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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풀을 뽑다가 문득 병아리들 생각에 야옹이가 불쑥 떠올랐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아내마저 공주시내에 장보러 나가 집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헌데 별 생각없이 마당에 병아리들을 풀어 놨던 것이었습니다. 호미를 팽개쳐 놓고 집으로 내달렸습니다.
집 마당으로 들어서자 맨 먼저 야옹이가 눈에 잡혔습니다. 병아리들은 대문 앞 풀숲에서 한가롭게 먹이를 쪼아대고 있었습니다. 야옹이 녀석은 병아리들 옆댕이에 납작 엎드려 있었습니다. 동그란 두 눈을 병아리들에게 고정시켜 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병아리들을 노리고 있는 그런 예리한 눈빛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나온 지 보름도 채 안 된 병아리들은 야옹이가 옆에서 쳐다보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어미 품을 떠난 병아리들은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로 중무장한 야옹이가 어떤 동물인지 그 속성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싶어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손가락을 꼽아가며 병아리들을 세어 보았습니다. 열두 마리 그대로 였습니다.
“어이구, 우리 야옹이 착허네.”
야옹이를 의심한 것이 미안했습니다. 날아다니는 새까지 잡아먹기도 하는 야옹이가 병아리들을 노렸다면 벌써 몇 마리는 저승에 갔을 것이었습니다. 병아리들은 쉼 없이 “삐약 삐약”소리를 내며 무엇이 그렇게 바쁜 일이 있는지 쫑쫑쫑거리며 여기저기로 몰려다녔고 야옹이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은 병아리들을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야옹이는 오히려 병아리들이 위험지역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는 파수꾼 노릇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병아리들이 다가오면 여전히 야생이 살아있는 우리집 개 '곰순이' 녀석이 어떻게 돌변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목줄이 풀리면 야옹이에게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무작정 달려드는 곰순이 녀석, 야옹이에겐 언제나 눈에 가시였습니다. 녀석은 근질근질거리는 이빨을 드러내 놓고 병아리를 한입에 꿀꺽 할지도 모릅니다.
‘착한 야옹이와 세상 물정 모르는 병아리들’ 그림이 너무 좋아 ‘디카’를 들고 나올 때까지 착한 야옹이는 그 자리에 누워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녀석을 따라 몇 컷의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녀석은 사진찍기에 별 흥미를 못느꼈는지 길게 하품 한번 하더니 슬그머니 자리를 털고 일어섭니다. 자신의 병아리 지킴이 ‘임무 완성’을 하품으로 대신했는지도 모릅니다.
“아직 사진 덜 찍었어, 임마.”
나는 마당 한가운데 그림자를 드리우며 느릿느릿 자리를 뜨는 야옹이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늘어집니다. 디카 화면에 병아리들과 사이가 좋게 보이도록 다시 원위치 시킵니다. 오골계 뱃속에서 나온 시커먼 병아리 한 마리를 녀석의 몸 위에 올려놓기도 합니다.
“어 그려, 그려 그렇지 그렇게 가만히 있어라.”
녀석은 가만히 고개를 돌려 등위에 올라온 까만 병아리 한 마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모델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온몸이 시커먼 ‘곰순이’ 녀석은 저만치 그늘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멀뚱멀뚱 지켜보고 있습니다. 화창한 봄날, 토끼를 잡아먹기도 했던 곰순이 녀석이 설마 ‘먹는 음식 가지고 저것들이 시방 뭣하는 짓여’라고 쭝얼거리지는 않았겠죠?
야옹이 녀석은 저만치 가면 다시 끌어댕겨 사진기를 들이대는 나에게 두손두발 다 든 모양입니다. 녀석은 더이상 자리 옮기기를 포기하고 그 자리에 팔자 좋게 누워 찍거나 말거나 늘어지게 잠을 잡니다. 그 주변으로 병아리들이 쫑쫑쫑 몰려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