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빈 바구니로 갔다가 수확(?)의 기쁨을 안고 돌아오는 사람들
빈 바구니로 갔다가 수확(?)의 기쁨을 안고 돌아오는 사람들 ⓒ 한나영
"Are you picking or eating? (따고 있는 거니, 먹고 있는 거니?)"
"Both (둘 다요)."

딸기도 따고 먹기도 하고.
딸기도 따고 먹기도 하고. ⓒ 한나영
지나가던 중년남자가 털퍼덕 주저앉아 딸기를 먹고 있는 딸에게 묻는다. 딸아이는 거침없이 "둘 다"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을 한다. 하긴 맞는 말이다. 그냥 따 먹기만 한 건 아니었으니까.

지난 5월 27일, 우리 가족은 우리나라 현충일에 해당되는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 연휴에 20분 거리에 있는 '밀키웨이 딸기 농장'을 방문했다. 해마다 이 맘 때가 되면 이곳 딸기 농장은 시민들에게 농장을 개방하여 딸기를 따게 한다고 한다. 물론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다. 일종의 딸기 체험 행사인 것이다.

사실 요사이는 '제 철에 난 과일'이라는 말이 별로 실감나지 않는다. 하우스 농사 덕분에 사시사철 무슨 과일이든 먹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제 철에 난 노지 과일에 눈길이 더 가는 것은 아마도 자연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긴긴 겨울을 보내고 까칠한 봄철의 입맛을 돋우는 데 최고인 딸기! 그 딸기를 직접 따면서 시골 정취에 빠져보기도 하고 낯선 이방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었다.

딸기밭에 나온 다정한 모녀
딸기밭에 나온 다정한 모녀 ⓒ 한나영
가족 단위로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두 여인이 있었다. 잔잔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은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큰소리로 웃기도 하고 부지런히 딸기를 따기도 했다.

"올해 일흔 둘이에요. 해마다 이곳 딸기 농장을 찾고 있지요."

중년 부인과 나이가 지긋한 흰 머리의 할머니. 다정한 모녀간으로 보이는 이들에게 관계를 물었더니 역시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두 모녀의 정겨운 모습을 보니 문득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다. 가슴 속에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오른다. 바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다. 고도원이 쓴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꼭 해드려야 할 45가지'에 한 가지 더 추가하고 싶은 게 생각났다.

'햇살 좋은 봄볕에 딸기 따러 나가기- 따스한 봄날에 어머니와 함께 딸기밭 고랑에 앉아 딸기도 따고 지나간 추억도 두런두런 나누기.'

딸기를 따는 사람들
딸기를 따는 사람들 ⓒ 한나영
딸기밭에는 나이 든 분들만 온 게 아니었다. 부모를 따라 온 아이들도 책에서 본 것 같은 싱싱하고 빛깔 고운 딸기를 "하나, 둘, 셋"하고 세면서 따는데 아주 신이 났다.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귀여워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저마다 다른 포즈를 취한다.

미스 아메리카 딸기 아가씨 캐서린 양
미스 아메리카 딸기 아가씨 캐서린 양 ⓒ 한나영
네 살 먹은 여자아이 '캐서린'은 사진을 찍는다는 말에 들고 있던 우중충한 박스를 내려놓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더니 딸기 하나를 앙증맞게 들고 요염한(?) 포즈를 취하며 카메라를 응시한다.

"어이, 딸기 총각. 여기 좀 보라니까."
"어이, 딸기 총각. 여기 좀 보라니까." ⓒ 한나영
그런가 하면 잠자리채 같은 빨간 망을 들고 열심히 딸기를 따던 남자애는 아무리 카메라를 보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쑥스러운 모양이다.

유모차를 타고 딸기 나들이를 왔어요.
유모차를 타고 딸기 나들이를 왔어요. ⓒ 한나영
유모차를 타고 있던 형제 가운데 큰 아이도 내 카메라를 외면했다. 카메라를 든 아줌마가 너무 눈이 부신(?) 것인지 아니면 너무 이상하게 생긴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간 남자애들은 한결 같이 나를 무시(?)했다.

온 가족이 출동했어요.
온 가족이 출동했어요. ⓒ 한나영
'은하수'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밀키웨이 농장'은 토요일이어선지 가족들이 많이 왔다. 어린 아이들을 대동한 젊은 부부에서부터 나이가 지긋한 노부부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맑은 하늘과 콧잔등을 살랑거리는 따뜻한 봄바람을 맞으며 딸기를 땄다. 그런데 이들 역시 딸기를 따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얘. 그런데 딸기를 안 씻고 먹어도 되니?"
"그럼. 다른 사람들도 다 먹잖아."

"더럽잖아. 흙도 많을 텐데."
"딸기에는 그 더러운 것을 다 덮고도 남을 비타민C가 있으니 그냥 먹어도 돼. 혼자서 깔끔한 척은 다 하고…."

"네 말 맞아?"
"그리고 어차피 우리 인생은 다 흙으로 돌아갈 것인데 뭐 깔끔을 떨고 그래요?"

인생을 달관한 사람처럼 말하는 딸아이의 말을 듣기로 했다.

딸기밭에서 따 온 세 박스의 딸기를 저울에 달고 있다.
딸기밭에서 따 온 세 박스의 딸기를 저울에 달고 있다. ⓒ 한나영
계산이 끝난 뒤 트랙터에 앉아 찰칵!
계산이 끝난 뒤 트랙터에 앉아 찰칵! ⓒ 한나영
두어 시간 딸기를 따고 나니 우리가 가져온 세 박스에 딸기가 그득하다. 다시 트랙터를 타고 처음 도착했던 곳으로 갔다. 우리처럼 딸기 박스를 가져온 사람들이 무게를 달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날 농장에서 산 딸기는 파운드 당 1달러 29센트로 평소 우리가 자주 가던 슈퍼마켓보다도 저렴한 가격이었다. 하지만 싼 값보다 더욱 매력적이었던 것은 자연을 벗삼아 온 가족이 딸기 체험 행사에 참여했다는 것이고 대화를 나누면서 싱싱한 '꿀맛 딸기'를 즉석에서 먹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