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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망초
개망초 ⓒ 안준철
살다보면 전혀 예기치 않은 어떤 순간에 깨달음이 올 때가 있다. 삶의 어느 한쪽이 삐끗하여 아프거나 뒤척일 때 그런 일이 생기기도 한다. 시인에게는 그 때가 바로 시가 찾아오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삶을 되돌릴만한 소중한 깨달음에는 빼어난 한 편의 시의 유혹을 능가하는 무엇이 있다. '그래, 그렇지'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허공을 쳐다보는 눈길에 돌연 이슬이 맺히는 이유이다.

감기 기운에 이틀째 목이 잠겨 지내는데
횡단보도를 막 건너온 나에게
한 남자가 차를 세우더니 길을 묻네 그려

허허, 급한 마음에 목구멍이 터져
간신히 길 일러주고 돌아서는데
길가에 개망초 두어 송이 피어 있네 그려

그래, 그렇지
잠긴 목으로는 구성진 노래 부를 수 없어도
더듬더듬 누군가의 길이 되어줄 수는 있지

그래, 그렇지
풀꽃 두어 송이면 충분하지
꽃필 날 손꼽아 기다려온 사람에게는

요즘사
사는 것이 하나도 서럽지 않다.

(자작시, ‘개망초 2’)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노래 부르기'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있다. 내 어릴 적 취미도 '노래 부르기'였다. 지금은 노래방에서 가수처럼 마이크를 잡고 반주에 맞추어 신나게 노래를 부를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시설이 없었으니 주로 동네 야산이나 냇가에 나가 무반주로 노래를 불렀다. 가끔은 동무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관객이 없는 혼자만의 노래였다. 그래도 쓸쓸하기는커녕 세상을 다 얻은 듯 마음이 충만하였다.

동무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도 가장 중요한 청중은 바로 나 자신이었지 싶다. 목 감기라도 걸려 소리의 결이 갈라지거나 아예 노래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목이 잠긴 날은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자의 낯빛을 하고 다녔다.

이러다가 목소리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내 목소리에 스스로 반하지 않고서는 노래 부를 흥이 나지 않으니 심각한 '나르시시즘'의 증상을 의심해 봄직도 하다. 하긴 이 정도는 되어야 노래 부르기가 취미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학창시절을 지나 군대에 가서도 노래를 즐겨 불렀다. 훈련장에서 부르는 군가만이 아니었다. 일요일에는 군인교회에 나가 성가대원으로서 화음을 맞추어 찬송가를 불렀고, 평일에도 근무가 끝나면 내무반이나 동산 언덕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는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부르는 나를 군기로 다스리던 부대 장교들이나 고참병들도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그러려니 했다. 마치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는 새를 탓하지 않는 것처럼.

하루는 대대 야간 사격 측정을 앞두고 중대장님의 호출을 받았다. 사격을 하기 전에 부대원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라는 것이었다. 노래 제목도 한국 가곡 '가고파'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당시에는 사격 측정에서 만점을 맞은 병사에게 이박삼일 특별 휴가를 보내주는 관례가 있었다.

중대장님은 병사들이 내가 부르는 망향가를 듣고 고향에 가고 싶은 일념에 심기일전하여 표적마다 백발백중 해주기를 은근히 기대했으리라.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목청껏 망향의 노래를 불렀던 순간만은 지금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에 생생하다.

요즘도 나는 가끔 노래를 부른다. 누가 청하지 않아도 제 흥에 겨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노래를 부를 때도 있다. 그때 그 자리에 노래를 들어줄 만한 사람이 없어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내 노래의 주고객은 내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노래를 즐겨 부르는 사람치고는 성대가 시원찮은 편이다. 정식으로 발성 공부를 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선천적으로 성대가 약하다. 오전에는 맑고 실하던 목소리가 오후가 되면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진다.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교사생활을 스무 해 넘도록 하다보니 목이 많이 상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하룻밤을 자고 나면 희미하게나마 예전의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만약 잠자리에 들기 전의 탁하고 갈라진 목소리가 아침에도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나의 애창곡인 수선화를 더 이상 부를 수 없다면 내게 그보다 더 불행한 일도 없을 것이다.

개망초
개망초 ⓒ 안준철
그날도 나는 그런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횡단보도를 건넜던 것이다. 그런데 한 남자가 갑자기 내 앞에 차를 세우더니 이틀째 아내와 귓속말로 의사소통을 해야할 만큼 목이 상해버린 나에게 길을 묻는 것이 아닌가. 지금 목 상태가 좋지 않으니 다른 분에게 물어보라고 말하고 싶어도 그것도 말로 해야 하니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은 '급한 마음에 목구멍이 터져/간신히 길 일러주고 돌아서는데' 무슨 조화였는지 마치 중력에서 벗어난 사람처럼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잠긴 목으로는 구성진 노래 부를 수 없어도/더듬더듬 누군가의 길이 되어줄 수는 있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은 뒤의 일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다. 하물며 심각한 '나르시시즘' 증상을 호소하고 있는 내가 내 자신의 행복에 어찌 관심이 없겠는가. 하지만 내 행복이 얼굴 한 번 마주친 적 없는 낯선 누군가의 행복과 풀뿌리처럼 잇닿아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개망초'라는 소품은 이 시에서 왜 필요했을까? 이 시의 화자는 왜 느닷없이 '요즘사/사는 것이 하나도 서럽지 않다'고 했을까? 아무래도 이 두 가지 물음에 대해서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 같다.

다만, 내가 구성진 가락을 뽐내는 빼어난 가수나 시인이 되지 못하고 더듬더듬 아이들의 길이나 안내해주는 촌스러운 훈장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고 있다는 것. 아니, 더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것만은 꼭 말해주어야 할 것 같다. 하늘이 주신 그 일을 하러 오가는 길에 자주 만나는 꽃이 소박한 우리 아이들을 닮은 개망초라는 것도.

너는 피어 있지 않고 서 있다
산비탈이나 바위너설이나
묵정밭이나 길섶을 가리지 않고
억센 덩굴손에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음습한 거미줄에 휘감기기도 하면서
너는 피어 있다기보다는 서 있다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한 때는 네게 낮은 시선을 준 적 있었다
숨이 멎도록 이쁘지 않은 게 너의 미덕이라고
사실은 내 모습에 취해 너를 바라본 적 있었다
아이들에게 교만을 눈치 채이고 돌아가는 길에
해마다 튀밥 같은 꽃을 머리에 이고서도
꽃이 아닌 풀이 되고 싶은 너의 마음을 안다
사람들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 우북하게 풀 우거진 곳에
계집아이 입가에 핀 마른버짐 같은 꽃을 수놓고
눈길 흐린 사람 있나 두리번거리며
서서 피어 있는 그 마음을.

(자작시 '개망초 1')


개망초
개망초 ⓒ 안준철

덧붙이는 글 | 월간지 <사과나무>에 기고한 글을 조금 손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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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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