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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늦게 일어날까봐 어젯밤에 핸드폰 알람을 5개나 맞추고 잠들었다. 그러나 긴장했는지 새벽 5시도 안돼 눈이 떠졌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새벽을 가르며 투표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새벽 5시 14분, 제일 먼저 투표소에 도착했다. 혼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선거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을 무렵 멀리서 할머니 한 분이 걸어오셨다.

"너무 일찍 오신 것 아녜요? 어디서 오셨어요?"
"괜찮아요~ 뭐. 여기 앉아서 기다리지 뭐. 섯바탱이(옥천 지역이름)에서 걸어온겨."

▲ 새벽 6시 무렵. 투표를 위해 옥천 2투표소에 모여든 유권자들
ⓒ 송선영
헉. 섯바탱이는 걸어서 족히 40분이 넘는 거리다. 투표에 대한 할머니의 무서운 '집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투표 시작 30분 전인 새벽 5시 30분 무렵.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래도 시간이 일러서인지 슬금슬금 걸어오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투표소 앞은 순식간에 긴 줄이 만들어진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막무가내로 줄을 서신다. 자칫 맨 앞에 서 있는 나까지 제치실 눈치다.

'맨 처음에 투표할 거라고 다짐했는데… 꼭 맨 처음 투표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으로 줄 맨 앞에서 30분간 내 자리를 굳건히 지키지 않았던가. 다행히 내 자리까지는 욕심을 내지 않으셨다.

새벽 5시 45분쯤. 한 아저씨가 급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할아버지, 할머니께 말을 건넨다.

"급하게 대구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하는데, 먼저 투표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셔유~ 근디 바쁘다고 아무렇게나 찍지 말고 찍기는 잘 찍어유~."

할머니의 입담에 길게 줄을 서 있던 사람 모두 한바탕 크게 웃는다.

▲ 내 첫 선거를 보다 특별하게 기억하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렀다. 결국 옥천2투표소 유권자 중 맨 먼저 투표소에 기표용지를 넣었다.
ⓒ 송선영
드디어 새벽 6시 정각. 옥천 제 2투표소에서 맨 처음으로 투표를 했다. 정말이지 역사적인 순간이다. 투표를 마친 6시 1분. 투표소 입구를 보니 대략 50여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 프레스카드를 목에 걸고 카메라와 취재수첩 그리고 미니녹음기를 들고 있는 나를 보며 할아버지들이 속닥거리신다.

"기자인감?" "몰러~ 옥천신문에서 나왔나?"

새벽 6시 15분. 지역구 국회의원 등장으로 투표소는 새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악수를 청하는 국회의원, 그 옆에서 함께 인사하는 후보. 늘 저런 모습이면 좋겠다. 먼저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먼저 다가가는 자세를 지닌 정치인의 모습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작은 동네 옥천군, 그 중에서도 옥천읍. 투표하고 나온 사람들 중 아는 얼굴들이 많다. 투표하고 나오시는 아빠 친구 분, 투표하러 들어가시는 교회 목사님 또 그 옆에는 내가 아르바이트 했던 빵집의 주인아저씨. 참 부지런한 분들이시다.

"벌써 출구조사 하냐?"면서 신기한 듯 바라보신다.

안개가 완전히 걷힐 무렵인 6시 30분. 투표소 앞은 작은 만담의 장소로 변한다. 요란하고 소란스러운 할머니들, 담배를 주고받아 피우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는 할아버지들. 뭐가 그렇게 재밌고 즐거우신지 연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생기가 돌던 아침 투표소 분위기가 갑자기 누군가의 언성으로 인해 싸~해졌다. 사진이 첨부된 신분증이 아닌 주민등록등본을 가지고 온 어느 아저씨 때문이다. 투표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으신 모양이다.

막 투표를 마치고 나온 안중원(37)씨는 "옥천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된 사람에게 투표했는데 공약 그대로 일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옥천에 대한 소박한 바람이 전해지는 아침 투표소 풍경. 지금도 투표소에는 서민들의 소박한 바람과 지역 발전에 대한 기대가 표현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송선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5·31 지방선거 특별취재팀 소속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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