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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정태춘
가수 정태춘 ⓒ 김태성
그는 포승줄에 묶여 잡혀갔다. 50세가 넘은 나이에. 그는 비닐하우스에서, 벌판에 서서 노래 부르며 '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외치며 투쟁하고 있던 중이었다. 삼일 만에 풀려났다 해도 구호를 크게 외치느라 목이 잔뜩 잠긴 탓에 노래도 부를 수 없었던 그가 잡혀가던 날 들고 있던 현수막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는 가수 정태춘. 진갈색 야구모자와 진갈색 점퍼와 면바지를 입은 그는 풀려나오자마자 대추리로 연대투쟁을 위해 찾아온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왜 평택주민들이, 그리고 자신이, 농민들이 미군기지확장반대투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해가 지면서 불기 시작한 봄바람은 제법 차가웠고 '올해도 농사짓자'고 쓰인 깃발들이 펄럭이는 평택의 도두리, 대추리 일대는 집 떠난 빈집들로 스산하고 황량했다. 그날, 그를 만난 날짜는 3월 18일.

'92년 장마, 종로에서'라는 노래에서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라고 노래했던 그는 2006년, 봄날, 대추리에서도 여전히 다시 노래하고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운전하던 친구도, 나도 눈물을 쏟았다

그때처럼 날선 듯 쓸쓸한 목소리로, 그러나 결기와 열정이 맺힌 목소리로. 그로부터 도대체 몇 년의 세월이 흘러갔는데, 어쩌면 그는 여전히 한결같은 모습으로, 포기하지도 않고 절망하지도 않고 그렇게 다시 일어서고 있는 것인지, 날아오를 수 있는 것인지, 한참 동안 경외의 감정을 품은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그를 만나고 그의 노래와 만나고 긴 세월을 동고동락하며 살게 한 첫 기억을. 누군가 내게 세상에 알려진 위인들 말고 누구를 존경하느냐고 묻는다면 지체없이 그의 이름을 떠올릴 정도로 깊이 마음에 새긴 그의 노래의 첫 느낌을.

그때도 지금처럼 막 더워지는 여름이었다. 밤은 아니었다. 제법 뜨거운 여름의 빛살이 살을 뚫고 들어와 등과 목을 땀으로 적시고 손목과 발을 익혔다. 낮 내내 강원도 어름에서 회사 사람들과 회의를 빙자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물 젖은 솜처럼 무겁고 피곤한 여름 저녁이었다. 가난한 강북 동네에 사는 게 똑같은 친구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기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의 노래, 정태춘의 노래를 들었다. 물론 처음은 아니었다. 어찌 내 나이에 그의 노래가 처음일 수 있었겠는가.

나이가 마흔쯤의 사람이라면 그의 노래를 듣는 일이 처음일 수는 없는 일이다. 어린 한 때 '촛불'이나 '시인의 마을'을 들었고 젊은 한 때 '에고 도솔천아'를 들었고 결혼해 살던 새댁 시절 사무치는 마음으로 아기를 껴안고 '북한강에서'나 '서해에서'를 들었었다. 그의 노래에 마음을 얹어놓은 것이 처음은 아니었음에도 그날 들었던 노래의 기억이 그리도 특별히 잊혀지지 않는 것은 뜨거운 햇살이 잦아드는 저물녘이던 탓이었을 것이고 1박2일 동안 계속된 회사의 어려운 상황과 녹록하지 않은 인간관계에 지친 것이 플러스로 작용했을 것이고, 하필이면 힘든 마음과 몸을 쉬려고 멈춘 곳이 남한강 북한강이 만나는 아름답고도 서글픈 양수리 강가의 흔들리던 물살 탓이었을 것이다.

