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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실 안 지하실 전체와 통하는 작은 문. 틈새에 시멘트가 발라져 있다. 5월 25일 현재.
보일러 실 안 지하실 전체와 통하는 작은 문. 틈새에 시멘트가 발라져 있다. 5월 25일 현재. ⓒ 한국고양이보호협회
밤 10시께 36동 앞 현장에 도착하자 많은 주민들이 나와 있었다. 보일러실은 작은 방처럼 되어 있고 안에는 나머지 지하실 공간과 연결되어 있는 작은 문이 있다. 고양이들은 주로 그 작은 문을 통해 지하실 전체에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25일 오후 길냥이 주민 중 한 분이 그 작은 문에 시멘트가 발라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길냥이 주민의 연락을 받고 도착한 동물단체 회원들은 고양이들의 서식공간이 모두 폐쇄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그 문을 부쉈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해 보니 개방하기로 되어 있던 보일러실 문이 다시 굳게 닫혀 있었다.

보일러실로 들어가는 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5월 25일 밤 10시 현재.
보일러실로 들어가는 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5월 25일 밤 10시 현재. ⓒ 전경옥
26일 오전. 전화 통화에서 관리소장은 "시멘트를 바른 것은 난방배관이 지나가는데 구멍이 났기 때문이며 보일러실로 들어가는 문을 잠근 것은 아파트 기물이 파손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동 대표들은 지난 5월 4일 문제가 된 36동이 폐쇄된 이후, 나머지 동도 폐쇄할 것이며 동물구조관리협회에 연락해 고양이들을 포획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집해왔다. 그러나 길냥이 주민들은 동물구조관리협회의 구조 방법에 반대하고 있다. 동물구조관리협회는 덫을 놓고 며칠 후 와서 잡힌 고양이들을 데리고 간 뒤 일정 시기가 지나면 안락사시키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5일 지하실문에서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서 길냥이 주민들이 119를 불러 문을 열고 덫에 잡힌 고양이를 구조한 일이 있었다. 길냥이 주민들은 고양이를 인근 동물병원으로 옮겼지만 덫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다 발에 심한 상처를 입어 결국 파상풍으로 죽었다.

5월 8일 지하실에서 구조한 고양이 새끼.
5월 8일 지하실에서 구조한 고양이 새끼. ⓒ 다음 카페 냥이네
26일 현장에서 만난 길냥이 주민들은 "우리가 안전한 방법으로 고양이들을 잡아서 중성화 수술을 하고 입양을 알선해 개체수를 줄여 나가겠다고 하는데 굳이 빠른 시간 안에 포획하겠다는 것은 너무 잔인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길냥이 주민들은 인도적인 포획에 합의했으면서도 다시 문을 폐쇄한 관리소 측에 항의하고 있었다.

인도적인 TNR 프로그램에 주목해야

이미 도시 생태계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길고양이들. 동물단체들은 늘어난 길고양이의 수를 인도적인 방법으로 줄이기 위해 TNR 프로그램을 제시해 왔다. TNR 프로그램은 길고양이의 포획(Trap)-불임수술(Neuter)-방사(Return)절차를 의미하는 세계 공용어.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곳이 과천시이다. 과천시는 2002년부터 TNR 프로그램을 실시해 이미 안정화 단계에 있다. 이제 고양이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고 민원도 사라진 상태.

그러나 서울시의 경우 대부분 각 구청이 동물구조관리협회에 포획을 요청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서울시 집계에 따르면 2004년 각 구청이 구획한 고양이들의 수는 2872마리, 2005년 2823마리이다.

서울시 중 TNR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는 유일한 구는 양천구다. 양천구 내에서 길고양이들을 둘러싼 주민들 간의 갈등이 시작된 것은 2005년. 갈등의 양상은 동부이촌동과 비슷했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입양, 중성화를 해주고 있는 주민들과 길고양이들을 포획, 동물구조관리협회에 넘기려는 주민들 간의 갈등이었다.

양천구청의 담당 공무원은 22일 통화에서 "구청은 유기된 동물에 대한 민원이 있을 때에만 동물구조관리협회에 포획을 요청하고 있지만 양천구의 경우 길고양이들을 돌봐주는 주민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밥을 주고 중성화를 해주는 주민들이 있다면 그 고양이들을 유기된 고양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주민의 자율적 관리가 있다면 동물구조관리협회에 포획을 요청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지난 5월 11일 동물단체들은 아파트 한 동을 일방적으로 폐쇄시킨 동 대표들을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이원복 동물보호연합 대표는 "안전한 방법으로 포획, 중성화 후 방사라는 인도적 방법을 제시했음에도 지하실을 일방적으로 폐쇄한 것은 안에 있는 고양이들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지하실 내부의 모습. 6월 4일까지 이 안에서 구조작업이 벌어질 예정이다. 5월 25일 현재.
지하실 내부의 모습. 6월 4일까지 이 안에서 구조작업이 벌어질 예정이다. 5월 25일 현재. ⓒ 한국고양이보호협회
5월 26일 오후 1시. 박소연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와 관리소장, 길냥이 주민들은 경찰의 입회 아래 6월 4일까지 지하실에 있을지 모르는 고양이들을 구출하는 데 합의했다고 한다.

문제가 TNR 프로그램 실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고양이들을 포획하는 방법도 문제다. 지난 3주간 현장에서 고양이들을 관찰하고 구조해 온 고양이 전문가 김아무개씨는 동 대표들이 선택한 포획 방법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고양이들의 습성을 무시한 채 단기간에 고양이들을 꺼낸다면 고양이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36동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고양이. 5월 26일 현재.
36동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고양이. 5월 26일 현재. ⓒ 동물사랑실천협회
이제 좁고 어두운 통로 안에서 구조작업이 매일 진행될 것이다. 6월 4일까지 고양이들을 구출하지 못한다면 다시 문은 폐쇄될 것이다. 과연 갇힌 고양이들을 안전하게 구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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