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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들 강민이는 올해 여섯 살입니다.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또래 아이들은 거의 다 한글을 깨우쳐서 책도 읽고 편지도 쓰지만, 강민이는 아직 한글을 모릅니다.
며칠 전엔 같은 반 친구인 수빈이가 강민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강민아, 나는 네가 좋아. 네가 공부를 못해도 좋아. 공부는 엄마한테 배우면 되니까. 난 이 다음에 너랑 결혼할 거야."
강민이는 반에서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좀 받쳐주는 관계로 여자 아이들한테 인기가 있는 모양입니다.
강민이는 어려서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성장이 조금 느렸습니다. 몸을 뒤집는 것, 기는 것, 걷는 것 모두 느렸습니다.
제일 뒤쳐졌던 건 말하기였습니다. 세 살이 됐는데도 아빠, 엄마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습니다. 원래 성장이 느려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강민이 혀끝이 붙어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병원에서는 '설단증'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혀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강민이가 네 살이 되던 해에 수술을 해 주었습니다. 수술하던 날 저와 집사람은 수술이 잘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수술실 밖에서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잘 될 거야. 걱정 하지 마."
수술실로 들어간 지 1시간쯤 지난 후 회복실에서 강민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울음소리를 들으니 더욱 긴장이 되었습니다. '정말 잘 되어야 하는데.'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수술을 받은 뒤 강민이는 조금씩 말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말을 하도 많이 해서 귀찮을 지경입니다. 여전히 부정확한 발음으로(특히 혀를 위로 감아올려서 말하는 경우엔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종알댑니다.
강민이는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최근까지도 오직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에만 열중했습니다. 특히 로봇 장난감을 좋아해서 텔레비전 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그런 강민이가 요즘 부쩍 책을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이 책, 저 책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봅니다. 아직 글을 모르는 강민이가 무슨 재미로 책을 보는지 궁금합니다. 수빈이가 책 읽는 모습을 보고 자극받았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아마 책 속의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이겠지요. 어느 날은 화장실에 앉아 볼일을 보면서도, 엄마가 읽는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강의가 있는 전날 저녁, 강의 준비를 위해 공부합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강민이가 저를 따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책상 옆에 자기 책상을 붙이고 저랑 나란히 앉아서 공부합니다. 수빈이가 공부 좀 하라고 재촉한 걸까요? 아무튼 굳이 아빠 옆에 앉겠다는 아들이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아직 한글을 모르는 강민이의 공부는 늘 '그림그리기'입니다. 오늘도 강민이는 제 옆에서 양 손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방금 목욕을 하고 나와 머리가 아직 젖은 상태로 열심히 그림을 그립니다.
오늘은 '우리 가족'을 그렸습니다. 아빠를 가장 크게 그렸습니다. 아빠를 크고 소중한 존재로 생각해 주는 강민이가 고맙습니다. 평소에는 엄마와 더 친하고 엄마를 더 챙기는데 그림에서는 늘 아빠가 중심에 있습니다.
드디어 강민이가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강민이에게 그림을 설명해달라고 했습니다. 왼쪽부터 햇님, 강민이, 동생 지민이, 엄마, 아빠랍니다. 그리고 위에 있는 것은 구름이랍니다.
아빠를 제일 크게 그려준 아들이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빠 좋아?" "응, 좋아."
자신이 그린 그림을 자랑스러운 듯이 펼쳐보이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한글은 나중에 알아도 좋다. 이대로 밝게만 자라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