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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신도시 중소형 아파트 당첨자가 발표된 4일 오후 비교적 한적한 한 판교 아파트 견본주택 앞에 건교부의 '투기 적발자 처벌 공고문'이 놓여있다.
판교 신도시 중소형 아파트 당첨자가 발표된 4일 오후 비교적 한적한 한 판교 아파트 견본주택 앞에 건교부의 '투기 적발자 처벌 공고문'이 놓여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계급장 떼고 토론하자"는 말은 아무래도 김근태 의장과 인연이 깊은 모양이다.

2년 전에는 김 의장 자신이 분양원가 공개 문제를 놓고 노무현 대통령과 "계급장 떼고 토론하자"고 하더니, 이번에는 김 의장과 가까운 김부겸 의원이 12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놓고 "계급장 떼고 토론하자"고 제안했다니 말이다. 열린우리당 내 대표적 재야파인 이호웅 의원도 다른 방송에서 보유세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한다.

계급장 떼고 토론하자는 것은 같은데, 입장은 뒤바뀐 것 같아서 무척 혼란스럽다. 분양원가 공개 문제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측이 실용파, 김근태 의원 측이 개혁파였다고 한다면, 보유세 정책에서는 양자의 입장이 거꾸로 되어 버렸다.

나는 김근태를 믿었다

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사람들, 소위 실용파가 당권을 장악하고는 당의 경제정책을 좌우하면서 참여정부의 개혁정책에 혼선을 초래하는 데서 열린우리당의 문제가 비롯되었다고 나는 믿어 왔다. 정동영 의장이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고 김근태 체제가 시작되면서 이제야 열린우리당의 개혁성이 드러나겠구나 기대했다.

이런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김 의장은 11일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첫째도 서민경제, 둘째도 서민경제, 셋째도 서민경제입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린우리당을 만들겠습니다"고 다짐하였다.

김근태 의장이 누구인가? 한국 민주화의 상징 아닌가? 가난한 자, 소외된 자, 억압받는 자를 위해 젊은 시절을 바쳤던 인물 아닌가? 정치인이 되고서도 이 땅의 민주주의와 서민을 위해 애써 노력하는 모습을 잃지 않았던 사람 아닌가? 그가 지난 번 당의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내세웠던 '시장친화적 부동산공개념'은 바로 서민경제를 위한 부동산 정책의 근본 틀을 제시했던 것 아닌가?

종합적으로 볼 때 김 의장이 확실한 개혁적 입장을 천명하고 진정으로 서민경제를 위하는 정책을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첫째도 서민경제, 둘째도 서민경제, 셋째도 서민경제'를 위하겠다며 제시하려는 첫 작품이 보유세 완화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우파 경제학자에게도 보유세는 '가장 덜 나쁜 세금'

지난해 8월 31일 오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한덕수 경제부총리와 추병직 건교부 장관 등이 '부동산투기 억제를 위한 부동산제도 개혁방안'을 최종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31일 오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한덕수 경제부총리와 추병직 건교부 장관 등이 '부동산투기 억제를 위한 부동산제도 개혁방안'을 최종 발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물론 참여정부의 경제정책과 부동산 정책에 문제가 없지 않았다.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은 채 증세정책을 불쑥 내밀어서 국민들의 반감을 자초한 것이라든지, 보유세 강화와 패키지로 묶어서 추진하겠다던 거래세 완화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것 등은 대표적인 문제들이다.

하지만 보유세 강화 정책은 역대 어느 정부도 해내지 못한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귀중한 성과이다. 반성을 하려면 보유세 강화의 목표가 낮은 것을 반성해야지, 어떻게 그것이 서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식의 반성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보유세 실효세율이 미국과 영국 등의 경우 1.5%에 달하는데 한국은 현재 기껏 0.2%에 불과하다. 8.31대책이 계획대로 실행된다고 할지라도 이같은 비율은 2019년에 고작 0.61%로 올라갈 뿐이다. 이를 알고서도 그런 생각을 했단 말인가?

