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시집 <그대 그리고 나>를 출간한 시인 홍장석(43)씨를 지난 26일 정읍문화원에서 만났다.
5월 중순인데도 추위에 움츠리면서도 어눌한 발음과 몸짓으로 인사하는 홍씨의 모습은 정신장애를 앓고 살아가는 자신의 치열한 삶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 근황을 묻는 기자에게 홍씨는 "혹시 저를 아세요?"라고 되물었다. 필자와 몇 번의 면식이 있지만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다.
하지만 자신의 굴곡 많았던 일생을 떠올리며 설명하는 모습에서 정신장애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그의 기억은 또렷했고 답변은 명료했다.
자신이 정신장애인이라는 사실을 홍씨 스스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군 제대 후 서강대에 복학했던 1988년부터였다. "돌이켜 보면 제가 정신장애 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던 것은 전주 신흥고에 다니던 시기부터였지만 한번도 스스로 정신장애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홍씨가 세상에 대한 미움을 다스리며 시를 쓰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부터다. 시집 <그대 그리고 나>의 '그대'는 홍씨가 접하는 모든 일상과 세상이다.
홍씨가 그동안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던 횟수는 약 30여회.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던 1988년부터 2000년 사이에 홍씨는 자유와 억압의 차이를 몸으로 느끼며 자신이 정신장애자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2000년 정신병동에 세 번째 입원했던 그는 하얀 벽면을 바라보며 그동안 대책 없이 세상으로만 향했던 지독한 미움의 소리를 자신의 내면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를 글로 표현했다.
홍씨의 첫 시 '개척'은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던 2개월여 동안 다듬어진 작품으로 정신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를 예견한 시(詩)다. 여기서 잠깐 '개척'을 살펴보자.
개척
땅에 떨어진 과자도 주워 먹고
사랑을 받고 있으면
아무에게도 뽀뽀하던 시절이
어느덧 사무치게 사라지고
독립해야만 하는
무거운 연습이 남아 있습니다.
당연하듯 걸어온 세월 어딘가에
너무나도 당연했기에 당연하지 않은
깊게 패이기 시작한 멍에를
흘러 가버린 이야기 속에 발견합니다.
미래 그 어딘가에
한줄기 빛은 있겠지요. 그래서
상큼한 동아줄을 하늘에 놓으며
말없는 세월을 밟겠지요.
내가 있다는 것과
그대가 있다는 것과
삶을 개척했으므로 기뻤노라고.
'개척'은 조금 자조적이긴 하지만 자학적이지는 않다. 그보다는 정신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미래가 투명하지는 않지만 희망적인 삶일 수도 있음을 예견하고 있다.
홍씨는 폐쇄병동과 집을 오가던 2001년 등단했다. 김희선 사무국장이 우연하게 정읍문화원을 찾았던 홍씨의 시를 접한 것이 계기가 됐다. 홍씨는 이때 시 여섯 편을 <한맥문학>에 게재하며 등단했다.
등단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쓴 시들의 모음집이 <그대 그리고 나>다. 이 시집을 통해 홍씨가 10여년 동안 쓴 시들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됐다. 홍씨가 쓴 시들은 대부분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는 동안 쓰여졌지만 집과 폐쇄병동을 오가며 느낀 일상들도 담겨있다.
최근 근황을 묻는 필자에게 홍씨는 "나에게 매일 특별한 일과나 일상이 주어지지 않은 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자학적인 글을 생산하게 한다"는 다소 자조적인 표현으로 일상의 답답한 한계를 설명하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서남권밝은신문 전북투데이에도 함께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