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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80년 완성된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의 밖과 안. 5세기에 동방의 한 스님이 검투사들 사이로 뛰어들어가 잔인한 경기를 멈추라고 호소하다 관중의 돌에 맞아 순교한 후 검투경기가 사라지게 됐다고 한다.
서기 80년 완성된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의 밖과 안. 5세기에 동방의 한 스님이 검투사들 사이로 뛰어들어가 잔인한 경기를 멈추라고 호소하다 관중의 돌에 맞아 순교한 후 검투경기가 사라지게 됐다고 한다. ⓒ 김동주 여행전문가, 치과전문의
[박은경 세계 YWCA부회장] 로마는 2000여년의 시간을 담은 도시답게 역사의 덩어리인 건물들로 길거리가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29년 만에 다시 들른 내게 로마가 그 역사의 무게를 30년쯤 가볍게 느끼게 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로마 거리를 6시간 동안 걷고 또 걸으면서 오랜 시간 동안 로마 거리에 찍혀 있을 수많은 발자국 속에 내 발자국을 거나하게 섞은 탓일까?

로마, 6시간 걸으니 역사의 숨결 낱낱이 느껴져

로마시 중앙에 위치한 비토리오 에마뉴엘II 기념관은 이탈리아의 통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20세기 초에 유서 깊은 건물들 사이에 비집고 지은 건물이지만 그 위용이 대단하다. 이탈리아 통일기념관 비토리오 옆에 넓은 포로 로마노(로만포럼) 잔해가 널려 있다. 이곳은 851년 지진과 1084년 로만족의 방화로 폐허가 되어버린 채 지금까지 남아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시기의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건축물인 높이 15m의 코린트식 기둥들도 폐허 속에 남아 있다. 아직도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 여기저기에 흙무덤이 있었다.

서기 80년에 완성된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은 로마인들의 세계 제패 위엄을 만끽하기 위하여 동물과 검투사의 치열한 혈투에 환호했을 8만 관중의 함성을 담아내는 그릇 같았다.

수요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수요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 여성신문
'고대' 착시현상 일으키는 로마 거리

이 근처에 가득한 다양한 바실리카 건물들, 포룸, 사원들 사이를 걸으면 "아, 역사는 이렇게 현장성과 현재성이 있을 때 실감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한국에서는 궁전 외에는 역사를 실감할 수 없는 현실에 비탄했다.

한국의 2000년 역사의 중심지였던 한강변에 어쩌자고 고층 아파트를 지었단 말인가? 2000년 역사의 현장을 어떻게 1980년 이후 한강변에 사는 개인들 소유로 만들어 발굴 한번 못하게 한 정책은 무지 탓으로 돌리고 말아야 하는지.

로마인들은 긴 역사의 현장에서 새로 짓는 건물이 거의 없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건물의 높이가 일정하다. 거리를 활보하는 로마 시민들이 현대인의 옷을 입고 있지만 순간적으로 이들이 마치 고대 로마시대에 살고 있다는 착각이 들면서 마치 영화 세트장에서 엑스트라로 출연한 사람들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왜 새 건물을 짓지 않느냐'는 질문에 한 이탈리아인은 집을 지으려고 땅을 파면 유물이 발견되기 마련인데 이를 고증하고 해결하려면 한두 세대가 걸리므로 아예 땅을 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단다. 한 사람이 자기가 사는 집을 서너 번도 더 짓고 있는 한국인의 삶을 보면 한국인들에겐 역사에 자신을 접목할 수 있는 교육의 길이 막혀 있음을 실감한다. 긴 역사에서 이어지는 자신의 삶을 인지하고 배우게 되는 삶의 가치를 인지하기 어렵다.

이번 로마여행은 교황청으로부터 받은 세계YWCA 회장단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세계 YWCA 부회장으로 두 번 피선돼 7년째 일하고 있는 필자는 회장, 사무총장과 함께 교황청에서 운영하는 도무스로무스 호텔에 사흘간 머물면서 식사 때마다 검은 옷의 신부님들과 이웃하였다.

교회와 이탈리아 정부 간의 '로마 문제' 해결책으로, 265명의 교황을 배출한 교회에서 1929년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작은 국가인 '바티칸 시' 정부가 탄생했다. 바티칸에 교황이 살기 시작한 것은 1377년부터이며, 현재의 성 베드로 성전은 유명한 건축가와 예술가들의 참여로 16세기에 재건됐다.

