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서 '당그니의 일본표류기'를 즐겨봤어요. 그런데 출판기념회를 열 때까지도 몰랐죠. 이 책의 저자가 대학 때 '다형(김현승 시인)문학회'에서 절친했던 선배인 줄은." - 이정운(28·경기 부천)
"플로리다에서 유학 생활을 하는데, '당그니'의 경험담과 생생한 일본어가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방학 때 잠시 한국에 왔는데, 팬으로서 출간 사인회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 류지현(24·류지현)
20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4층 컨벤션홀. <당그니의 일본표류기1> 출간기념 사인회를 겸한 강연회(미다스북스 주최)가 열린 이곳은 여느 인기 연예인의 사인회를 방불케 할 정도로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저자 김현근(33)씨는 환한 미소를 띤 채 팬들이 구입한 책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든 글을 써주었다. 홀을 가득 메운 150여명의 팬들은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팬들은 고등학생부터 40대 중년까지 다양한 연령층을 이뤘다.
김씨는 지난해 8월부터 <오마이 블로그>에서 생생한 일본 유학 생활 이야기를 그린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표류기'(1~36화)를 연재해 왔다. 많은 고정 팬들을 확보한 인기 블로거로서 온라인에서 받은 성원을 바탕으로 이번에 <당그니의 일본표류기>를 책으로 엮게 됐다. 블로거에서 저자로 데뷔한 셈이다.
이날 강연회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의 축사로 시작됐다.
오 대표는 "저자는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하며 정보를 제공하고 동시에 의미있는 메시지도 전달해주고 있다"며 "자신은 일본을 '표류'했지만 남들은 '안착'시켜주고자 하는 서포터로서의 역할이 인기의 비결"이라고 평가했다.
또 오 대표는 "<오마이뉴스 재팬>의 창간을 앞두고, 일본에 당당히 불시착한 당그니의 개척정신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저패니메이션의 핵심은 장인정신"
강연회는 1부 '저패니메이션(일본 애니메이션)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와 2부 '스미마생(실례합니다)의 일본학'으로 나눠 진행됐다. 김씨는 "샤프한 당그니 캐릭터와 실제 모습이 달라 실망하셨을 텐데(미안하다)"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김씨는 '50년 일본 애니메이션의 저력'은 적은 예산으로 큰 효과를 올리기 위해 다양한 기술과 이야기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음을 강조했다.
김씨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으로 유명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경우에는, 적지만 안정된 월급을 통해 준비된 생산 인력과 기반을 마련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씨는 무엇보다 "저임금을 받으면서도 정해진 일을 끝까지 해내는 장인 정신, 하야오 감독과 같은 유명 작가도 그림 하나하나를 다 손보는 꼼꼼함이 한국과 큰 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저패니메이션의 중심축이 극장판이 아닌 텔레비전 시리즈에 있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드래곤 볼>과 <슬램덩크>로 유명한 '토에이', <명탐정 코난>을 만든 '도쿄 무비', 그리고 '매드하우스' 등 5대 주요 회사가 많은 텔레비전 시리즈를 만드는 과정에서 숙련된 인력들을 배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극장판 또한 효율적으로 제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일본 애니메이션의 힘은 활성화된 만화시장에 있었던 것. 만화 원작의 인기가 텔레비전 판의 제작을 쉽게 하고, 또 텔레비전의 인기가 극장판의 인기로, 다시 원작의 인기로 이어져 선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얘기다. 김씨는 한국의 애니메이션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만화시장이 살아나야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한 그는 "한국 아이들이 일본 캐릭터에 열광하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둘리는 나이가 너무 많다, 쉽게 만들 수 있는 또다른 캐릭터가 뭘까 고민한 끝에 '당그니'가 나오게 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김씨의 꿈은 10년 정도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을 배우고 한국에 돌아와 '환상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당그니의 일본표류기>의 출간은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한 출발인 셈이다.
"쓰미마셍의 본질은 스트레스"
김씨는 일본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실례합니다(쓰미마셍)'라고 전했다. 일본에서 이는 '당신에게 피해를 끼쳐 죄송합니다'란 의미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면 자신에게 피해가 올 것이라는 다소 무서운 발상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자기 아이가 납치를 당해 죽은 시체로 발견되어도 언론에서 "쓰미마셍, 세상을 소란스럽게 해서 미안합니다"라고 할 정도라고. 한국에선 오열하거나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하는 게 보통이지만 일본에서 무서우리만큼 이 말이 보편화되었다고 한다.
일본 사회가 단결력이 강한 이유도 이와 관련있다. '남에게 피해 주지 말고 내 일만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 모자이크처럼 뭉치면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씨는 "이 같은 '쓰미마셍의 문화'는 무척 피곤한 일"이라고 토로했다. "항상 세세하게 다른 사람을 신경 써야 하고 꽉 짜여진 틀에서 생활하는 것이 종종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날 강연회를 찾은 100여명의 팬들은 내내 흥미로운 표정이었다. 김씨는 강연을 마치면서 "월차까지 내고 한국을 찾은 보람이 있다, 아는 사람만 있을까 걱정했다"며 "앞으로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편 <당그니의 일본표류기1>는 이날 출간기념 사인회를 겸한 강연회에서만 약 190여권이 판매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