그때 들은 그의 노래는 새삼 처음 듣는 것처럼 소름까지 오소소 돋았다. 그가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너희 칼 쥐고 총 가진 자들. 더 이상 욕되이 마라, 너희 멸사봉공 외치는 자들" 이라며 나직하게 그러나 이를 갈 듯 노래할 때, "오늘 또 떠나는구나. 찌든 살림, 설운 보퉁이만 싸안고 변두리마저 떠나는구나. 가면 다시는 못 돌아오지. 저들을 버리는 배반의 도시. 주눅 든 어린애들마저 용달차에 싣고 눈물 삼키며 떠나는구나" 할 때, '그대 행복한가' 하고 조용히 물어올 때 운전하던 친구도, 나도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그날 꽉꽉 막히는 양평에서 서울로 오는 6번 국도에서, 물살의 결과 무늬는 턱없이 곱던 양수리 강가의 큰 느티나무 아래서, 그리고 간신히 눈물을 잦히고 돌아오는 길목에서 들은 앨범은 <아, 대한민국>. 한마디 한마디가 사무치다 못해 이유 모를 깊은 슬픔으로 무너지게 만드는, 가파르고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는 하루하루를 부끄럽게 만들어버리는 그의 나쁜 노래는 그날, 완전히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와 똬리를 틀고 자리 잡았던 것이 틀림없다.

지난 15일 농민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있는 굴착기 앞에 미군기지 확장 예정지인 도두리가 고향인 가수 정태춘(오른쪽)씨가 현수막을 들고 서 있다.
지난 15일 농민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있는 굴착기 앞에 미군기지 확장 예정지인 도두리가 고향인 가수 정태춘(오른쪽)씨가 현수막을 들고 서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대추리 황량한 그곳에서 다시 그를 만나다

그러했으니 2004년 봄, 실천문학사에서 정태춘의 시집 <노독일처>가 나왔을 때 놀라지도 않았다. 시집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노래는 하나하나가 모두 훌륭한 시라고 아주 예전부터 생각해왔었으니까.

치통에 시달리는 그는 '이빨 생각만으로 하자면 이 구찮은 목숨 그냥 팍 놔버리고 싶은데… 참…'이라는 처량한 시를 쓰고 '인터넷 하다가 감동이여'라는 제목으로 메일을 보내온 딸의 편지도 시로 만들었다. 이 세상에 담배 끊은 놈보다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놈이 더 독하다는 말을 시 구절로 뒤집어 놓았다. 한 편 두 편 시를 읽고 나만의 노독일처를 꿈꾸면서 또 2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사이에 짬짬이 그의 콘서트를 보러 다녔다. 편한 옷차림으로 거리에서 노래할 때도, 구김살 하나 없는 모시적삼을 입고 대극장에서 공연할 때도 멀찌감치 앉아 손을 모아 쥐고 나는 그의 노래를 들어왔다.

그토록 오랜 세월 듣고 들어도 그의 노래는 늘 새롭게 감동스러웠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을 나는 기억하고 목이 메었다.

또 그가 "다시 올 봄의 화사한 첫차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내 영혼 비에 젖어 뒤척였고, 뒤척여 내가 오늘 다시 눈을 뜨면 너는 햇살 가득한 그 봄날 언덕길로 십자가 높은 성당 큰 종소리에 거기 계단 위를 하나씩 오르고 있겠니"라며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를 부를 땐 정말로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것 같은 아련하고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이 되었다.

그 봄날, 3월 18일, 대추리. 황량한 그곳에서 그를 만난 후 시간이 또 흘러 다시 여름이 되었다. '들이 운다' 'Fucking U.S.A' 'YOU SCUM' '올해도 농사짓자'라는 글들이 벽마다 새겨진 그 들판은 이제 무너져 내렸다. 피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날 그 현장에는 없었지만 그날의 뉴스를 보면서 정태춘이 터지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을 거라는 걸 마치 본 것처럼 떠올릴 수 있었다.

정태춘이란 사람을 보는 일은 감동을 넘어선 어떤 깨달음이다. 한 인간의 삶 전체를 꿰뚫는 뜨거움이 몇십 년 동안 여일할 수 있다는 것, 그 진정성의 오래됨과 깊이, 자잘한 듯 지겹고 초라한 것들에 대해 쏟는 애정이 그렇게 오래 식지 않고 타오를 수 있다는 것, 그 정신의 강인함과 단단함, 그걸 넘어서는 부드러운 연민과 사랑이라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일까, 그는. 같은 말을 두어 번만 해도 금방 지루해하는 이 세상에서 그는 어떻게 무안해하지도 않고 지루해하지도 않으면서 매번 절박하고 진실한 마음을 담아 노래할 수 있는 것일까.

