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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을 여행하는 사람은 템즈강과 빅밴을 들르게 된다. 크지 않은 물줄기와 탁한 물의 흐름에서, 별로 신기할 것도 없는 강에서 그리 많은 이야기와 로망이 어우러지며 영웅들과 연인들이 노래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유로터널의 영국 쪽 출발지인 트라팔가르 광장은 그리 크지 않는 공간으로 넬슨 제독의 동상이 높이 세워져 있다. 영국과 프랑스의 자존심 대결인지는 모르되 나폴레옹을 격파한 넬슨 동상이 있는 곳을 출발지로 삼은 영국인의 숨은 심리를 짐작해 보게 한다.

넬슨(1758∼1805)제독은 영국 노퍽 출생으로 1770년 해군에 입대하여 1780년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한 후, 프랑스의 혁명전쟁에 종군하여 지중해와 대서양에서 싸웠다. 1794년에는 코르시카섬 점령에 공을 세웠으나 오른쪽 눈을 잃었으며 1797년의 세인트 빈센트 해전에서도 수훈을 세웠으나 오른쪽 팔을 잃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나폴레옹 대두와 더불어 프랑스 함대와 대결하는 중심인물이 되었다. 1798년 나일강 입구의 아부키르만 해전에서 프랑스 함대를 격파하여 ‘나일강의 남작’이라 불렸다.

1805년 10월 21일 트라팔가르 해협에서 프랑스-에스파냐 연합 함대를 포착, 대담한 분단작전으로 이를 격멸시켰으나, 완승 직전에 적의 저격을 받아 기함 빅토리아호(號)에서 전사하였다. 그는“하느님께 감사한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했다”라는 최후의 말을 남겼다. 한 눈과 한 팔을 잃어버린 불구의 몸으로도 그는 영국인의 영웅으로 광장에 높이 서있는 것이다.

영국 트라팔가 광장에 세워진 구족화가 '엘리슨 래퍼'의 동상

이번에 영국 조각가 마크 퀸씨가 임신 9개월의 엘리슨 래퍼를 모델로 해 만든 ‘임신한 엘리슨 래퍼’라는 5m 높이의 조각작품이 런던시의 공모전에서 뽑혀 트라팔가르 광장에 세워졌다. 엘리슨 래퍼(Alison Lapper: 1965∼)는 구족(口足)화가로 양팔이 없고 다리만 조금 붙어 있는 중증장애인이다.

그녀는 2005년 11월에 세계 여성 성취상((Women‘s World Awards)을 수상했다. 시상대에 선 그녀의 모습은 잘 빚은 비너스상의 토르소((torso)를 연상시키듯 아름다웠다. 생모마저 버렸던 육신을 쓸모 있게 가꾸어 마침내 예술가의 꿈을 성취한 그녀의 인간승리는 커다란 감동을 자아냈다.

살아있는 비너스라 불리는 엘리슨 래퍼가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갔다. 그녀는 프랑스 루브르미술관이 소장한 밀로의 비너스처럼 양팔이 떨어져 나가고 없다. 볼썽사납다, 아름답다는 등 논란이 분분했지만 당시 그녀는 사람들은 불편한 것을 피하려 하지만 내가 저 위에 세워져 있는 한 더는 나를 피할 수 없다며, 장애가 있는 사람이 천박하지도 못생기지도 우스꽝스럽지도 않다는 점을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1965년 영국에서 태어난 래퍼는 임신부가 수면제, 신경안정제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인 해표지증(海豹肢症·팔 다리가 물개처럼 짧아지는 증세)을 갖고 태어나 생후 6주만에 거리에 버려져 복지시설에서 자랐다. 그녀는 21세 때 결혼했지만 남편이 폭력을 휘둘러 9개월만에 헤어져야 했고, 남편과 헤어진 후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영국의 해덜리 미술학교와 브라이튼 대학을 졸업하고 예술가로서 새 인생을 개척하게 된다. 래퍼는 결점 투성이인 자신의 신체를 사진으로 촬영해 조각 같은 이미지로 재창조해 보여주었다. 두 팔이 없고 자라다 만 다리이지만 발과 입으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40세가 된 그녀는 이제 사진작가로 더 알려져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의 모습은 밀로의 비너스상의 토르소처럼 아름다움을 갖고 있어 모델로 더 유명해졌다. 그녀는 어릴 때 의수를 잠깐 착용하기도 했지만 장애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기 위해 의수를 벗어 던져버렸다고 한다.

