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구글이 주최한 'Zeitgeist(시대정신)' 포럼의 하일라이트는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최고경영책임자 에릭 슈미트의 출연이었다. 특히 창업자 페이지의 출연은 예정에 없던 것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재킷 속에 흰색 티셔츠를 받쳐 입은 페이지는 순진한 영재의 표정 그대로였다. 거기에 128억 달러라는 재산까지 있으니 귀티가 줄줄 흐른다.
두 사람은 사회자였던 CNBC 앵커 마리아 바티로모와 청중들의 질의에 답하는 방식으로 40분 동안 의견을 개진했다.
구글은 공동창업자인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그리고 전문경영인 슈미트의 3인의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의견이 엇갈리면 투표를 하는데 공동창업자 2명이 항상 이기게 돼 있는 구조다.
이런 구조를 채택한 것은 두 창업자가 벤처 자본가들의 압력에 못 이겨 전문경영인을 영입하게 되자 자신의 영향력을 보존하려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 그런 만큼 50세인 슈미트는 33세 동갑내기인 두 주인을 모시고 일하면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어려운 위치에 있다.
이날 회견에서도 슈미트는 페이지의 말문을 몇 번이나 가로막으며 자신에게 실질적 권한이 있는 듯한 인상을 주려 했다. 반면 페이지는 달변인 슈미트가 먼저 말을 가로채기 전 앞서서 말을 시작하려고 몇 번이나 마이크를 잽싸게 입에 갖다 댔다. 그런데 두 사람이 이견을 보일 때 언론들은 페이지의 말에 무게를 부여했다. 당연한 건가.
페이지는 경영방침에 대해 "다른 것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신속히 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으나 슈미트는 "너무 많은 일들을 동시에 벌이고 있어 정리가 필요하다"는 요지로 말했다. 페이지는 기업운영이 "영화 제작과 같다"면서 "영화를 만들 때 어떤 영화가 성공할지 모르지 않느냐"고 말했다.
구글이 마이크로소프트를 대체, 세계 최대 IT기업으로 성장할 날이 곧 오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페이지는 "우리를 그렇게 봐준다니 재수가 좋을 뿐"이라고, 슈미트는 "우리의 제품은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끈적끈적하지 않다"고 모두 자세를 낮췄다.
슈미트는 우리의 이용자들은 한 번만 클릭하면 다른 곳으로 가버릴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긴장감 속에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신문이나 잡지를 읽느냐는 질문에 페이지는 "화장실에서만 읽는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구글뉴스만 읽는다"고 정정했다. 슈미트는 "뉴욕타임스는 본다"고 말했다.
인터넷 플랫폼이 계속 PC가 될지 아니면 무선 단말기로 대체될지 여부에 대해 페이지는 "지금의 PC보다는 작고 지금 핸드폰보다는 큰 그런 게 나오지 않겠느냐"며 결국 융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슈미트는 구글의 향후 출시 제품에 대해 외국어번역서비스를 언급하면서 "향후 5년 안에 각국의 언어들이 상호소통할 수 있는 자동 번역 소프트웨어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전을 이용하는 방식이 아닌, 수학공식을 이용해 번역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슈미트는 이번 포럼에서 제시된 핵심적 의제들 중 하나인 인도와 중국 비교론에서 인도의 손을 들어줬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시장은 중국이 아니라 인도가 될 것이며 현재 추세에 비춰볼 때 도래시기는 5년에서 10년 안일 것이다."
그는 심지어 힌두어가 영어, 중국어와 함께 세계 3대 인터넷 언어가 될 것으로 점쳤다. 두 사람의 얘기 중 내 귀에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향후 전략을 묻는 질문에 대한 페이지의 답변.
"우리는 전략이 아니라 제품으로 말한다."
엔지니어적인 사고로 기업을 운영하겠다는 뜻이다. 기술만능론으로 흐를 수 있는 얘기로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