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지난 2005년 2월 귀국한 자이툰 부대원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20일 오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이라크에 주둔 중인 육상자위대의 철군을 공식 발표했다. 오는 9월 퇴임 전 이라크 파병 문제를 종결짓겠다던 방침을 결단에 옮긴 것이다.

이 발표는 이라크 총리가 "육상자위대가 주둔 중인 무사나주(州)의 치안유지권을 7월 중 이양받겠다"고 한 발표와도 관련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라크에 정식 정부가 수립되면 다국적군의 임무가 끝난다"고 규정한 UN 안보리결의안 1546호(2004년 6월 8일)의 이행에 근거한다.

물론 다국적군의 임무는 2005년 11월 8일 결의안 1637호를 통해 2006년 12월 31일까지 연장된 바 있다. 그러나 이라크에는 이미 지난 5월 20일 주권정부가 들어섰다. 다국적군의 임무가 연장됐다 하더라도 본래의 UN결의안의 취지에 비추어보자면 이번 일본의 철군은 한 달 늦었지만 당연한 일일 뿐이다.

이제 우리도 명예롭게 돌아오자

그 당연함을 이제 우리 군대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도 이제는 자이툰 부대의 '감축 프로그램'이 아닌 '철군 프로그램'을 가동할 때라는 것이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UN 결의안을 그대로 이행하자는 것이다.

둘째,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아르빌의 치안 안정성에 대한 확신에 있다. 파병 당시부터 이 지역에 안전성에 대해서는 정부가 먼저 확인해왔고 지난 2년여 동안의 주둔 상황이 이 지역의 안전을 증명한다. 아르빌 주정부에 치안 유지권을 넘기더라도 특별한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셋째, 한국군의 명예 때문이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철군 발표에 즈음하여 "자위대가 인도적 재건 지원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군인들은 임무를 완수했으며, 이제 명예롭게 떠나겠다는 발표였다. 민사 작전과 재건 작전의 성공을 바탕으로 이제 우리 군도 돌아올 때인 것이다.

넷째, 반드시 문제삼아야 할 이라크 전쟁 자체의 정당성도 철군의 명백한 이유이다. '대량 살상무기 색출'이라는 미국의 이라크전 명분은 허구였다는 것이 이미 만 천하에 밝혀졌다. 백보를 양보해 '정보의 실패였다'고 하더라도 결론은 마찬가지이다.

5월 25일 미·영 정상회담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붕괴가 민주적 이라크의 시작이 아님을 알았어야 했다"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어야 했다"는 식으로 개전의 실책을 인정한 바 있다.

▲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이라크파병연장동의안이 재석의원 158-찬성 110-반대 31-기권 17로 통과됐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국군 보내고 북핵 문제에 도움받자? 현실은 어땠나

이런 논의를 전개할 때면 늘 걱정되는 점이 있다. 이라크에서의 철군 자체를 일종의 반미로 해석하는 방식이다. '반미는 곧 좌파이고 좌파는 곧 친북이며, 친북은 곧 다시 반미'라는 엄청난 순환논법 앞에 국익은 온데간데 없다.

국익을 근거로 얘기해도 '철없는 낭만적 국익주의자'라고 무시한다. "미국이라는 일극체제의 현실을 당신은 도대체 알기나 하냐"며 비판한다.

이라크 파병을 반대할 때면 "우리보다 더 강한 일본도 이미 보냈는데 어떻게 안 보낼 재간이 있느냐? 보낼 건 보내고 협력할 건 협력하면서 미국에 요구할 건 요구하고 북핵문제 해결에 도움을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해왔다. 그런데 현실은 과연 그러했는가.

그래서 이제 일본조차도 철군하니 우리도 해보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반론은 뻔하다. "이럴 때일수록 분명하게 미국을 돕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고 일본이야 미국으로부터 일정 부분 자유로울 수 있는데, 왜 굳이 이럴 때만 일본을 좇아가느냐"고 반박할 것이다.

그래서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외교관계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국익에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한미 관계에도 분명한 원칙이 존재해야 한다. 그 원칙이 합리적이면 되는 것이다.

국익에도 한미 관계에도 원칙이 필요하다

지난 5월 22일 문정인 국제안보대사의 <조선일보> 인터뷰가 흥미롭다. 문 대사는 "노 대통령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바꾸기 위해 이라크에 파병된 한국군 철수 문제를 협상카드로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했다.

국제관계에서도 호혜의 원칙은 중요하다. 이점은 한미 관계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라크 파병 당시 일부 언론과 일부 외교안보팀은 우리가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하면 북핵문제 해결에 일정 부분 미국의 양보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대단히 설익은 것이었고 이미 그 기대는 어긋났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테러와의 전쟁의 한 가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파병과 철군 같은 중대한 문제일수록 원칙에서 시작하고 원칙에서 끝내야 한다. 계속 주둔의 근거도 치안유지의 필요성도 전쟁 개시의 명분도 소멸된 지금, 철군 프로그램을 시급히 가동해야 한다. 그렇다고 미국과의 협상을 생략하자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 '이라크 침략 3년 규탄 국제공동반전행동'이 19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파병반대국민행동 소속 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덧붙이는 글 | 최재천 기자는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서울 성동갑)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