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육군 소속 최아무개(23) 일병은 지난달 갑작스런 뇌염으로 인해 쓰러진 뒤 사경을 해메고 있다. 하지만 군 당국은 이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육군 소속 최아무개(23) 일병은 지난달 갑작스런 뇌염으로 인해 쓰러진 뒤 사경을 해메고 있다. 하지만 군 당국은 이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25일 낮 12시 서울 모대학병원 중환자실 20호. 온몸에 10여개의 의료용 튜브를 꽂은 젊은이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들어 있었다. 사지가 모두 붕대에 감긴 채 침대에 묶여 움직일 수 없었다. 고통을 이기려 꽉 깨물었는지, 아랫 입술은 터져 검붉은 딱지가 앉아 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환자가 힘겹게 눈을 떴다.

"○○아, 아빠 왔다. ○○아, 아빠 알아보겠냐?"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자, 알아듣기 힘든 대답이 가까스로 흘러나왔다.

"일병 최○○… 일병 최○○."

아버지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아들은 힘겹게 관등성명을 댔다.

"불쌍한 내 새끼…."

부자간의 대화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끝내 눈물을 보이며 병실을 나갔다.

지난해 4월 입대, 육군 제65사단 소속 통신병으로 근무하던 최아무개(23) 일병은 군 복무 중 발병한 뇌염으로 한 달 가까이 투병 중에 있다. 뇌염 혹은 뇌막염 의심을 받고 있는 최 일병은 이미 바이러스가 온 머리에 퍼져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 됐다. 담당 의사도 "이제는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가족들에게 말할 정도다.

최 일병이 쓰러진 것은 지난 4월 22일. 부대 측 설명에 따르면, 토요일 저녁 내무반에서 TV를 보던 최씨가 갑자기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 이전에는 아무런 증상이나 이상 행동도 없었다는 게 부대 관계자의 주장이다.

최 일병의 증세는 주말 이후 나아지는 듯 했지만, 월요일에는 주변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나빠졌다. 연락을 받은 가족들은 최 일병을 부대 인근 국군양주병원으로 데려갔지만 군 병원에서는 병명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할 수 없이 휴가를 얻어 최 일병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가족에게 폭력·욕설... 무릎 꿇고 "살려달라" 애원하기도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최 일병은 갈수록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장롱 문을 열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중얼거리거나, 가족들을 붙잡고 "제발 때리지 말라"며 하소연을 늘어놨다.

급기야 최 일병은 집안의 유리창을 모조리 깨뜨리고, 아버지에게는 "네가 부대장이지?"라고 소리치며 주먹을 휘둘렀다. 어린 여동생에게는 온갖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보다 못한 남동생이 자신을 붙들자 이번에는 "살려달라"며 손을 모아 빌었다.

최 일병의 심각한 상태를 본 가족들은 서둘러 국군수도병원(옛 수도통합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군의관은 "여기서는 치료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초기 진단에서 뇌질환이 의심됐지만 치료할 만한 의료기기가 없다는 것. 결국 가족들은 서울 소재 대학병원으로 최 일병을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지난 1월에 휴가 나왔을 때만 해도 멀쩡했고, 군에서 나오는 월급 모아서 부모님 용돈으로 주는 착한 아이였는데…. 군대 간 장남이 저렇게 미쳐서 돌아올 줄이야…."

어머니 정유화(48)씨는 연신 눈물을 흘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장남인 최 일병은 전문대를 졸업한 뒤 정씨에게 "제대하면 꼭 돈을 벌어서 편안하게 해드리겠다"고 약속하면서 입대했다. 입대 전에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어머니에게 냉장고를 선물하기도 했다. 최 일병을 가까이서 지켜본 이웃들은 "정말 착하고 순한 학생"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군복무 1년 만에 최 일병은 질병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진 채 가족들에게 돌아왔다. 태권도 3단, 키 172cm, 몸무게 98kg이나 되던 건장한 몸이 지난 4월 쓰러진 뒤 지금은 60kg으로 형편없이 줄어들었다. 몸에 꽂힌 '생명줄'이 없으면 정상적인 생활조차 할 수 없게 됐다. 물론 가족들도 잘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아이가 저 지경이 되도록 부대에서는 뭘 하고 있었다는 말이냐. 조금 이상하면 빨리 부모한테 알려야지…."

물수건으로 아들 얼굴의 땀을 닦아주던 아버지 최을수(52)씨는 분을 참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이미 너무 늦어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해요. 우리가 데리러 가기 2~3달 전부터 뇌에 이상이 있었다는데…."

군 복무 중 건강하던 최 일병의 모습. 98kg이나 되던 체중이 쓰러진 이후 1개월 만에 60kg으로 형편없이 줄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최 일병.
군 복무 중 건강하던 최 일병의 모습. 98kg이나 되던 체중이 쓰러진 이후 1개월 만에 60kg으로 형편없이 줄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최 일병.
"구타 없었다"... 해당 부대 외면

아버지 최씨는 군대에서의 구타와 가혹행위를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아들이 보인 폭력적 행동을 보면 구타가 없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 일병 사건을 자체 조사한 해당 부대는 구타나 가혹행위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 일병이 복무한 부대의 대대장은 "조사 결과 구타나 가혹행위는 없었다"며 "최 일병이 쓰러진 상황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65사단 관계자도 "부대에서도 원인을 모르니 참 안타깝다"며 "헌병대 자체 조사 결과에서도 생활상에 가혹행위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뇌질환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이전까지 아무런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몰랐다"고 해명했다.

뇌염이나 뇌막염과 같은 질환은 감염경로나 잠복 기간이 때에 따라 달라 2~3개월 이상 아무런 증상을 보이지 않다가도 갑작스럽게 발병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부대 측 해명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가족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최 일병을 외면하는 군 당국의 태도다. 최 일병이 국군양주병원을 거쳐 국군성남병원, 대학병원까지 옮겨 가는 한 달 동안 해당 부대에서는 단 한 차례 병문안 오는 것에 그쳤다. 그것도 가족들이 없을 때 병원에 다녀갔다. 현재 최 일병은 뇌질환에다 폐렴 증세까지 겹쳐 사경을 헤메고 있다.

아버지 최씨는 "부대 관계자가 다녀갔다는 얘길 들었다"며 "그 뒤로는 간혹 상태가 어떤지 전화를 걸어올 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병원 진단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때가 되면 부대로 찾아가서 따질 생각입니다. 군 복무 중에 이렇게 병이 생겼는데 최소한 나라에서 치료는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30분간의 짧은 중환자실 면회를 마치고 돌아 나오는 아버지 최씨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