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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소장파 모임인 수요모임, 비주류 모임인 발전연, 중도성향의 푸른모임, 초선모임인 초지일관 소속 의원 20여명이 8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긴급연석회의를 열고 전당대회에서 역할론에 대해 논의했다. 각 모임의 대표인 임태희, 박형준, 박계동 의원과 곽영훈 위원장이 기자실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인 수요모임, 비주류 모임인 발전연, 중도성향의 푸른모임, 초선모임인 초지일관 소속 의원 20여명이 8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긴급연석회의를 열고 전당대회에서 역할론에 대해 논의했다. 각 모임의 대표인 임태희, 박형준, 박계동 의원과 곽영훈 위원장이 기자실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 이종호
"가장 큰 적은 내부에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말이다.

박 대표가 말한 '적'은 누굴까? "승리에 안주하는 게 위험한 일"이라고 추가 설명한 걸 보면 대세론을 뜻하는 것 같다. 대세론에 젖어 분위기가 이완되면 틈새가 생기고, 그 틈새가 방죽을 허물 수도 있음을 경계한 것 같다. 잘 나갈수록 몸조심 하는 건 만고의 이치다. 소장 개혁파 의원들이라고 이 이치를 모를 리 없다.

미래모임 결성이 뜻하는 바

이들은 어제 '당의 새로운 미래를 지향하는 모임'(미래모임)을 만들었다. 당 대표를 뽑는 7·11 전당대회에서 독자 단일후보를 내기 위한 한시적인 모임이다. 소장파 모임인 '수요모임', 비주류 모임인 '국가발전전략연구회'와 '푸른모임', 초선 모임인 '초지일관'이 참여했다.

'미래모임'이 독자 단일후보에 목을 매는 이유는 분명하다. 당 대표 경선이 대권주자 대리전으로 흐르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서다. 불이 세면 옆 나무를 태우는 법이다. 그럴 바에는 완충지대를 넓히고 대권주자를 양 옆으로 벌리는 게 낫다.

하지만 이게 전부일까? 아니다. '미래모임'이 지향하는 '미래'는 '당의 새로운 미래'다. '당의 새로운 미래'라는 개념은 이념적 정체성과 지지기반, 지도체제를 모두 아우른다.

시점이 적절하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더 나아가 시민사회단체에선 표심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표심의 보수화 경향이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를 놓고 진보개혁층의 붕괴라는 주장과 일시 이탈이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아무래도 좋다. 한나라당으로선 '붕괴'든 '일시 이탈'이든 호재인 것이 분명하다. '붕괴'라면 '다지기'로 잇고, '일시 이탈'이라면 '껴안기'에 나서면 된다. 그러면 외연이 확장된다.

관건은 '다지기' 또는 '껴안기'의 준비태세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독자 단일후보 주장이 뜻하는 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이 줄곧 외쳐온 '합리적 보수주의'를 선언에서 실천으로, 추상에서 구체로 다듬는 일이다. 한나라당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반사이익' 이미지를 걷어내고 여권과 정책으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7·11 전당대회에서 선출될 당 지도부의 역할이 대권주자 관리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참여정부가 지방선거 이후 집권 하반기 주요국정과제에 주력할 것은 불문가지다. 열린우리당이 정부의 뒷배를 봐줘도 될까 말까 한 과제가 적잖지만 정부와 여당은 파열음을 내고 있다. 한나라당이 이런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면서 정책 조율자로, 비전 제시자로 나서면 '반사이익' 이미지는 걷어내고 '수권정당' 이미지는 강화된다.

새 리더십을 구축해야 한다. 물론 새 리더십의 요체는 유연성이다. 이것이 담보되면 선언 수준에 머물던 '합리적 보수주의'는 한층 구체화되고 지지기반은 확대된다. 여권에서 제기하는 '반한나라당 연합전선'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으로 이것처럼 좋은 건 없다.

이 시도가 성공하면 얻는 게 더 있다. 새 지도부의 임기는 2년, 대선 뿐 아니라 총선까지 관장하게 돼 있다. 새 지도부가 새 리더십을 구축해 대선 승리를 이끌어낼 경우 총선 공천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인물 교체를 통해 당의 환골탈태를 한층 가속화할 수 있다.

'미래모임'의 독자 단일후보 옹립은 전술적 차원을 넘어 전략적 가치를 갖는다. 물론 단서가 붙는다. '성공하면'이란 단서다.

당 대표 경선 출마 의사를 밝힌 인사만 7~8명이다. '미래모임' 권역 안에 드는 인사들만 추린 수치다. 이들의 '욕심'과 '충돌'을 어떻게 조절할지가 관건이다. 이 작업이 실패하면 소장 개혁파는 대권주자 중심으로 헤쳐 모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권주자의 경쟁구도는 조기에 가시화 되고 상황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박 대표의 대선후보 선출시기 조정 거절이 뜻하는 바

이명박 서울시장
이명박 서울시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박 대표는 어제 이명박 서울시장 측의 대선후보 선출시기 조정 요구를 딱 잘라 거절했다. "당 혁신안을 시험도 안 해보고 손대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박 대표는 한 발 더 나아가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유·불리를 따져 후보 선출시기에 논의를 집중하면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했다. 대선 후보 선출 시기를 둘러싼 논란에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는 말이다. 더 쉽게 말하면 이명박 시장 측이 상황이 불리해지자 대선 후보 선출 시기를 늦추자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얼핏 떠오르는 게 경선 불복 가능성이다. 하지만 현실성이 없다. 선거법에는 당내 경선에서 떨어진 사람은 후보 등록을 못하게 하는 규정이 있다.

경선 불복이 아니라 경선 불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선후보 선출시기를 재면 묘한 그림이 나온다. 대선후보 선출시기를 늦추면 늦출수록 대선 판도에 대한 판단이 정교해진다. 이 사이에 여권의 정계개편 가닥도 잡힐 것이다. 한 마디로 판단과 선택의 여지가 넓어진다.

수류탄 안전핀은 뽑혔다. 폭발을 막는 방법은 폭약 탄체에서 신관이 분리되지 않도록 꽉 움켜잡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표와 이명박 시장이 폭탄 제거반이 될 공산은 별로 없다. 한쪽은 연기하자고 했고 한쪽은 안 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지금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고 있다.

시선은 다시 '미래모임'으로 향한다. 이들의 '단일화' 성사 여부에 따라 당내 대권경쟁의 양상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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