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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 한얼미디어
옴조개치레, 그물무늬금게, 범게, 밤게, 자게, 민꽃게, 꽃게, 꽃부채게, 풀게, 무늬발게 등 이제는 영영 사라질 새만금 갯벌생물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면서 책장을 넘기는 데 어느새 책 중앙이 눈물로 얼룩져 있다. 인간의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생명줄이 끊겨버릴 새만금의 갯벌 생물들.

한 나절을 헤매고도 끝내 바닷물을 만나지 못한 생합. 갯벌도 울고 생합도 울고 어민도 울고 그리고 책을 읽은 나도 울었다. 연 이틀동안 지독한 사랑에 빠지면서 내 안에는 오직 한 권의 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새만금은 갯벌이다(글·사진 김준·한얼미디어)>’, 이제는 영영 사라질 새만금을 6년 동안 안방처럼 드나들며 발과 심장으로 쓴 책. 그 책을 받아든 순간, 그 안에 들어있는 생명들과 그 안에서 꿈틀대는 어민들의 처절한 몸부림들이 고스란히 내 영혼 속으로 들어왔다.

사는 것에 지칠 때, 위로가 필요할 때, 무작정 일상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을 때 버릇처럼 달아나는 곳이 바다였다.

“너는 전생에 바닷가에 살았거나 아니면 바닷속 생물이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수초였을 거야” 라는 친구의 말처럼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금세 녹아 내렸다.

나에게 바다는 관념이었다. 관념 속에 머물러 있던 바다를 살아 있는 현장의 소리로, 그 속에서 숨을 쉬고 있는 생명들과 사람들의 질퍽한 삶의 세계로 이끈 것이 <오마이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김준의 <바다에서 바다를 보다>였다.

그 글을 읽으면서 위안을 받던 바다와 갯벌, 그 안에서 살아있는, 살아지는 모든 생명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김준의 ‘바다에서 바다를 보다’는 관념에서 생생한 날 것으로 다가왔다. 애독자였던 나는 ‘새만금은 갯벌이다’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걸음에 달려가 책을 손에 쥐었다.

인간의 폭력에 의해 죽어 가는 갯벌 생물들... 그리고 어민들의 눈물

▲ 삶의 터전인 갯벌로.
ⓒ 한얼미디어
이제는 영영 사라질 생명의 밭. 새만금 갯벌의 표지를 본 순간부터 가슴이 저렸다. 살고 싶다고 처절하게 발버둥쳐도 인간의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끝내 죽어갈 수밖에 없는, 이제는 영영 사라질 갯벌 생물들과 새만금이 곧 삶이자 운명인 어민들의 이야기가 끝내는 눈물이 되어 방울져 내렸다.

육지 것들의 오만과 편견이 아닌 ‘바다에서 바다를 보는 시선’을 요구하는 저자의 일침은 곳곳에서 마음을 강타했다.

"평생 바다만 바라보며 살아온 그들에게 땅만 바라보고 살라는 것은 분명 폭력이다."
"인간은 자신이 찾는 것이 없으면 모든 것이 끝난 것으로 생각한다."
"종족 번식을 위해 몸부림치는 생합의 운명이 새만금 사람들의 운명과 다를 바가 없는데도 말이다."

"땅이 농민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듯, 갯벌도 어민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땅이야 퇴비를 주면서 잘 가꾸면 땅심이 살아나지만 한번 망가진 바다와 갯벌은 방법이 없다. 땅처럼 퇴비를 줄 수도, 비료를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민들이 바다를 포기하는 것은 농민들이 땅을 버리는 것보다 더 어렵다."


"바다의 자궁이자 생명의 근원인 갯벌에 커다란 변화들이 나타난 것만은 분명하다. 인간이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는 새만금 사업은 한국 현대사의 모순이 그대로 응축된 사건이다"고 아무리 외쳐도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개발업자들에게 '인간의 논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먹힐 리가 없었다"고 말하는 저자.

저자는 "물길이 막히고 생합이 사라지면 저 할머니는 어디로 가야 할까. 바다만 쳐다보고 살아온 계화도 사람들, 이렇다 할 땅 뙈기도 없는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갯내음을 맡고 평생을 살아온 그들에게 그레 대신 삽과 괭이를 들고 논과 밭으로 가라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아닐까'라며 시종일관 무자비한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농한기도 명예퇴직도 정년도 없었던 일터, 모든 것을 다 잃고 빈털터리로 돌아와도 넉넉하게 다시 껴안아 준 바다와 갯벌을 잃어버린 새만금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들에 대한 애정이 눈물겹다.

새만금은 영원히 갯벌이다

▲ 배는 바다로 가고 싶다.
ⓒ 한얼미디어
갯벌은 바다의 심장이고 허파이자 어민들의 미륵은 갯벌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새만금을 지키기 위해 6년 동안 틈만 나면 그 곳으로 내달렸다. "단 한사람의 진정한 학자라도 남아있는 한 우리의 새만금 갯벌을 구할 수 있고 그에 기대어 사는 어민들의 눈물과 한숨을 닦아 줄 수 있을 것이다"는 문규현 신부의 글처럼 저자 김준은 자신의 생각을 묵묵히 행동으로 실천하는 진정한 지식인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방조제가 막힌 후 다시 찾은 새만금에서 저자는 인간이 저지른 폭력이 얼마나 잔인한 것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5월인데도 초여름 날씨가 계속되고, 바닷물이 올라오지 않는 갯벌에는 소금꽃이 하얗게 피었다. 그리고 비가 왔다. 그 빗물에 소금꽃이 흘러내렸다. 생합들은 그게 바닷물인 줄 알았다. 너무나 반가웠을 것이다. 너무나 목이 말랐을 것이다. 그렇게 펄 위로 기어 나온 생합들이 바닷물을 찾아 갯벌을 헤매다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울컥 눈물이 난다."

이제 어민들이 할 일은 생합이 썩기 전에 잡아내는 것뿐이다. 갯벌이고 싶은 새만금이 인간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저자의 글 속에는 새만금은 영원히 갯벌로 살아있게 하고 싶다는 염원이 들어 있다.

지금은 비록 평생을 해와 달과 바람이 만들어준 '생태시간'에 맞춰 살아온 어민들이 육지의 고정된 시간에 '시계'를 맞추기 시작했을지라도, 이 책이 있는 한 새만금은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육지의 시간이 아닌 어민들의 시간으로 시계를 돌려놓으리라. 그래, 새만금은 영원히 갯벌이다.

새만금은 갯벌이다 - 이제는 영영 사라질 생명의 밭

김준 글.사진, 한얼미디어(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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