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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경제범죄처벌법상 횡령ㆍ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4월 28일 밤 대검찰청을 나서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특정경제범죄처벌법상 횡령ㆍ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4월 28일 밤 대검찰청을 나서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정 회장을 대신해 변호인단이 제출한 탄원서는 지난 12일 정 회장의 태도와 사뭇 다르다. A4용지로 한장 조금 넘는 분량의 탄원서에 정 회장은 '사죄' '죄송' '반성' 등의 용어를 써가며 선처를 호소했다. '죄송'과 '반성'이라는 표현만 다섯번이나 나온다. 사실상 반성문인 셈이다.

그는 우선 "공인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처음으로 법정에 서게 되면서 참으로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었다"고 말하고 "저 자신만을 바라보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은 우리 현대기아 가족 임직원분들의 얼굴을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비자금 조성에 대해서도 시인했다. 그는 "비자금을 조성하고 사용한 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몇 번이고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도 모자랄 것 같다"며 "법적인 책임도 달게 받겠다"고까지 적었다. 이어 "제 남은 여생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교훈으로 삼겠다"는 다짐도 반성문에 썼다.

또 비자금 일부를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에 대해서 인정했다. 그는 "(비자금) 일부가 제 개인적으로 사용된 부분도 있다는 점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고 향후 이런 일이 없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 회장은 지난 12일 열린 2차 공판에서 계열사인 글로비스를 통한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해선 일관되게 부인했다. 그는 "필요한 돈이 있을 경우 비서실을 통해 건네받은 사실은 있다"면서도 "이주은 사장이 회장실에 정기적으로 돈을 갖다 줬다는 말은 들은 적도 없다"며 검찰의 추궁을 부인했다.

정 회장은 이어 "이주은 사장이 비서실이나 김동진 부회장에게 (비자금을) 전달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다가 곧이어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변을 회피했다.

이틀 사이에 정 회장의 심경에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보석 결정 앞둔 정몽구 "몸과 마음이 극도로 지쳐서..."

12일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비자금 조성과 개인용도 사용 등을 추궁하자, 그는 다른 내용의 답변을 내놓거나 부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재판이 끝난 후, 이같은 정 회장의 모습에 대해 네티즌 사이에선 "재계2위 총수답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 회장의 역할이 막대한 현대차 그룹에서 비자금 조성을 몰랐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또 비자금 전달과 사용 등에 대해서도 책임지는 자세보다는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비판하는 여론도 이어졌다.

이같은 여론은 현대자동차 그룹이나 변호인단에는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그룹 관계자도 "고령(68세)에 병세 악화로 정 회장이 지난번 공판에서 비자금에 대해 다소 불명확하게 답변된 부분이 있다"면서 "이를 국민들이 오해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이번에 문서로 명확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도 반성문에서 "만약 본뜻과는 달리 제말이 다르게 표현되었다면 다시 한번 머리숙여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면서 "몸과 마음이 극도로 지쳐있는 상태에서 법정에 서려다 보니 제 뜻이 잘못 표출된 부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다 저의 부덕의 소치다"고 해명했다.

게다가 정 회장 쪽은 지난달 26일 건강상태와 경영공백 등의 이유를 들어 법원에 보석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지난 공판 내용이 자칫 보석 결정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할 수 밖에 없다. 정 회장은 "몸과 마음이 극도로 지쳐 있는 상태"라며 "회한과 반성으로 잠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판사님은 정 회장의 '본심'을 헤아려주실까

정 회장은 탄원서에서 월드컵 공식 후원사의 수장으로 1평 남짓한 구치소 독방에서 월드컵을 지켜봐야 하는 씁쓸한 표정도 담았다.

그는 "월드컵을 계기로 세계 속에 현대·기아차에 대한 글로벌 위상을 더욱 높이려 심혈을 기울여왔던 입장에서 한없는 안타까움만 느낄 뿐"이라고 적었다. 이어 "우리 현대·기아차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피땀으로 일군 성과를 같이 누릴 수 없는 저 자신이 한스럽게 여겨졌다"면서 "회한과 반성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마지막으로 "진정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면서 "이러한 제 본심을 저를 사랑해주시는 현대기아 가족 여러분과 판사님이 헤아려주셨으면 한다"고 글을 맺었다.

그의 다음 공판은 오는 26일로 예정돼 있다. 정 회장의 이번 반성문이 법원의 정 회장 보석 결정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거리다.

정몽구 회장이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 전문

공인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처음으로 법정에 서게 되면서 참으로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법정에 들어서면서도 저 자신만을 바라보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은 우리 현대기아 가족 임직원분들의 얼굴을 차마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걱정어린 눈빛이 스쳐지나 갈 때마다 뼈를 깍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비자금을 조성하고 사용한 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몇번이고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법적인 책임도 달게 받겠습니다. 제 남은 여생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교훈으로 삼겠습니다.

만약 제 본뜻과는 달리 제말이 다르게 표현되었다면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또 우리 현대기아 가족들이 저로 인하여 마음의 상처를 입지나 않았을까 하는 짧은 생각으로 혹시 판사님께 심려를 끼쳐 드리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극도로 지쳐있는 상태에서 법정에 서려다 보니 제 뜻이 잘못 표출된 부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 저의 부덕의 소치입니다.

저는 과거 회사의 부외자금이 조성 사용된 사실에 대해 총괄적으로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자금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를 받을 때는 담당 임직원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였으나 이 모든 것은 최고경영자인 제가 책임져야 할 것으로 이 점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런 돈 중 일부가 본의 아니게 제 개인적으로 사용된 부분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더욱 부끄럽게 생각하고, 향후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그동안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 선정된 월드컵 공식후원업체로서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세계속에 현대·기아자동차에 대한 글로벌 위상을 더욱 높이려고 심혈을 기울여왔던 제 입장에서는 한없는 안타까움만 느낄 뿐입니다. 저와 우리 현대·기아차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피땀으로 일군 성과를 같이 누릴 수 없는 저 자신이 한스럽게 여겨졌습니다. 회한과 반성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진정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비자금을 조성하고 사용한 점 깊이 반성하고 그 책임을 달게 받겠습니다. 이러한 제 본심을 저를 사랑해 주시는 우리 현재 기아 가족 여러분과 판사님께서 헤아려주셨으면 합니다.

죄송합니다.

2006.6.14. 정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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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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