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1 장 大 尾
강명이 섭장천과 사형제들이 앉아 있는 자리로 돌아가자 장내는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천동 쪽으로 기울어졌던 힘의 균형이 어느 정도 맞추어지고 있었다. 아직 묵연칠수와 비마대의 행방은 알 수 없었지만 강명이 이곳에 온 이상 그들 역시 이 천동 안에 있을 터였다. 이제는 정면으로 맞붙는다 해도 누가 승리할 것인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강명의 출현으로 중지되었던 승부가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담천의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주어 다른 인물들의 기세까지 꺾어버리려던 방백린으로서는 마음을 달리 먹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끌면 안 되었다. 더구나 담천의는 예상했던 수준 이상이었다.
촤르르---- 챙강챙강----
칼날들이 부딪치고 쇠사슬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담천의의 무모한 고집은 절반 정도로 줄어든 도산검림의 숲에서의 승부를 택했다. 강명이 만들어 준 이점을 포기한 것이다. 두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폭풍우에 휩쓸리듯 칼날들이 이리저리 밀리고 있었다.
“큰소리 칠만 했군.”
자신의 공격을 너끈히 견뎌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천동의 진산무학을 드러내야 할 시기다. 갑자기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의 신형이 희뿌옇게 변하는가 싶더니 담천의에게 곧바로 쏘아왔다.
그의 양팔이 빠르게 펼쳐졌다. 펼쳐진 그의 장심(掌心)엔 동전 만한 주사빛 반점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동시에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백색의 운무에서 영롱한 빛을 발해지며 아홉 개의 기이한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
저것은 본 적이 있었다. 그가 다시 무림에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그 때, 풍운삼절(風雲三絶)의 첫째인 장절(掌絶) 하구연(何具淵)의 몸에서 펼쳐졌던 구섬분천(九閃分天)이 바로 저것이었다. 구섬분천이 천동의 무학이었다니...
그렇다면 장절 하구연의 할아버지 같은 사부는 천동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던가? 아마 분명 천동과 관련이 있었던 인물일 터였다. 다만 제자인 장절의 자질이 기대에 미치지 않아 더 이상 전수하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그런 추측을 뒷받침하듯 그 위력은 과거 장절이 일생을 통해 단 한 번 시도했던 그런 정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영롱한 아홉 줄기의 빛줄기는 눈이 멀 것 같은 굉렬한 광휘를 뿜었고, 어느 각도로 파고드는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어떠한 것도 파괴해 버릴 수 있는 오색 영롱한 강기는 숨 한 번 들이킬 시간도 주지 않고 담천의의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허나 담천의는 오히려 피하지 않았다. 그 역시 승부를 길게 끌 생각이 없는 듯 했다. 그의 몸이 빠르게 회전했다. 동시에 그의 오른발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움직이며 주위의 칼날을 차 쏘아오는 구섬분천의 광휘를 차단하고, 그의 몸과 검은 도저히 공간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사이를 신검합일(身劍合一)된 채 마주쳐갔다.
따다당--- 파직----!
하지만 그것은 담천의의 오산이었다. 장절 하구연이 펼쳤던 구섬분천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아홉 줄기의 영롱한 광휘는 담천의가 발로 차 막는 칼날들을 아주 간단하게 동강내 버렸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욱 세차게 그의 몸을 감싸들었다.
사사사삭----!
방백린의 얼굴에 비릿한 조소가 머금어졌다. 그의 눈에서 푸른 불꽃이 일렁거렸다. 동시에 이미 그의 가슴에 다가든 담천의의 검을 슬쩍 몸을 비틀어 흘리는 순간 담천의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구섬분천의 아홉 줄기 중 두 줄기가 그의 어깨와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스쳤기에 망정이지 정통으로 맞았다면 어디든 관통되었을 것이다.
“욱----!”
허나 그것은 고통도 아니었다. 가슴을 파고드는 알 수 없는 맹렬한 고통은 숨이 막히게 했다. 바로 이미 경험한 바 있었던 방백린의 염화심력이 본격적으로 운용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혈맥의 운용을 갑자기 끊기게 하고 그의 몸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오른쪽 어깨에서 피가 뿜어져 허공에 흩어졌다. 동시에 그의 몸은 실 끊어진 연처럼 힘없이 바닥으로 나뒹구는 듯 했다. 큰 부상을 입어 쓰러진 것처럼 보인 그 모습은 오히려 그 상황에서 매우 적절한 것이어서 그가 서 있던 곳에서 아홉 줄기의 섬광이 엉켜듬과 동시에 강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파지직----!
