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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소로 들어가고 있는 아들
투표소로 들어가고 있는 아들 ⓒ 김혜원
올해 만 20세가 된 아들은 이번 지방선거에 자신이 유권자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 감격스러운가 봅니다.

18세 생일이 지난 후 병무청에서 온 신체검사 통지 이후로 또 다시 국가로부터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음을 통지 받은 녀석은 생애 첫 투표를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 투표방법과 과정, 그리고 후보자 등 이런 저런 궁금함을 물어옵니다.

"이번 투표는 몇 명이나 뽑는 거예요? 잘 모르는 사람들이던데 엄마는 누굴 뽑을 건데요?"

아들은 이번 선거 후보자가 워낙 많고 복잡해 잘 모르겠다는 나의 대답이 시원치 않았던지 인터넷으로 지역에 나오는 후보들에 대해 정보를 알아본 모양입니다.

아들은 첫 번째 선거니 만큼 후보와 공약을 찬찬히 살펴보고 찍겠다며 '공약이 먼저'라는 나름대로의 투표기준을 설명합니다.

"우리 지역은 교육 분야를 발전시키면 좋을 것 같았는데 마침 그런 공약을 내놓은 후보가 있네요."
"누군데?"
"이아무개라는데요? 엄마도 들어본 사람이에요?"
"모르겠네. 처음 듣는 사람이야. 무슨 당인데?"
"B당이요."
"엥, B당?"
"당이 어때서요?"
"뭐 어떻다기보다는 그냥 기왕이면 다른 당 인물이면 어떨까 하고."
"당이 무슨 소용이에요.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공약이 중요하지. 엄만 당만 보고 찍어요?"

'공약선거'를 해야 한다는 아들은 선거운동원들의 잘못된 선거운동에도 실망했다고 합니다.

"전화 걸어서 무조건 무슨 당 누구이니 잘 부탁드린다는데,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뽑느냐구요. 그래서 공약이 뭐냐고 했더니 무조건 열심히 하겠대요. 그러고 보니 다들 엄마처럼 당만 보고 뽑는가 봐요. 당만 보고 뽑으면 실제 무슨 일을 하는지는 관심도 없다는 거예요?"

"다들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다 열심히 하고 잘 하겠다잖니. 그러니 기왕이면 지지하는 정당 사람을 뽑으려는 거지."

"말도 안 돼요. 지자체의 장은 지역에서 직접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당을 보고 뽑아요? 길에서 후보자인지 운동원인지한테 명함을 받았는데 명함에도 이름과 경력, 어떤 당인지만 나와 있더라구요. 당을 보고 뽑아달라는 거잖아요."

첫 선거를 하는 아들은 어른들의 선거 문화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면서 공약이 필요없는 선거라면 뭐 하러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지역사람을 뽑는지 모르겠다고 아픈 소리를 합니다.

아들이 투표 용지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아들이 투표 용지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 김혜원
선거일 아침 우리 집의 세 유권자는 나란히 투표소로 향했습니다.

아들은 어린 시절 부모의 손을 잡고 와보긴 했지만 어른이 되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러 투표소에 오니 다소 흥분이 되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생애 첫 투표를 하고 투표소를 나온 아들은 엄마 아빠가 누구를 뽑았는지를 궁금해 합니다.

"엄마 아빠는 누구 찍었어요? 다 기표했어요?"
"그럼 여섯 번 다 했지. 넌 누구 누구 찍었니?"
"전 세 번만 기표했어요.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뽑아요. 모르면 차라리 기표를 하지 않는 게 낫지요."
"잘 했네. 모르면 안 하는 것도 방법이지 뭐."

무책임한 한 표를 날리느니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녀석은 자신이 뽑은 후보자가 꼭 당선되길 바란다며 개표결과가 나오기 전에 집에 들어오겠다고 합니다. 뭐가 그리 궁금하다는 건지 저러다 자신이 뽑은 후보가 낙선되면 실망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도 됩니다.

투표를 마치고 외출을 했던 아들은 자신의 말처럼 개표를 마치기 전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개표결과를 물어옵니다.

"누가 됐어요?"
"아무개가 됐다야. 니가 뽑은 사람은 안 됐어."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바보같은 녀석들…."
"왜?"
"밖에 나가서 친구들을 만났는데 애들이 다들 A당 찍었다더라구요."
"A당을 지지하면 그럴 수 있지 뭐."
"그게 아니구요. 아침에 엄마 아빠가 같이 가면서 무조건 A당에만 기표하라고 그랬대요."
"그 애들은 말도 잘 듣네."
"그러게요. '투표도 부모가 하란다고 하냐'고 그랬더니 어차피 공약도 후보도 모르니까 엄마, 아빠가 골라주는 대로 찍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랬구나. 하긴 젊은 유권자 중에는 부모의사에 따라 투표하는 애들도 적지 않을 거야."

가족단위로 투표장을 찾는 유권자들이 많다.
가족단위로 투표장을 찾는 유권자들이 많다. ⓒ 김혜원
아들은 생애 첫 투표를 앞두고 공약을 비교해가며 심사숙고했던 자신에 비해 별다른 고민 없이 친구들이 찍어준 인물이 뽑힌 것이 두고 두고 아쉬운지 텔레비전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합니다.

"부모님 따라가서 부모님 의사대로 투표했다는 내 친구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지정당도 세습된다는 것 말이에요. 부도 세습되고 학력도 세습되고 이젠 지지정당까지 세습되네요. 우리나라의 정치가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생애 첫 투표를 한 아들의 씁쓸한 말 한마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생애 첫 투표를 한 아들의 눈에 비친 '2006 지방선거'는 공약도 없고 인물도 없는 오직 당만 보고 투표하는 어른들과 그런 부모의 성향을 그대로 세습하는 친구들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들의 말처럼 우리 정치는 쉽게 바뀌지 않을까요? 그래도 희망을 걸어 봅니다.

다음 선거에서는 아들이 우리 정치의 또 다른 희망을 보게 될 것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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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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