부동산 보유세, 특히 토지보유세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방지하는 최선의 방책이다. 부동산 투기가 부동산 불로소득을 노리고 일어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보유세 강화 정책이 투기 억제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토지보유세는 '좋은 조세'의 대표격이다. 대부분의 조세가 경제에 초과 부담을 초래하지만, 지가(地價)나 지대(地代)를 과표로 부과되는 토지보유세는 중립적이며 따라서 경제에 초과부담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은 조세이론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의 간섭과 과세를 혐오하는 시카고 학파의 거두 프리드먼(M. Friedman)조차 이러한 토지보유세를 "가장 덜 나쁜 세금"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사상 초유의 저금리 정책 하에 막대한 부동자금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집값을 안정시킨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과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2003년의 10.29대책 이후 보유세 강화 정책을 흔들림없이 추진해 왔더라면 부동산 시장은 2004년 내내 그랬던 것처럼 완만한 하향 안정세를 보였을 가능성이 크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활약' 덕분에 10.29대책은 입법화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후퇴했다.

부동산값은 뛰었는데 세금걷는다고 피해자인가

김부겸 의원은 "선거과정에서 '단지 집을 오래 보유하고 있었을 뿐인데 내 지역 집값이 뛰었다는 이유로 왜 투기꾼으로 몰리고 세금을 더 내야 하느냐'는 지적들을 많이 들었다"고 말해 부동산 세제의 불합리한 점을 지적했다고 한다.

또 이호웅 의원은 "주택가격이 높다고 해서 1가구 1주택에도 보유세를 많이 부과하는 부작용을 막거나 선의의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배려나 조치들을 깊이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보유세는 투기꾼을 지목해서 그들에게 부과하는 벌금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과다 보유를 억제하기 위해 누진세율 구조를 채택했기 때문에 벌금처럼 느껴지는 것뿐이지, 본래 부동산 보유세(특히 토지보유세)는 부동산 보유자가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는 혜택에 상응하여 납부하는 대가이다.

토지는 사유재산인 동시에 모든 사람의 공동 재산의 성격을 갖고 있다. 또 토지가치는 전적으로 사회의 발전이나 국가의 공공 서비스 제공에 의해 증가하므로, 토지 보유자는 토지가치에 상응하는 세금을 국가에 납부하는 것이 마땅하다. 사실 부동산 값의 지속적 상승은 부동산 보유자가 공적 혜택에 상응하는 대가를 납부하지 않을 경우에 생기는 일이다.

보유세가 오른다고 해서 바로 부동산 보유자가 피해를 본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피해를 운운하는 사람들은, 부동산 값이 폭등해서 부동산 보유자가 챙긴 이익도 함께 생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제쳐두고, '세금 상승 = 피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1세대 1주택이면 무조건 선의의 피해자가 되는가? 1세대 1주택이면 불과 3년 전에 3억 하던 집이 10억이 되는 혜택을 그냥 누려도 되는 것인가?

지난 5월 1일 저녁, 3·30 부동산 후속 대책 법안 등 4개 민생법안에 대해 직권상정을 하루 앞두고 열린우리당 당직자들이 본회의장 로비 앞에 진을 친 가운데 밤늦게 도착한 김근태 당시 최고위원이 의원들과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 5월 1일 저녁, 3·30 부동산 후속 대책 법안 등 4개 민생법안에 대해 직권상정을 하루 앞두고 열린우리당 당직자들이 본회의장 로비 앞에 진을 친 가운데 밤늦게 도착한 김근태 당시 최고위원이 의원들과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동영에게 미안하다

김부겸 의원과 이호웅 의원이 걱정하는, 주택 가격이 올라서 보유세를 많이 부담하게 되는 1세대 1주택 소유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아마도 종합부동산세를 부담하는 사람들일텐데, 그렇다면 공시가격 6억원 이상, 시가 8~9억원 이상의 주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두 의원의 눈에는 이런 사람들이 서민으로 보이는가? 김근태 의장이 "첫째도 서민경제, 둘째도 서민경제, 셋째도 서민경제"라고 했을 때 '서민'이란 이들을 가리킨 말인가? 그래서 이들을 위해 보유세를 완화하는 '서민' 정책을 내놓겠다는 말인가?

우리 사회에는 자기 집이 없는 사람들이 전체 세대의 절반을 넘는다. 지방에는 1억 원 아니 5천만원 미만의 1세대 1주택 소유자도 수두룩하다. 이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옳은가? '빈민'이라 해야 하는가? 졸지에 한국 사회는 '빈민'으로 넘쳐나는 사회가 되어 버렸고 이들을 위한 정책은 실종될 위기에 처했다.

김근태 의장은 "대권을 위해 꼼수를 부리는 정치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보유세 완화 정책을 내놓는다면 그게 바로 '대권을 위한 꼼수'다. 그래서 정동영 전 의장을 비롯한 열린우리당 내 실용파 의원들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금까지 그들만 꼼수를 부리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울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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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지식인선언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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