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고 최근 들어 이 주제는 점점 더 커다란 화두가 되어 가는 추세이다. 그러나 사실 상처받는 것은 아이만이 아니다. 타인과 만나 소통하면서 일어나는 문제는 언제나 쌍방의 과실이게 마련. 어른도 아이와의 관계에서 엄청나게 상처받는다. 때로는 그 상처가 너무도 커서 한 어른의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져 버리기도 한다.
어른과 아이의 관계란, 이미 가정된 사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또한 서로의 관계에 대해 딱히 정해진 절대적인 규칙이 없기 때문에 많은 기대와 오해를 낳는다. 그리고 그 기대와 오해가 서로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연구돼야 할 중요한 인간관계 중 하나이다.
이 책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는 그러한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변질된 공산주의가 일인 우상화를 낳고 일인 우상화의 광풍이 '문화대혁명'이라는 중국 현대사 최고의 비극을 만들어내던 시절.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주인공이 '영어 선생님'이라는 존재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아이의 시선과 어른의 시선을 함께 섞어 넣어 담담하게 풀어나간 성장기이다.
주인공은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남자아이이다. 아버지는 유명한 건축가로서 당에서 지명하는 건물들을 설계하고 있고, 어머니 역시 잠재적인 건축가로서 훗날 유명한 방공호를 지어 이름을 날린다. 주인공의 부모는 예술에 대한 관심, 특히 서양의 클래식과 영화에 관한 관심이 높았고 이러한 관심은 자연스레 획일적인 체제에 관한 비판의식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마오쩌둥이라는 개인에 대한 우상화가 광적으로 펼쳐지던 그 시대에 비판의식을 드러낸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이들은 당에 광적으로 충성하는 시늉을 함으로써 생존을 도모했고 이 과정을 지켜보는 주인공은 그들의 모순과 이기심에 역겨움을 느낀다.
이때 '영어 선생님'으로 학교에 새로 부임한 왕야쥔은 주인공에게 새로운 문물과 이상을 상징했고, 학생들에게 '영어'로 상징되는 신문물과 자유를 심어주려 했던 왕야쥔은 획일화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열해질 수밖에 없었던 부모들로부터 커다란 반감을 산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왕야쥔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고 결국 존경하던 영어 선생님을 파멸로 몰고 가는 역할을 하게 된다.
..."너는 학교에서 더 반성을 해야 할 거다. 성실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자기를 반성해라. 왕야쥔 이 친구는…"
아빠는 그의 얘기를 꺼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늘 최후 선고가 있었는데,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식욕이 사라지면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잠시 후 고개를 들고 아빠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전 아빠가 아주 뻔뻔스럽다고 생각해요."...
감옥으로 끌려가게 된 영어 선생님은 끝까지 주인공인 류아이를 옹호한다. 류아이의 부모가 사건의 본질을 완전히 은폐한 상태에서 류아이에게 '반성'만을 강요하는 데 반해 영어 선생님은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인다.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류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맞게 되는 폭풍우 같은 성욕에 대해 고민하자 자기 자신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아이가 가질 뻔했던 죄책감과 수치심을 덜어준다. 이 시대에 흔히 말하는 '열린 교육'을 했던 교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중국은 그런 교사를 용납하지 않았다. 예민하고 섬세했던 류아이는 그 선생님을 통해서 어렴풋이 사회의 모습을 알아가게 되고, '아름다움'을 쫓아가는 삶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기만 한 부모에 대해서도 차츰차츰 연민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성숙해가는 것이다.
부모와 아이, 또는 선생과 제자. 우리는 '어른과 아이'라고 불리는 이 관계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지만 많은 것을 잃기도 한다. 좋은 습관과 감성을 길러주었던 어른과의 관계는 평생 아름다운 색채로 품고 가게 되지만 깊은 상처와 모멸감을 주었던 어른과의 관계는 지울 수 없는 얼룩이 되어 생애 내내 따라다닌다.
이 책을 덮었을 때, 나는 내 어린 시절 지독히도 괴롭혔던 영어 선생님을 떠올렸다. 주인공인 류아이는 현명하게도 어른들의 모순과 유한성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결국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냈지만 나는 어리석게도 그렇지 못했다. 아마 다른 많은 이들도 자라 성인이 된 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내가 상처 주었던 어른에 대한 미안함, 뉘우침, 회한,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많은 장면에 대한 안타까움.
맑고 투명한 한 편의 수채화 같은 이 소설은 한 소년이 자라가면서 주위 어른들의 모습을 내면에 담아가는 모습을 그린 전형적인 성장소설이다. 너무 맑아서 독자 스스로의 어린 시절, 그리고 그 이후의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