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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겉그림.
<강의> 겉그림. ⓒ 돌베게
전쟁을 경계하면서 묵자가 한 위의 말이 내가 보기에는 신영복 선생의 <강의>의 밑에 흐르고 있는 기본적인 관점인 듯하다. 수천 년 전 현인들의 고언들을 읽어내는, 어찌 보면 무거운 그의 강의가 무척이나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인생의 길 위에서 단단하지 못하게 서있는 나에게 이 책은 무척이나 소중한 선물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지친 여행길 어디 쯤엔가에서 정갈한 집을 만나 그 속에서 귀하게 며칠 대접받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마 그 시간들은 여행의 내내 나의 마음속에 의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전의 글귀들도 좋지만 책의 곳곳에는 그 고언들과 더불어 차분하면서도 힘이 있는 저자의 목소리가 들어있다. 특히 디지털과 속도로 대변되는 지금, 수천 년의 시간의 뒤에 있는 글들이 왜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은 역사에 대한 학습 전반에 적용되어도 손색이 없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디딤돌이면서 동시에 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짐이기 때문에 지혜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을 지혜로 만드는 것이 바로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고전 독법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면서 동시에 미래와의 대화를 선취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유명한 말은 이제 그 거대한 유명세 덕에 이제는 역사를 지칭하는 하나의 레토릭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서 대화를 이야기하는 저자의 말은 신선하다. 그는 그 대화 속에서 미래를 향한 우리의 생각의 좌표를 함께 고민해 보자고 권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권유와 노력은 책의 처음과 끝 내내 지속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 속에서 저자가 화두로 던져놓은 것은 바로 '관계'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관계로 바라보며, 각 대상들의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을 하면서 이 화두와 함께 고전을 읽어나가려고 한다.

서로를 관계로 보지 않고 '존재'로 보아왔던 소위 근대의 사상들 속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더욱 비존재화되는 지금의 아이러니를 풀어가는 해법 중 하나로 관계론을 제시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을 경쟁에서 승자로 만들 것인가 하는 책들이 서점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지금, 존재란 단독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새로운 비전을 갖기 위해서는 나와 나를 둘러싼 이들과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그의 관점은 단연 돋보인다.

<강의>에서는 시경, 주역, 논어, 맹자, 노자 등 그야말로 대표적인 동양 고전의 일부를 다룬다. 그 안에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고 무심코 지나쳤던,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아쉬운, 구절들도 있다. 뿐만 아니라 몇 번을 정성스럽게 읽어야 기억에 남는 조금은 힘든 부분들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색을 가진 고전의 조각들이지만, 그 가치에는 우열이 없다. 이미 알았던 것은 새롭게 발견하게 되고, 낯설었던 것들은 알아가는 즐거움을 준다.

개인적으로는 <논어>가 가장 인상 깊었다. 사실 나는 공자 및 그의 사상에 별로 호감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이다. 몇 번을 생각해도 노자나 장자의 말들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깨달음'에 가까웠다. 그러나 일상을 살아가면서 나의 아둔함에 대해 느꼈던 답답함이나, 나의 옹졸함에 대해 느꼈던 부끄러움들의 실체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을 하게 해준 것은 역시 <논어>였던 것 같다. 요즈음은 '내가 가장 나를 잘 알 것'이라고 단정 내렸던 나의 생각에 대해 무지한 의문을 던지고 있는 중이라 아래의 말이 가장 와 닿았던 것 같다.

"무욕과 무사에서 우리의 논의를 끝낸다면 그것은 너무나 상투적인 윤리학에 갇히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무욕과 무사를 살포하는 것보다 "모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功過를 불문하고 아무리 교묘한 방법으로 그것을 치장하더라도 결국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나 각자가 놓인 상황에 따라서 <강의>는 인생의 여러 측면을 돌아보게 하는 '다목적'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나 꽉 짜인 인생을 강요하는 사회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노자와 장자에 관한 부분을 읽어볼 수도 있다. 옛 사람들의 문학에 대한 감수성과 그에 얽힌 관계를 보고 싶다면 시경에 대한 강의가 더욱 재밌게 와 닿을 것이다.

이처럼 <강의>는 한 권이지만, 생각의 가지는 여러 개로 뻗게 해 주는 굵은 나무와도 같은 책이다. 하루 하루, 앞날에 치여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너무나 없었다면, <강의>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데 너무나 부드럽고, 즐거운 방식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덧붙이는 글 | 제 개인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 지음, 돌베개(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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