그가 몸을 바닥에 뉘이지 않았다면 그의 몸은 구섬분천에 의해 난도질당했을 것이다. 오히려 염화심력에 대항하지 않고 쓰러진 것은 그 짧은 순간에 위험을 피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행위였다.
극히 위험한 순간은 넘겼지만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왔다. 가슴이 빠개질 것 같은 고통도 밀려들었다. 과거 경험했던 정도의 염화심력이 아니었다.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끊어지고 있었다. 들고 있는 검의 무게가 느껴질 만큼 기력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방백린의 양손에서 다시 구섬분천이 펼쳐지고, 그의 양발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담천의의 전신을 타격해 들었다. 일순간 저항할 수 없었다. 여전히 염화심력은 그의 정신과 몸을 마비시켜 그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었다.
(받아들인다....고통을 이기면 저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다. 혈맥이 팽창되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허나 그는 빠르게 몸을 허공으로 솟구쳤다. 부자연스러운 동작이었지만 그의 몸은 늘어진 칼날 위쪽으로 올라섰고, 왼손으로 칼날과 연결된 가는 쇠사슬을 잡고는 좀 더 위쪽으로 올라갔다.
공격을 피해 위로 올라가는 담천의를 향해 방백린이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허나 그는 갑작스런 칼날들의 요동에 급히 몸을 뒤로 물려야 했다. 위로 올라간 담천의가 왼손으로 칼날과 연결된 여러 개의 쇠사슬을 틀어쥐고 따라붙는 방백린을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십여 자루의 칼날이 회전하면서 방백린의 상체를 공격해오자 도리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잔꾀도 쓸 줄 아는군. 하지만 너는 내 손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미 빨리 승부를 결정짓겠다고 마음을 굳힌 듯 그는 잠시 뒤로 물러났다가 자신의 신형도 위쪽으로 퉁겨 올랐다. 담천의의 신형이 줄을 차면서 쇠사슬과 쇠사슬 사이를 빠르게 이동했다. 방백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가 쫓고 누가 쫓기는지 분간할 수 없는 가운데 두 사람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상대를 공격하는 손발의 움직임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길 얼마나 지났을까? 담천의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목과 턱에는 굵은 핏줄이 터질 듯 솟아올라 있었다. 견디고는 있지만 염화심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퍼퍽----!
두 사람의 신형이 허공에서 스치듯 뒤엉켰다가 떨어지면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담천의의 신형이 밑으로 떨어지다가 간신히 줄을 잡고 입에서 피를 토했다. 방백린의 주먹에 가슴을 격타 당한 것이다. 가슴이 빠개지는 듯한 충격이 밀려들었다.
조금씩 상대에게 밀리고 있었다. 이렇게 나가면 무조건 패한다. 그렇다고 뾰쪽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찌해야 되는 것일까? 승부가 시작된 이래 상대는 자신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다. 제대로 공격다운 공격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그저 피하거나 막는데 급급한 실정이다.
(이대로 무기력하게 패할 수는 없다.)
그는 무언가 결심했는지 빠르게 줄을 타고 움직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멈추더니 뜻밖에도 허공에서 가부좌를 튼 자세를 취했다. 가부좌를 튼 그의 양 무릎에 늘어진 줄이 하나씩 두 개가 감겨 있어 그의 몸을 지탱해주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소주 한 잔할 장소와 일시를 공고합니다.
5월 마지막 주로 정하려 하다가 모두 바쁘실 것 같아 조금 앞당겼습니다. 미국에 있는 분 중 운 좋게 한국에 나오셔서 참석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계셨고, 다음날 부담도 없을 것 같아 금요일로 잡았습니다.
일시 : 5월 26일(금) 오후 7:00시
장소 : 광화문 뒷골목 밥상머리 2층(세종문화회관 뒷편 : TEL 02-723-0288)
이십여 분 정도가 게시판에 글을 남기고 메일을 주셨습니다. 오히려 외국에 나가 계시는 분들이 메일주시며 참석하지 못해 서운하다고도 하셨습니다. 그 동안 저에게 메일을 주시며 격려하셨던 분들이나 댓글로 성원해 주셨던 분들, 날카롭게 비판하셨던 분들이 모두 참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 동안 조용히 그리고 꾸준하게 읽으셨던 분들도 이번 기회에 한 번 뵈었으면 합니다.
편하게 나오셔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자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은 없습니다. 흉금 없이 제가 보지 못한 시각에서 본 <단장기>에 대한 평도 듣고 싶은 마음입니다. 물론 메일이나 답글을 주시지 않고 참석하셔도 무방합니다.
비용은 그 동안 오마이뉴스에서 단장기를 연재하면서 받은 원고료와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셔 주셨던 '좋은 기사 원고료'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의 참석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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