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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를 위한 비폭력 교과서
ⓒ 도서출판 부키
우리는 왜 폭력을 사용하는가? 폭력을 사용하게 만드는 인식과 그 인식의 틀로 만들어진 구조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우리는 과연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공권력의 폭력에서부터 그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과 그 폭력을 다시 징계하는 폭력 등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폭력의 사슬은 끊을 수 없는 것일까?

평화를 목적으로 하면서도 수단은 폭력을 선택하는 각종 투쟁들은 제대로 성취되고 있는가? 도리어 더 큰 폭력을 불러일으키고 여론의 냉소와 비난과 공격의 빌미를 주고 있지 않은가? 아니 다른 것은 다 놓아두더라도 폭력을 사용하는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아키 유키오가 쓴 <우리 모두를 위한 비폭력 교과서>(도서출판 부키)라는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폭력이 일어나는 원인과 구조를 밝히고 있습니다. 진정한 비폭력을 실천한 분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87가지의 비폭력 행동 방법을 제시하고, 비폭력주의자가 되기 위한 삶의 자세와 원칙, 그리고 규율을 간명하고 쉽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비폭력적인 삶을 위한 훈련 방법도 담고 있어 매우 복잡한 이론서나 이념적인 전문서가 아닌 비폭력의 기본과 기초를 다지게 하는 ‘교본’의 성격이 강한 책입니다.

사회·정치 풍자 만화가인 하시모토 마사루의 재치 있고 풍자적인 그림들이 또 다른 재미를 더해주는 이 책의 저자는 머리말에서 1962년 ‘쿠바 위기’를 계기로 ‘비폭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수많은 시민 활동에 참가하면서 비폭력 트레이닝을 소개했고, 길거리 연극이나 다이 인(die-in·항의의 뜻을 표시하기 위해 죽은 듯이 드러눕는 행동)을 계속해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비폭력주의’를 말하는 것은 주제넘은 것 같다고 하며 다만 저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과 에고이즘을 똑바로 보면서 조금씩 비폭력의 길로 가까이 가려고 할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이러한 저자의 겸손함이 책의 신뢰감을 더욱 높여주고 있는데,

비폭력주의자 다나카 쇼조, 소로우, 함석헌 등 소개

저자는 먼저 이 세상에 어떤 폭력들이 존재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즉, 육체와 정신에 가하는 직접적 폭력, 사회의 구조 자체가 만들어내는 억압·소외·실업·빈곤 등의 구조적 폭력, 따돌림과 체벌의 교내 폭력, 그리고 테러리즘·핵이라는 폭력, 환경을 파괴하는 경제 개발 폭력인 팍스 이코노미카, 텔레비전이나 영화의 폭력, 남성 우위 사회의 폭력과 최대의 폭력인 권력의 폭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어 각종 폭력에 저항하여 비폭력주의자가 된 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비폭력주의자는 정말 멋진 사람이다’라는 부제를 달고 다나카 쇼조(1841-1913), 후지이 닛다쓰(1886-1985), 아와곤 쇼코(1903-미상), 이시다니 스스무(1931- ), 무카이 코(1920-2003), 그리고 미군 부대 확장을 반대하여 ‘스나가와 투쟁’에 나선 일본의 부인들을 소개합니다.

