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같던 선거운동이 긴 휴전에 들어갔다. 귀청을 찢던 유세차량의 소음도, 그 많던 선거운동원들과 홍보차량들과 거리 현수막들도 모두 사라졌다. 전철역에 나뒹굴던 각양각색의 명함도 깨끗이 치워졌다. 거리는 다시 평온을 되찾고, 사람들은 여전히 주위 것들에 무관심한 표정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21명의 녹색후보 중에 2명만 당선되고 나를 포함해 19명의 후보들이 낙선했다. 현직 시의원의 프리미엄도 의정활동의 성실함도 민심의 거대한 쓰나미 앞에 가혹하리만치 떠밀려났다.
지금 이 순간, 후보보다 더 열정적으로 도와주었던 분들에게 한없이 죄스러울 뿐이다. 육체의 피곤함보다 나의 능력과 그릇을 되돌아보는 뼈아픈 자책과 반성이 더 크게 밀려온다.
[이유 ①] 정치불신과 무관심의 블랙홀
이번처럼 힘들게 선거를 치러보기는 처음이다. 기초의원까지 정당공천제가 시행됐고, 중선거구제로 선거구와 비용은 배 이상 늘어났다. 시민들은 극도의 정치불신 때문에 인물과 정책에는 도무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근본적으로는 중앙정치의 갖가지 변수들이 처음부터 정책선거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정치 무관심은 이미 도를 넘어섰다. 명함을 받지않으려 후보자를 피해 저만치 돌아가고, 마지못해 받더라도 발길을 돌리자마자 구겨버리거나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어떤 유권자가 아이에게 우리 선거운동원을 가리키며 "너는 커서 저렇게 되지 말라"고 하는 어이없는 경우도 있었다.
어쩌다 관심있는 분들은 맨 먼저 정당을 물어보고, 무소속 녹색후보라고 하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래도 걸음을 따라가며 설득해 보아도 돌아오는 말은 "다 똑같은 놈들이야, 뽑아줘야 엉뚱한 짓만 하잖어…."
어느 학자가 정치에 무관심한 유권자들을 '합리적 무지'라고 분석한 적이 있었다. 그 놈이 그 놈 같은데 머리 아프게 인물을 비교하고 정책을 평가하느니 차라리 무지하고 모르는 게 합리적이라는 말이다.
[이유 ②] 복잡해진 선거제도, 무성의한 공보물
중선거구제가 유권자들의 판단을 어렵게 만들었다. 집으로 배달되는 공보물만 20장이 넘는다. 그래도 우리 지역은 적은 편이다. 선거구에 따라 30장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관심 없는데 뒤죽박죽 뭉텅이로 배달되는 그 많은 공보물을 꼼꼼하게 비교하며 후보와 공약을 평가하기란 웬만한 인내와 관심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지역일꾼과 풀뿌리 생활정치인을 뽑는다는 취지는 중앙정치의 바람 앞에 위태로운 촛불이었다.
공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누가 누군지 모르겠고, 선거가 너무 복잡하다고 했다. 공보물에 도지사부터 기초의원까지 간단하게 소개한 한 장짜리 안내문만 있었어도 선거는 달랐을 것이다. 무관심과 무성의한 선거제도, 그리고 중앙정당들의 패권 앞에 풀뿌리 생활정치는 설 곳을 잃어버렸다.
[이유 ③] 무소속은 명함도 못 내밀 정당의 벽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는 풀뿌리 무소속 정치인들을 명함조차 못 내밀게 만들었다. 이번에 녹색후보로 출마한 21명 가운데 2명만 살아남았다. 나머지는 의정활동과 지역활동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추풍낙엽처럼 후순위로 밀려났다.
황당한 공약, 단 몇 줄도 안 되는 빈약한 공약을 내밀어도 정당 후보라는 것이 면죄부가 되어 압도적으로 당선되었다. 무소속을 극복하기 위해 별의별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아무리 좋은 공약을 내걸어도 유권자들의 눈길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명함에는 사진과 이력 대신 공약을 넣어돌리고, 선거운동기간 내내 "가정으로 배달된 선거공보물을 한번만이라도 비교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우리들의 유일한 방법였다. 정당공천제를 성토하는 한 유권자는 "굳이 그 많은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그냥 정당공천 받은 사람들을 당선자로 해서 얼른 선거를 끝내자"며 너스레를 떨었다.
정당에 따라 지역 정책이 다르고 공천 인물들의 경향이 다르다면 정당공천제가 의미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지역의 경우를 보아도 정책과 인물 경향성으로는 정당을 판단할 수 없었다. 유일한 판단 근거는 오로지 번호뿐이다. 공약을 보아도 열린우리당은 황당하고, 한나라당은 무성의하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추상적이고 빈약하다.
[이유 ④] 명함·공보물로만 후보검증
공론의 과정이 빠진 민주주의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또하나 절실하게 느낀 것이 후보검증시스템의 부재이다.
유권자들이 후보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명함과 선거공보물 뿐이다. 합동연설회도 없어졌으니 공약과 정책에 대한 검증과정이 전혀 없는 것이다. 개인 연설이야 자기 홍보에 불과한 읍소 수준이다.
갈수록 정치무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공보물 하나로 알아서 판단하라는 던져주기식 후보검증은 민주주의의 요구와 맞지 않는다. 정당공천이 검증과정이라고는 하지만 인물을 중심으로 판단할 뿐이다. 정책과 공약, 그리고 지역의 현안에 대한 판단능력은 토론이 그나마 효과적이다.
대안을 제시하면, 아예 법으로 동네의 공원이나 광장에서 후보자들끼리 수차례의 공개토론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후보들도 긴장감을 가지고 선거운동에 성실하게 임할 것이다. 그것이 유권자에 대한 책임과 지역의 현안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하는 유일한 대안이다.
그러나 녹색의 풀뿌리 다시 틔운다
정치 무관심은 대안정치로 극복해야 한다. 녹색후보들은 다시 뭉쳐 녹색당을 향한 발걸음을 더욱 재촉할 것이다. 이번 패배를 풀뿌리민주주의의 대안 정치세력으로 가기 위한 더 큰 기회로 삼을 것이다.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은 더욱 절절한 법. 냉혹한 시대 상황의 폭풍 속으로 뛰어들어 준엄한 민심을 받아들이고, 그래서 더욱 튼실한 녹색정치를 꽃피울 것이다. 무관심은 무능과 부패를 낳을 뿐이다. 그 악순환의 고리에 얽혀있는 정치인과 유권자가 스스로 자기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과정이 결과로 나타나는 정치, 결과가 다음 과정을 더욱 진지하게 만드는 정치. 지금 상황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꿈이지만, 그래도 그 꿈은 여전히 우리를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힘이다.
덧붙이는 글 | 김달수 기자는 경기도 고양시 의원(blog.naver.com/velato)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