이 성전의 상징 중 하나이자 미켈란젤로가 70세가 되었을 때 만들기 시작한 둥근 은빛 하늘색 돔은 로마의 연푸른 하늘과 무척 잘 어울린다. 예술가 조상들의 뛰어난 감각에 감격할 뿐이었다. 라파엘, 베르니니, 마더노… 끝없이 이어지는 예술가들이 참여해 건립된 것이 성 베드로 성당이다. 21세기 지구인들은 수요일마다 1만 명씩 이 광장과 성전에 들어 하느님을 경외하고 예술가들을 칭송한다.

여러 종교와 대화 시도하는 바티칸 노력에 경의

교황을 뵙기 전날, 하루 종일 교황청에서 관계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바티칸 정부의 행정 관계자에게서 교황청이 세계 평화를 위해 60년대부터 기울인 노력을 듣고 감탄했다. 11개의 교황청 위원회 중 기독교 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위원회, 평신도 위원회, 정의 및 평화 위원회 등 3개 부서를 방문해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다.

천주교는 세계 평화를 위해 종교 간 대화를 일찍부터 시도하였고, 최근에는 예수를 구세주로 믿지 않아 구세주가 재림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유대교와도 대화를 시작했다는 맥도널드 신부의 보고를 듣고 천주교의 맹렬한 평화 시도를 읽을 수 있었다.

필자는 기독교의 믿음원리가 다양한데 어떻게 통합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무티소 신부는 다양함 속에서 평화를 이루려는 의지가 더 가치 있다고 답하여 필자를 감동시켰다.

지난 사월 초파일 정진석 추기경이 조계사에 가서 지관 총무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각 성당에서 인근 불교 사찰로 가서 상호 유대를 맺어가는 일들이 오랜 종교 간 대화를 통한 바티칸 정부의 평화 추구 결과임을 알 수 있었다. 날로 인기를 더해가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부드럽고 다정한 손길이 지구상에서 터무니없이 벌어지는 폭력과 갈등을 치유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은 매우 중요한 국가입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와의 만남

▲ 교황을 알현 중인 필자(가운데 흰 한복), 부시 미 대통령 제수이기도 한 플로리다 주지사 부인인 부시 여사, 일본의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의 딸, 세계YWCA 회장 모니카 체체와 사무총장 무심비 칸요로.
로마 교황청에서는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일반 관중의 알현이 이루어진다. 필자는 회장 모니카 체체, 사무총장 무심비 칸요로 및 3명의 부회장들과 함께 바티칸 정부의 초대를 받고 지난 10일 교황을 알현할 수 있었다.

1시간 전부터 소지품을 검사받은 뒤 자리를 잡은 전 세계에서 온 1만여 명이 운집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성도들은 기다리던 교황의 모습이 광장 오른쪽에 보이자 환호했다. 조그맣게 멀리서 움직이는 하얀 차 위에서 하얀색 복장과 하얀 머리를 한 교황의 모습은 마치 동화 속의 요정같이 보였다.

맨 뒤 마지막 줄까지 20여분간을 돌고 돌아 하얀 차는 드디어 단상에 올랐고, 교황은 바티칸성당 정문 앞 중앙에 마련된 네모난 붉은 햇빛 가리개밑 중앙에 마련된 교황의자에 앉았다. 가리개 밖 좌측에는 붉은 장식이 빛나는 추기경들이 앉고 우측에는 단상에 특별히 초대된 인사들이 앉아 있었다.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폴란드어, 이탈리아어 등 6개 국어로 그 자리에 와 있는 전 세계의 단체들을 다 열거할 때 각 단체들은 함성과 함께 교황을 찬양하였고, 의자에 앉은 교황은 일일이 손으로 화답했다. 교황은 의자에 앉은 채 신부들의 도움을 받아 세계에서 온 성도들을 6개 국어로 매번 환영하고 축수해 주었다.

2시간에 걸친 미사가 끝났을 때 추기경들을 시작으로 교황 알현이 진행되었다. 교황의 손을 잡고 한 사람씩 무릎을 꿇고 고개숙이는 추기경들의 모습에서 교황에 대한 경외심을 느낄 수 있었다.

우측 단상의 맨 앞줄 10여 명만이 교황과 대담할 수 있도록 초대되어 있었다. 필자 옆에는 미국 부시 대통령의 동생인 플로리다주 주지사의 부인이 있었고, 일본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의 딸이 그 옆에 자리하였다.

교황이 드디어 우리 쪽으로 왔을 때 네 번째 서있던 필자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교황의 손을 잡고 감격에 넘쳐 "한국에 추기경 두 분이 계셔서 저는 무척 행복합니다"라고 말하자 교황은 "한국은 매우 중요한 국가입니다"라고 화답해 주었다.

교황은 무척 다정하고 평화롭고, 비형식적이었다. 필자의 손을 감싸쥔 손길은 그렇게 부드러울 수 없었다. 의례적이거나 형식적인 모습은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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