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집요하다. 또 사학법이다.
사학법인연합회 등 사학 관련 4개 단체 회장단이 어제(13일) 모임을 갖고 다음달 1일 시행되는 사학법 및 시행령 재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학법 및 시행령 시행을 유보하라고 주장했다.
언론의 '바람잡이'도 있었다. <중앙일보>는 지난 13일 정부·여당을 향해 "선거 결과를 수용한다면 사학법을 재개정하라"고 압박했다.
한나라당 풀무질 따라 사학법 재개정 판도 변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같은 날, 같은 말을 쏟아냈다. 박근혜 대표는 "사학법은 꼭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재오 원내대표는 "(여당이) 사학법 날치기를 통해 직권상정 하고 폭도들을 동원해 본회의장을 점거한 결과가 5·31 지방선거에 어떻게 반영되었는가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이방호 정책위 의장은 "사학법 개정에 대해 정부의 전향적인 조치가 없으면 모든 협상이 채택될 수 없다"고 했다.
이해 못할 것은 없다. 한나라당은 지방선거에서 사상 유례 없는 압승을 거뒀다. 덕분에 정국 주도권을 쥐게 됐다. 이참에 묵은 과제를 일사천리로 해결하는 게 좋다. 사학법은 1순위다. 승기를 잡았을 때 밀어붙이는 건 스포츠나 정치나 다를 바가 없다. 그게 게임의 법칙이다.
궁금한 곳은 정부·여당이다. 정부·여당이라고 해서 게임의 법칙을 피해갈 수는 없다. 정부·여당은 사학법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지난 13일 27개 대학 총장 오찬 간담회에 참석한 한 사립대 총장이 사학법에 대한 견해를 묻자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그 얘기는 일단 시작하면 실타래처럼 계속 풀어 나가야 하니 이 자리에서는 피했으면 좋겠다."
무슨 뜻일까? 말 그대로다. '지금 이대로'가 가장 좋다는 뜻이다.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기존 정책에 대해 백화제방식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사학법에 대해서만은 입을 닫고 있다. 수비가 최선의 공격이라고 맘먹은 것 같다. 정부·여당이 전원수비 태세를 갖춘 것 같지만 측면이 뚫릴 가능성은 남아 있다. 지방선거 직전의 일이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 한때 사학법 재개정 협상에 나선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의 양보를 권고했다. 불씨는 남아 있다. 이 불씨에 한나라당이 풀무질을 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는 다급하게 기존 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다. 당내의 갑론을박을 끝내면 재검토 결과물을 입법안으로 만들어 국회에 제출할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의 협조, 또는 방조는 필수적이다.
이 대목에서 이방호 정책위 의장의 말을 되씹자. 이 정책위 의장은 14일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과 정책협의회를 열 예정이다. 이 정책위 의장은 "이 협의회가 4월에 처리하지 못한 아주 시급한 법안들을 6월 임시국회 때 처리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 뒤 다음과 같이 밝혔다.
"여러 가지를 조율해서 가능하면 (민생 관련 법안을) 일괄 타결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사학법 재개정이다."
사학법은 열린우리당 궤적 좇는 스키드 마크
한나라당은 고리를 걸었다. 열린우리당은 끌려가든지 끊어내든지 선택해야 한다. 6월 임시국회야 어떻게든 돌아간다 해도 9월 정기국회까지 피할 수는 없다. 사학법이란 개혁입법을 고수하기 위해 정책 재검토 끝에 내놓은 실용안들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어떻게 할 것인가?
열린우리당의 '우회전' 우려에 대해 우상호 대변인은 "비상등을 깜박이며 직진하고 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우회전은 절대로 아니라는 주장이다.
어차피 궤적은 드러나게 돼 있다. 열린우리당이 재검토 하고 있는 부동산 정책이나 성장정책만으로도 궤적을 살필 수 있지만 '만사불여튼튼'이라고, 하나 더 추가하자. 사학법은 열린우리당의 궤적을 좇는 스키드 마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