4층에서 1년여를 살아서 정이 든 동네였는데 얼마 전 목동으로 이사를 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정착할 이유 없는 '독거소녀'가 살던 곳이 질린다거나 좀 다른 바람을 넣고 싶다거나 하는 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이사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할아버지들은 나의 힘, 손녀인 척 앙탈부리기
손에 쥔 돈에 맞는 집을 찾자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흘러 흘러 지하철 노선도 따라가다보니 목동이 나왔고 무작정 부동산에 들어가서 외쳤다.
"집을 내놓아라!"
그리하여 대머리 부동산 할아버지가 내놓은 집이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5(만원)짜리' 옥탑방. 그러나 난 누가 집 얻으러 온 건지 모를 정도로 '무대뽀'.
"돈이 없으니 조절을 하시오!"
말 그대로 부동산 할아버지 앞에서 '땡깡'을 피웠다. 원래 남에게 민폐 끼치는 것은 극도로 자제하고자 하지만 일단은 대머리 할아버지가 인상이 참 좋아서 손녀뻘 되는 내가 우기면 들어주실 것 같았다. 외할아버지가 부동산을 오래 하셔서 알 수 없는 친근감까지 더해졌는지도 모르겠다.
36년생, 우리 할머니와 동갑이신 주인 할아버지와 '샤바 샤바' 하시더니 대뜸 '200에 22'로 깎아주신다니, 어찌 이 아니 횡재일소냐.
주인 할아버지는 군인출신으로 서글서글한 성격에 목소리도 엄청 크셨고 돈도 대충 되는 날 정해서 약속만 지켜주면 된다 하시니 그저 고마울 밖에. 이사문제로 거의 한달을 신경을 썼던 탓에 이 날의 쾌거는 '30년 자랑거리'가 될만한 것이었다.
주인 할아버지의 뒤를 '쫄레쫄레' 따라가 처음 들어선 옥탑방. 아담한 평상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대, 널널하게 널려 있는 빨래줄. 혼자 살기에 충분한 방, 깨끗한 주방과 욕실.
뭐 어른들이 보면 옥탑이 거기서 거기지, 궁상떤다 하실지 모르지만 또 젊은 사람들에게 옥탑방은 나름대로의 '로망'이 아니던가. 어차피 그 전 집에서의 보증금도 다 까먹은 판국에 이만한 집이 어딨냐 싶어서 냉큼 계약을 했다.
이사 당일, 어이없는 가스비 연체료 70만원을 내고 이사비용 펑크가 나서 급조를 하고(도통 계산이 어떻게 되길래 4개월에 70만원이 나오나) 이삿짐 옮기느라 방충망 땠다고 5만원 뜯기고 원래 깨져 있던 유리창을 내가 살면서 깼다고 또 5만원 뜯기고 작은 냉장고와 행어 하나 버린다고 10만원 홀라당 뜯기고(그나마 냉장고는 내놓자마자 누가 가져가더라)….
가진 자여, 그대 이름은 집주인이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집주인 아저씨의 안면몰수에 기도 막혔지만 어차피 다시는 오지 않은 집, 싸워봤자 이사가는 날 기분만 잡치지 싶어 다 줘버렸다.
다시 시작, 옥탑방 꼬냥이 복귀... 고마운 친구들
우여곡절 끝에 덜덜거리는 1톤 트럭은 가락동을 떠나 목동으로 향하고 그래도 헛살진 않았는지 혼자 꼴랑거리며 이삿짐을 싸놓고 나니 도와주겠다고 나선 친구, 동생 녀석들까지 7명의 인부들이 모여들었다.
이 녀석들이라고 뭐 크게 이사에 대해서 알랴, 하지만 뭉치면 산다고 공구 챙겨온 녀석부터 걸레 들고 사방팔방 닦아내는 녀석, 남는 건 힘밖에 없다고 그 무거운 가구들을 번쩍 번쩍 들어 옮기는 녀석. 이사를 끝내놓고 나니 집들이하자고 부산, 강원도에서까지 달려와 준 녀석들.
대충 짐을 옮기고 정리해놓고 나니 다들 지칠 대로 지쳐 있는 모습이 고맙고 미안해서 그 마음을 술로 되돌려주었다. 그래, 어차피 돈 받으러 온 아이들도 아니고 밥 한끼, 술 한사발 함께 하자고 온 아이들 아닌가. 봄의 끝자락 살랑거리는 바람 속에 옥상 평상에 모두 걸터앉아 밤이 새도록 부어라 마셔라, 노래 부르고 이야기하며 옥탑방 꼬냥이의 첫 날을 기념했다.
이렇게 나의 타향살이 10년 중에 또 한번의 이사가 잘 마무리 되었다. 뭐 며칠 살다보니 주인 할아버지도 만만치 않게 깐깐하신 분이고 주인 할머니 잔소리도 우리 할매 버금 가지만 그래도 이 집에 정이 가는 건, 나 혼자 쓸쓸하게 짐 싸들고 들어온 곳이 아닌 친구들의 도움과 힘으로 하나하나 자리를 잡은 집이기 때문일 것이다.
볕 좋은 날 빨래줄에 빨래를 널어놓고 옥상을 사방팔방 검둥개처럼 뛰어다니는 복댕이, 삼식이를 바라보고 창 밖으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것, 가끔씩 술 댓병 사들고 찾아와주는 사람들과 평상마루에 앉아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것, 아직은 이 정도면 된다. 아직은 이 정도의 낭만으로 숨쉴 수 있는 것이 젊음 아닌가.
이렇게 28살, 옥탑방 꼬냥이의 새로운 역사가 다시 쓰여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