그녀의 모습에서는 절망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다. 두 팔 없이 자라다 만 다리로 걷는 그녀의 모습은 보기 딱할 정도의 뒤뚱거리는 모습이지만 오히려 살아있는 비너스 상이 움직이는 듯 신비감을 안겨준다. 장애인이란 비장애인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일 뿐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이 주신 재능으로 그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리라.

곱사등 '모세 멘델스존'의 사랑이야기

장애인 가운데 20세기의 기적이라 할 수 있는 헬렌 켈러와 맹인 찬송가 작사가인 크로스비 여사가 생각난다. 암과 싸우기 위해 모든 캐나다인으로부터 1달러씩 모으고자 죽음과 맞바꾸며 달리기를 했던 테리 팍스(Terry Fox)의 꿈과 그의 영웅적 사랑과 투쟁은 많은 이의 용기와 사랑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는 복음성가 작사가인 송정미 작가, 미국 상원 인준을 거쳐 미국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 공직자 500명 중 한 명인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인 강영우 박사, 피아노 연주자 희아 등 많은 장애인들이 큰 성취를 이루었으며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독일의 유명한 작곡가 멘델스존의 할아버지인 모세 멘델스존의 실화는 우리에게 마음의 장애와 몸의 장애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멘델스존의 할아버지인 모세 멘델스존은 잘생긴 것과는 거리가 먼, 키도 무척 작은 기이한 모습의 곱사등이었다. 어느 날 그는 함부르크에 있는 한 상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프룸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여인을 알게 되었다.

모세는 그녀를 보는 순간 절망적인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기형적인 외모 때문에 프룸체는 그를 진지하게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여러 번의 사랑의 고백을 거절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을 때 모세는 용기를 내어 프룸체와의 마지막 대화를 시도했다.

그녀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이었으나, 모세 멘델스존은 그녀가 자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에 깊은 절망과 슬픔을 느꼈다. 여러 차례 대화를 시도하다가 기도 가운데 마침내 모세 멘델스존은 부끄러움을 참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결혼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맺어주는 것임을 믿나요?" 프룸체는 여전히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차갑게 대답했다. "그래요. 그러나, 당신은 내 결혼 상대는 아닙니다. 그러는 당신도 그것을 믿나요?" 모세 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한 남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신은 그에게 장차 그의 신부가 될 여자를 말해주지요. 내가 태어날 때 나에게도 미래의 신부가 정해졌지요. 그런데 신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그대의 아내는 곱사등일 것이다.' 바로 그때 그 자리에서 나는 눈물로 소리쳤습니다. '안됩니다, 하나님이시여! 아름다운 여인이 곱사등이가 되는 것은 비극입니다. 차라리 나를 곱사등이로 만드시고 나의 신부에게는 본래의 천상의 아름다움을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나는 곱사등이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프룸체는 고개를 돌려 모세 멘델스존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떤 희미한 기억이 그녀에게 떠오르는 듯했다. 프룸체는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고, 훗날 그녀는 모세 멘델스존의 헌신적인 아내가 되었다.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는 곱사등에다 귀머거리였으나 여주인공 에스메랄다를 진정으로 사랑하여 위기의 그녀를 구했다. 니체는 “꼽추에게서 그 곱사등을 제거하는 것은 그를 죽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약점을 인정하고, 극복할 때 더 큰 도약과 비상을 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우리 주변에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지고 있으나 아직도 너무 부족하다.

이번 엘리스 래퍼의 방한은 참 사랑을 모든 피조물에게 보일 수 없는 우리들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마음이 바로 장애 상태는 아닌지를 되짚어 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사랑하는 우리를 대신하여 장애를 입고 우리 곁에 있는 또 다른 모세 멘델스존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우리도 사회적 약자에 더 관대하며, 영국인처럼 광장 한가운데 장애인의 동상을 높이 세워두고, 차별 없이 모두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날을 고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중앙일보> 캐나다 뱅쿠버 판에도 기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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