그리고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1817-1862), 레프 톨스토이(1828-1910), 피에르 세레졸(1879-1945), 마하트마 간디(1869-1948), 마틴 루터 킹(1929-1968)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세계의 위대한 비폭력주의자들의 삶과 사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는 한국인 비폭력주의자로 함석헌옹(1901-1989)을 소개하며 탄압이나 투옥에도 굴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민주화 운동을 추진한 ‘한국의 간디’로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아울러 87가지의 다양한 비폭력 행동 양식을 그림으로 그려 이해를 돕고, 이러한 비폭력 행동을 바탕으로 해서 간디의 소금 행진을 비롯하여 나치스에 대한 전 노르웨이 사람들의 비폭력 저항, 베트남 전쟁에 항의하는 연좌 시위, 미국 시브룩 원자력 발전소 부지에 대한 비폭력 점거, 군비 축소를 위한 단식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비폭력 행동의 감동적인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비폭력주의가가 될 수 있고, 이제 비폭력 행동을 하려면 먼저 비폭력적인 삶의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유발합니다. 한쪽이 폭력을 행사하면 상대방, 특히 권력을 가진 쪽은 몇 갑절의 폭력으로 되돌려 줍니다. 폭력으로 얻은 것은 결국 폭력으로 빼앗기게 마련입니다”는 교훈을 이 책은 던져주고 있는데,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는 법이라는 마태복음의 말씀이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저자는 비폭력 행동을 실천하는 것은 불의를 극복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지 불의에 대한 앙갚음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적대 관계에 있는 상대방도 자기와 똑같이 살아있는 인간이므로 폭력에 대해서는 공포나 분노로 반응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비폭력 운동은 본래 상대방을 패배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증오심을 없애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상대방도 양심에 따라서 행동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속에 비폭력 운동의 열쇠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폭력을 통해서는 평화가 오지 않는다

그러나 비폭력 행동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준비와 훈련, 그리고 비폭력을 추구하는 그룹간의 원칙과 규율이 필요한 것이죠. 인도에 간디의 운동을 계승한 샨티 세나라는 단체에서는 비폭력을 위한 일상적인 마음가짐으로 기도와 명상, 청결한 습관, 악기 연주와 노래 부르기, 미소 짓는 얼굴, 경청하기, 일기 쓰기, 신중하기,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자세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일상적인 삶의 자세와 훈련이 있어야 실천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비폭력적인 삶을 살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비폭력은 말이나 행동은 물론 그 사람의 삶, 라이프 스타일, 그 사람이 지향하는 사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평화 탁발 순례를 하고 있는 도법 스님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근현대사를 거쳐 나오는 동안 한 번도 진정한 평화의 체험을 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이는 곧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항하는 운동 방식이 가혹한 역사 속에서 뿌리내려서 비폭력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성취와 연대가 박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폭력 행동은 결코 무기력한 사람들의 소극적인 운동 방식이 아닙니다. 폭력을 통해서는 평화가 오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실천하는 매우 용기 있는 선택인 것입니다. 목적은 평화이면서 수단은 폭력일 때, 목적도 달성할 수 없을뿐더러 여론의 정당성마저 확보하지 못하는 자기 모순에 빠질 것임을 아는 사람들의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삶을 비폭력으로 채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 사람들이 연대하여 공권력의 폭력과 구조적인 폭력에 맞서 싸우는 아름다운 비폭력 운동이 꽃을 피우며, 우리들의 일상에서 폭력의 어둠이 물러날 때 인류의 행복과 세상의 평화가 이상으로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비폭력주의자들의 삶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 물질적인 삶보다 생활의 질을 추구한다.
* 간소한 생활을 한다.
* 자연과 조화된 삶을 추구한다.
* 대체로 육식보다 채식을 한다.
* 유기 농업을 한다.
* 물건을 아껴 쓰고, 재생하여 이용한다.
* 지역 자치에 관심을 갖는다.
* 원자력보다 대체 에너지를 이용한다.
* 물욕에 치우치지 않고 타인과 경쟁하지 않는다.
* 권위적이지 않고 상대의 인격을 존중한다.
* 사회적 신분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교제하지 않는다.
* 영웅이나 지도자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자립을 소중하게 여긴다.
* 악이나 사회의 부정에 침묵하지 않는다.
* 끝까지 무기나 힘을 행사하지 않는다.
* 밝고 유머가 있다.
* 상대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자기의 주장을 참을성 있게 전한다.
* 탄압에 굴하지 않고 신념에 따라 끈질기게 저항한다.

우리 모두를 위한 비폭력 교과서

아키 유키오 지음, 하시모토 마사루 그림, 김원식 옮김, 부키(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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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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