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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0일은 필자가 재직하는 대학의 일로 춘천 강촌엘 다녀와야 했다. 회의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전화기를 확인하였더니 지율스님의 전화번호가 메모되어 있었다. '지율스님이 왠일이지?' 하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지율스님, 인제대학교 강재규 교수입니다. 건강은 좀 어떠세요?"
"그저, 그래요."

예의 그 가늘고 가냘픈 목소리였다.

"제게 스님께서 전화를 하셨더군요."
"네, 강 교수님과 만나 의논 드릴 것이 있어어요."
"예, 제가 지금 학교 일로 강원도에 있거든요."
"그럼, 언제 돌아오세요?"
"아마 내일 오전에 출발할 예정인데, 늦지 않을지 모르겠어요."

"아, 그러세요? 제가 지금 부산에 내려와 있는데, 오시는 대로 연락 좀 주세요. 자세한 것은 만나서 얘기해요."
"예, 그러겠습니다."

'무슨 일일까?' 혼자 속으로 궁금해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오전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머물던 콘도를 나서 김해로 향했다. 도착하니 오후 4시가 가까와졌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지율스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님, 인제대학교 강재규 교수입니다. 조금 전에 도착했거든요.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을까요?"
"네, 제가 지금 교육대학 앞에 나와 있거든요. 찻집에서 기다릴 테니 오세요."

자동차를 부산시 강서구청에 주차를 해 두고, 3호선 지하철을 탔다. 연산동 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한 구간을 더 가면 교대앞역이었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선택한 것이었다.

스님이 말한 찻집은 찾기가 쉬웠다. 국제신문 뒤 교대 앞에 있는 조용하고 아늑한 찻집이었다. 들어갔더니 스님은 누군가와 한창 전화 통화 중이셨다. 얼굴 모습은 깡말라 보였지만 티없고 맑은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지율스님
ⓒ 강재규
"건강은 어떠세요?"
"보시다시피 이대로예요."

얼굴이고 손이고 가죽만이 앙상한 뼈를 덮고 있는 형상이었다. 손과 다리를 계속해서 만지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꾸만 마비가 된다고 했다. 이만한 것도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스님은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스님, 제가 부축해드릴까요?"
겸연쩍게 "괜찮아요"라고 하셨다.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음식을 손에 들고 있다 떨어져도 손에 감각이 없고, 때론 손을 음식인줄 알고 씹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또 신발이 벗겨져도 모른다고도 했다. 정상적으로 몸이 회복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회복된다 해도 많은 세월이 흘러야 될 것만 같았다.

그간의 근황과 도롱뇽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소회,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하다보니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율스님과 필자
ⓒ 강재규
스님은 나를 만나자고 한 이유를 많은 대화가 오간 후에야 조심스럽게 꺼내셨다.

"그동안 강 교수님의 역할에 대해 감사드려요."
"뭘요. 바쁘다는 핑계로 실질적인 도움은 아무것도 못드렸는데요. 오히려 제가 죄송할 따름이에요."
"도롱뇽소송을 계기로 만났던 많은 인연들을 묶어낼 수 있는 공동의 터를 마련하고 싶어요. '공간공명'이라고나 할까요. 여기에 강 교수님도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본인은 지금 해운대 지인의 집에 임시로 묵고 있다고 했다. 대충 일이 마무리 되면 경북 어느 산골 토굴로 돌아가실 것이라고 하셨다. 거기서 앞으로의 이 사회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고민해보겠다고 하셨다.

스님의 간곡한 부탁에 거절을 할 수 없었다. "제가 힘이 될 수 있으면 보태도록 하지요." 이렇게 약속을 해버렸다.

시간은 여덟시가 넘었다. "스님, 식사하고 헤어지죠."

스님이 봐 두었다는 식당으로 향했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또 조그마한 경사에도 스님은 바르게 걷지 못했다. 그 작은 경사길도 뒷걸음으로 반발짝씩 조금씩 조금씩 내려갔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도무지 저런 몸 상태로 미래를 꿈꿀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상태에서도 이만큼이나마 몸이 회복되고 미래를 설계하는 모습의 지율스님을 보니 '기적'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떠올랐다.

식사를 마치고 택시를 잡아드렸다. 다른 교통수단은 이용할 수 없을 정도의 몸 상태였다. 기사 아저씨에게 스님의 몸이 불편하니 잘 부탁드린다는 당부를 하고 스님과 헤어졌다. 시계를 보니 오후 9시가 넘었다.

스님은 대화 중에 '가치'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나도 스님의 뜻에 동의를 한다. 시간이 좀 더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스님의 그 '가치'가 뭇 중생들의 닫힌 마음을 일깨우고, 지금은 비록 허무맹랑해 보이기조차 한 스님의 그 '가치'가 인간사회의 보편적인 '가치'가 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

지하철 강서구청역에서 낙동강과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낙동강 야경
ⓒ 강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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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 법학과 교수. 전공은 행정법, 지방자치법, 환경법. 주전공은 환경법. (전)한국지방자치법학회 회장, (전)한국공법학회부회장, (전)한국비교공법학회부회장, (전)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전)김해YMCA이사장, 지방분권경남연대상임대표, 생명나눔재단상임이사, 김해진영시민연대감나무상임대표, 홍조근정훈장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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