이 한여름 밤, 들 가운데 서서 바람아 너는 어딨니? 내 연을 날려줘 라고 말하는 노래를 듣다가 천둥 번개가 번갈아 치던 며칠 전 밤 내내 한 노래를 들었다. 노래 제목은 '한여름 밤'.

국방부는 15일 경기도 평택시 미군기지 확장예정지에서 농민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도록 하기위해 굴삭기를 동원해서 논에 구덩이를 파는 작업을 시작했다. 미군기지 확장예정지인 팽성읍 도두리가 고향인 가수 정태춘씨가 굴삭기가 파 놓은 구덩이에 들어가서 항의하다 경찰에 강제연행당했다.
국방부는 15일 경기도 평택시 미군기지 확장예정지에서 농민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도록 하기위해 굴삭기를 동원해서 논에 구덩이를 파는 작업을 시작했다. 미군기지 확장예정지인 팽성읍 도두리가 고향인 가수 정태춘씨가 굴삭기가 파 놓은 구덩이에 들어가서 항의하다 경찰에 강제연행당했다. ⓒ 민중의소리 김철수

천둥과 번개처럼 당신의 인생을 울릴 그의 노래

이 노래가 만들어진 것은 1982년. 아직은 젊은 정태춘이 어린 아가와 젊은 아내를 두고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으면서 노래를 만들었을 정경이 떠올랐다. 천둥 속에서 바람 속에서 번개 속에서 소나기 속에서 누구도 채근하지 않았을 삶의 모양새에 대해 반성을 거듭해 가는 그의 정신의 흐름을 느끼면서 나 역시 반성과 감사와 참회를 거듭했다.

이 시대, 그의 노래를 들으며 천둥 번개 속에서 내 살고 있는 날들의 진정성을, 내 존재의 의미를 반추할 수 있게 해준 그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여기까지 이 글을 읽었을 이들에게도 그의 노래를 바친다. 우리 인생을 돌아보게 만들 번쩍이는 천둥 번개는 앞으로 한여름 내내 여러 번 있을 테니까. 마치 대사는 한마디도 없는, 그러나 감동으로 가득할 영화처럼, 천둥과 번개처럼 당신의 인생을 울리고 빛낼 그의 노래를 바친다.

한여름 밤의 서늘한 바람은 참 좋아라
한낮의 태양 빛에 뜨거워진 내 머릴 식혀 주누나
빳빳한 내 머리카락
그 속에 늘어져 쉬는 잡념들
이제 모두 깨워 어서 깨끗이 쫓아 버려라

한여름 밤의 고요한 정적은 참 좋아라
그 작은 몸이 아픈 나의
갓난아기도 잠시 쉬게 하누나
그의 곁에서 깊이 잠든
피곤한 그의 젊은 어미도
이제 편안한 휴식의 세계로 어서 데려 가거라

아무도 문을 닫지 않는 이 바람 속에서
아무도 창을 닫지 않는 이 정적 속에서
어린 아기도 잠이 들고
그의 꿈 속으로 바람은 부는데

한여름 밤의 시원한 소나기 참 좋아라
온갖 아기와 탐욕에 거칠어진 세상 적셔 주누나
아직 더운 열기 식히지 못한
치기 어린 이 젊은 가슴도
이제 사랑과 연민의 비로 후드득 적셔 주어라

한여름 밤의 빛나는 번개는 참 좋아라
작은 안락에 취하여 잠들었던 혼을 깨워 주누나
번쩍이는 그 순간의 빛으로
한밤의 어둠이 갈라지니
그 어둠 속을 헤매는 나의 길도
되밝혀 주어라

아무도 멈추게 할 수 없는 이 소나기 속에서
아무도 가로 막을 수 없는 이 번개 속에서
어린 아기도 잠이 들고 나의 창으로
또 번개는 치는데

― '한여름 밤', 작사ㆍ작곡 정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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