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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된장찌개는 한 주에 한번은 먹지 않으면 컨디션이 이상해질 정도로 끄는 힘이 있다. 그래서 서울에 살지만 주말이면 빠짐없이 찾게 된다. 된장찌개뿐 아니라 다른 반찬도 자연스럽고 몸과 잘 어울린다.
이 집 반찬의 재료는 장에서 사온 것이 아니라 월산리에 있는 밭에서 손수 가꾸는 남새들로 만든다. 기른 콩을 따서 삶아 으깨어 메주도 뜨고 두부도 만든다. 언젠가 밥먹으러 갔더니 큰 솥에 메주 콩을 삶고 있었는데 이럴 땐 식사를 뒤로 미루고 손님도 거들어야 한다. 그만큼 누님같은 아주머니가 옛가족처럼 정겹다.
된장찌개는 애호박, 매운 고추, 두부에 된장을 넣고 끊인다. 찌개의 맛과 냄새가 예사롭지 않은 까닭은 자급자족하는 싱싱한 남새에 이 집만의 제대로 담근 된장맛 때문이다. 조미료를 쓰지 않아 덜큰함 없이 뒤끝이 깨끗하다.
적어도 3년은 넘게 숙성시킨 된장을 쓴다. 짚으로 메주를 매달아 방에서 적당한 온기로 띄우는데 대대로 이어오는 담금법으로 해야 이 맛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 새롭고 특별한 것으로 장난을 쳤다간 오히려 제맛에서 멀어진단다. 우리 할머니도 그랬다. 직접 농사 지은 우리콩을 솥에 삶아 메주로 빚고 구들방에서 뜸을 들여 곰팡이를 띄우고 독에 담던 기억이 난다.
장맛을 아시는 손님들이 팔라고 하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조금 떠줄 것밖에 못 만든단다. 정성이 많이 들고 오랜 시간을 숙성시켜야 하는 만큼 많이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장처럼 했다간 이 맛을 살릴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다면 장맛을 버려야 한다는 셈이니 주인 아주머니의 솜씨뿐 아니라 마음씨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이집 된장찌개 맛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칼칼하고 짭쪼름하면서 담백한 맛!
입에 짝짝 달라 붙어 감칠나는 맛!
한술 밥에 두세 번 떠먹게 되는 맛!
밥맛도 일품이다. 보리밥을 시키면 나오는 된장장찌개인데, 보리밥 대신 쌀밥으로 주문하면 압력밥솥에 갓한 밥이 나온다.
찬은 열가지 넘어 나오는데 철마다 같지는 않다. 고기는 없고 모두 김치와 나물 따위의 남새들이니 채식주의자들에겐 제격이다. 나물을 무치는 방법도 짜거나 맵지 않다. 기름, 고추가루, 양념을 섞지 않아 마치 절 음식처럼 담백하게 나물의 맛과 향을 살려 무쳐놓는다. 나물무침의 종류는 콩나물, 뽕잎나물, 메밀나물, 토란대, 머위대, 갖은싹, 무말랭이, 취, 시금치,무우채, 고춧잎, 물김치 등.
참! 이 집에 가면 식사 전 어김 없이 나오는 것이 있는데 매생이 부침개다. 종이처럼 얇게 노릇노릇 구워내는 데 가장자리가 바삭거려 보기에도 군침이 돈다. 찹쌀가루를 섞어 지졌는데 찰기가 좋고 쫀득거린다. 초록 바닷말의 독특하고 고소한 감칠맛이 입맛을 돋군다.
우리 음식과 한옥은 통한다. 오래될수록 깊이와 품위가 들어 보이는 대들보와 서까래의 모양이 정갈하고 담백하다. 창호지로 비치는 은은한 햇살은 방의 분위기를 편안하게 하고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창호지문엔 말린 꽃잎을 넣어 붙였는데 이런 여유와 멋이 행복이고 예술이다!
마루의 나무 감촉은 맨발로 밟아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식사 뒤엔 식혜나 숭늉이 나온다. 오늘은 눌은밥이 나왔다. 남긴 찬들은 봉지에 싸주는데 먹다 남은 음식을 다른 손님상에 놓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음식은 남김 없이 다 먹도록 하고 남기면 귀찮더라도 싸가지고 갈 일이다. 집에서 이런 나물 반찬하기 쉬운 일이 아니고 한끼 정도는 더 먹을 수 있으니 살림을 알뜰히 하는 일이요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평 밥집은 끼니만 때우는 식당이 아니다. 어느 날은 직접 담근 포기 김치도 싸주고, 토종 씨옥수수를 주고, 직접 말린 곶감도 주고, 마당의 꽃도 퍼준다. 아줌마의 넘치는 정으로 대접을 톡톡히 받고 나오는 느낌이다.
그래서 다음에 나도 품에 안겨드리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우러 나와 무엇인가 들고 가게 된다. 이렇게 솜씨, 마음씨, 맵시를 두루 갖춘 주인을 만나는 일은 운이요 복이다. 돈벌이보다 사람 사는 맛을 아는 밥집이다. 세상에 이런 밥집 없다!
덧붙이는 글 | www.moovi.net 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