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1차 본협상이 개최되는 오는 5일부터 10일까지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원정시위가 열린다.
범국민운동본부는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시위와 행사를 개최한다는 입장에서 미국 현지 경찰에 합법적인 신고를 마친 상태다.
그러나 지난달 한국정부는 5개부처 장관 합동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지난해 홍콩시위를 거론하며 폭력시위로 번질 것이 우려되는 미국 원정시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 정부가 이같은 강경 입장을 발표하고 난 뒤 주한 미 대사관은 노동자, 농민 등 주요 간부에 대해 미 입국 비자발급을 거부하고 있다.
주요 간부에 대해 미 입국 비자발급 거부했지만...
범국민운동본부는 1일 서울외신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축소되기는 했지만 50여명의 대표단을 파견할 것을 발표했다. 그리고 미국 현지 70여 교포단체나 미국 내 사회단체와 함께 공동행동을 펼칠 것을 밝혔다. 미국 내 활동은 주로 기자회견, 국제워크숍, 국제연대 집회 및 결의대회, 행진 등이다.
이에 앞서 민주노총은 지난 5월 15일~21일까지 사전 답사 및 협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일반적으로 한·미 FTA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부시 정부가 한국정부에 압력을 행사하여 졸속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에 미국 노동자들의 정확한 입장은 알려져 있지 않았다.
물론 지난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당시에 미국 노동계는 노동권이 보장된다는 전제에서 이를 찬성했다.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 NAFTA는 캐나다·멕시코의 노동자들뿐만이 아니라 미국 노동자들에게도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했다는 결과로 나타났다. 미국 노동자들 역시 상시적 구조조정으로 고용 불안과 삶의 질이 하락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국익이 아니라 미국 자본가와 기업주의 이익을 위한 FTA라는 것이 미국노총의 설명이다.
미국 노동계는 지금 전통적인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와 최근 이로부터 분리된 승리혁신동맹(Change to Win Coalition)이 1000만명 정도를 구성원으로 하고 있다. 이 두 노총 역시 한미FTA에 대한 우려와 관심이 높은 편이었다. 한국의 민주노총처럼 '한·미 FTA를 반대한다(oppose)'는 직접적 표현은 아니었지만 NAFTA를 모델로 한 한·미 FTA는 '받아들일 수 없다(unacceptable)'는 것이 미국노총의 분명한 입장이었다.
미국노총도 한미 FTA 반대 입장
이는 미국노총이 미 의회에서 증언한 내용의 핵심이었다. 미국노총은 지난 3월 24일 미국의회에 제안한 증언(testimony)에서 표준적인 FTA모델이 한국과 미국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것임을 표명하였다. 그리고 한국과의 교역증대는 실질적으로 노동권이 개선되고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조치들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무역협상을 시작하기 전 한국의 노동법이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관한 국제기준에 완전히 부합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국노총이 과거와 달리 현재 추진하고 있는 FTA를 실질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은 공장의 해외이전과 고용불안, 무역적자 등 미국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국노총은 전통적으로 민주당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지난번 미국이 중남미자유무역협정(CAFTA)을 체결할 당시 민주당과 노동계의 반대로 미 의회에서 2표 차이로 겨우 통과된 것도 한·미 FTA반대투쟁에 자신감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연내 체결을 목표로 하는 한·미 FTA협상 역시 미국 노동계는 민주당과의 협조를 통해 반대 입장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오는 11월 상원의 1/3과 하원 전체를 새로 뽑는 미국 중간선거가 부시 행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국 노동계는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 민주노총은 6월 원정시위 사전협의차 미국 출장에서 미국노동계와 심도 있는 협의를 통해 위와 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로 합의했다. 한·미 양국 4개 노총의 공동성명서는 한·미 FTA 1차 본 협상이 열리는 워싱턴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원정 시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저항의 장이 될 것
미국의 압력으로 졸속 추진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한·미 FTA는 사실 한·미 양국이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 이번 사전 미국 답사에서 만났던 미무역대표부(USTR) 노동관련 담당자들은 한·미 FTA는 2001~2002 미 상원 무역위원회에서 추진하기로 확정하였고 이어 2004~2005년 한.미 당사국 간에 면밀히 검토하여 초안까지 만들었다고 했다.
미국을 비롯한 경제 강대국들은 FTA를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WTO 세계체제를 조기에 완성시키려 한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남미의 몇 나라는 정권이 붕괴하였다.
자본의 이해만이 관철되고 민중의 삶이 파괴될 한·미 FTA를 반대하기 위한 이번 미국원정 시위는 이해당사자들의 정당한 권리이자 한·미 양국 노동자, 민중들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저항의 장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허영구 기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