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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5월 26일)는 지난 2003년에 돌아가신 시어머님의 세번째 기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금요일 늦은 저녁 시댁에서는 모든 가족과 시댁 주변에 살고 계시는 가까운 친지분들이 한자리에 모여 경건한 마음으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자정이 지나서야 제사가 끝났고, 준비한 여러가지 음식과 과일들을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오늘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모내기를 해야하는데 비가 와서 걱정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때 이앙기로 시댁의 논에 모내기를 해 주실, 이웃에 살고 계시는 큰댁 아주버님께서 중학교 2학년인 아들에게 새벽 5시 20분까지 일어나서 모내기일을 도와주면 용돈 만원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큰댁 아주버님께서는 내심 아직 어린 사촌조카가 '설마 이른 새벽에 일어나겠느냐'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하지만 아들은 아주 어린시절에도,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에도 시댁에서 하루밤을 자고 올 때면 곧장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할아버지의 일손을 거들고는 했습니다.
몇번이고 아들에게 새벽 5시에 일어날 수 있겠느냐고 묻는 아주버님께 아들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설겆이와 부엌정리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든 저는,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아버님께서 안방문을 '드르륵'하고 열고 나오시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 뒤를 따라 안방을 나오는 아들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밖은 아직 뿌연 어둠속에 잠겨 있었고 부슬부슬 비도 내리고 있었습니다.
서랍장에서 할아버지의 낡은 양말을 꺼내 신고 할아버지를 따라 마당으로 나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뿌듯해지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님과 저는 동네의 가까운 이웃들과 친지들께서 시댁으로 아침식사를 하러 오시기 때문에 아침을 준비하느라 바쁜 손길을 움직여야 했습니다.
거실에 3개의 커다란 상을 펼쳐놓고, 그 위에 여러가지 반찬들을 차려놓았습니다. 상위를 커다란 상보로 덮어 놓고 친지들이 아침 식사를 하러 오기를 기다리다가 모내기는 얼마만큼 진행이 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가방속에서 디지탈카메라를 꺼내어 바지 주머니에 넣고 우산을 펼쳐들고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을 나섰을 때 시간은 아침 7시가 조금 넘어 있었습니다.
시댁 거실에서 유리창을 통해서 내다보면 그리 멀지도 않고, 그리 가깝지도 않는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논에 도착했을 때에는 벌써 모내기가 끝나 있었습니다. 이미 이앙기도 논에서 나와 있었고, 드문 드문 빈자리를 메울 여분의 모들이 논 가장자리에 놓여 있었습니다.
아들은 노란 비옷과 빨간 장화를 신고 어른들 틈에서 나름대로 일손을 거들고 있었습니다. 잠시후 남편과 아들은 빈 모판들을 한 데로 모아 묶으며 돌아올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일부러 깨우지 않았는데도 이른 아침에 손자가 스스로 벌떡 일어나서 따라 나서는 모습이 무척 대견스러웠나 봅니다. 몇번이고 칭찬의 말씀을 하십니다. 큰댁의 아주버님도 약속한 대로 용돈 만원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사촌형들과 누나들은 여전히 꿈나라를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어른들과 함께 의젓하게 한자리에 앉아 밥 한그릇을 유난히 맛나게 먹는 아들을 보면서 큰댁의 아주버님도, 할아버지도, 고모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2주 전 토요일, 아들과 함께 시댁에 다니러 갔을 때였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이제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저의 이야기에, 아들은 할아버지댁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에 할아버지의 일을 도와줘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음을 무척 아쉬워했었습니다.
아마 아들은 오늘 아침, 많은 어른들의 칭찬과 더불어 자신의 의지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할아버지의 일손을 도왔다는 뿌듯한 마음에 세상에서 제일 맛난, 꿀맛같은 아침밥을 먹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