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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부부가 살다 보면 싸울 일이 많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났는데 무슨 싸울 일이 그렇게 많으랴 싶겠지만 결혼 생활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양말이나 치약 때문에 싸우는 부부는 이제 흔한 얘기가 돼버렸는데….

늦잠이 많은 사람과 초저녁잠이 많은 사람이 부부로 만나도 맞추기가 어렵다. 여름에 에어컨을 틀어놓아야 잠을 이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선풍기 바람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하루 세 번 이를 닦는 것은 기본이고 수시로 손을 씻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내가 있는가 하면 아주 피곤한 날, 술까지 마신 날에는 이를 안 닦고 잘 수도 있다는 남편이 있다. 죽을병이 아니면 병원 문턱에도 가지 않는 남편과 가벼운 감기에도 병원으로 뛰어가 약을 한 움큼씩 먹어야 마음이 놓이는 아내인 경우, 아픈 아이 때문에 두 부부가 싸우는 장면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결혼 초, 비디오 시청 습관 때문에 아내와 말다툼을 했던 기억이 있다. 주변 정리를 다 하고 커튼까지 드리운 다음, 극장에서 영화를 보듯이 광고부터 보는 것이 나의 습관인데 아내는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며 영화가 시작되었는데도 늦게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한가하게 비디오에만 집중할 수 있는 나와는 달리 할 일이 많았던 아내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끼고 싶었던 것이다. 아내와 다툰 일 중 또 하나는 시간차였다.

못 좀 박아달라거나 창고에 있는 물건을 꺼내달라는 아내의 얘기에 해주겠다는 대답만 해놓고 세월아 네월아 하는 남편 때문에 아내는 많이 답답해했다. 그런가 하면 일요일에도 습관처럼 아침 일찍 눈이 떠져 모처럼 늦잠을 즐기려는 아내를 기어이 깨워 놓고는 다시 침대로 가는 나에게 아내는 화를 냈었다. 일요일,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는 데에는 동의했지만 아내는 집안 청소라도 좀 해놓고 가자는 쪽이었고 나는 덜 붐빌 때 일찍 가서 영화부터 보고 오자는 쪽이어서 투닥거린 적도 있다.

이제는 아내가 부탁하면 그 일부터 먼저 하려고 애를 쓰거나 아내가 묻기 전에 부탁한 일을 처리했다는 보고(?)를 내가 먼저 한다. 그리고 부탁한 일을 늦어도 언제까지 해주면 되느냐고 물어보아서 적어도 ‘언제’ 때문에 다투는 일을 많이 줄였다.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서로의 계획을 확인하고 일정을 조정하는 것도 결혼 25년째를 맞으며 생긴 지혜이다.

공휴일인 오늘도 편찮으신 이모님을 뵈러 가기 위해 일정을 맞춰보았다. 저녁 운동을 거르면 안 된다는 아내 때문에 늦어도 오후 4시에 출발해서 저녁을 사드리고 돌아와서 함께 운동을 하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중간에 백화점에 잠깐 들러야 한다고 하여 출발시간을 앞당겼다. 더러는 출발하기로 한 시간을 아내가 넘기는 일이 있긴 하지만 조금 늦는다고 결혼 초처럼 싸우는 일은 없다. 부부관계를 해칠 만큼 중요한 약속이 아니라면 상대방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하면 되는 일이고 기분 좋게 다녀와서 다음부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면 아내 역시 내 말을 수용하는 쪽이어서 다투는 일을 피해갈 수 있다.

외출을 할 때면 아내는 늘 바쁘다. 자기 한 몸 준비하기에도 바쁜데 남편 옷 챙기랴, 집안 정리하랴, 아이들 식사 챙겨 놓으랴…. 그래서 요즘은 내 옷은 미리 부탁을 하거나 내가 다려 입는 편이고 아이들 식사도 스스로 알아서 먹도록 한다.

20년, 30년 가까이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남녀가 한 지붕 밑에서 함께 먹고 자는 동안 다툴 일이 왜 없겠는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며 그 차이를 조화시키는 지혜를 키워나간다면 부부싸움도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평하고 비난하고 화를 내기 전에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나의 욕구와 희망 사항을 제대로 전달하기만 해도 부부간의 다툼은 크게 줄일 수 있다.

아내와 앞으로 살아가면서 다툴 일이 또 있겠지만 적어도 사소한 일 때문에 우리의 관계를 해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부부간의 신뢰와 튼튼한 애정전선이 그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는 근원임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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