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백지영씨에 대한 칼럼을 썼습니다. '톱1 백지영, 더 뻔뻔해져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이 걸 쓴 건 사실 '기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동안에도 계속 앨범을 냈지만, 안타깝게 잘 되지 않았습니다. 노래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 이름만 들으면, 그녀의 노래가 아니라 다른 걸 떠올렸습니다.
사실 마음이 아팠습니다. 같은 여자라 더 마음이 아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잘못했다 말하며 눈물을 흘리던 그녀를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잊었습니다. 아니, 잊을 만하면 그녀가 보였습니다. 그러다 또 사라졌습니다. 아등바등 노력하는 게 보일락 말락 하다 사라졌습니다. 씩씩하게 웃고 있지만, 속으로 울고 있는 게 보이는 거 같았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6년 만에 드디어 활짝 웃는 얼굴로 나왔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노래를 불렀고, 사람들은 노래가 좋다고 했습니다. 드디어 그녀의 사생활이 아니라, 그녀의 노래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같은 직장 동료는 그녀의 노래를 컬러링으로 설정했습니다.
TV에선 그녀가 "사랑 안 해"라는 애절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종종 보였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웠습니다. 제 눈에 그녀는 예전에 한창 날릴 때보다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시련을 딛고 일어선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저는 그녀에게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배웠습니다. 아. 저렇게 용기 있게 살면 되는구나. 남들이 뭐래도 열심히만 하면 되는구나. 희망은 역시 끈기 있게 노력하는 이에게 오는구나. 나폴레옹도 일찍이 말했습니다. "승리는 인내심이 가장 강한 사람의 것이다." 숨지 않고, 끈기 있게 노력해서 스스로 우뚝 선 그녀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응원가를 썼습니다. 아니, 실은 박수 치는 소릴 썼습니다. 멋집니다. 당신이 이룬 건, 거저 얻은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봐줘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백지영씨, 당신이 얻어낸 겁니다. 좌절하지 않고 계속 도전한 그 용기에 존경을 보냅니다.
멋지다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툭하면 좌절하고, 작은 일에도 방바닥을 긁으며 "나는 안돼"라고 뇌까리기 일쑤인 우리가, 내가 부끄럽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잘 버텨줘서. 끈기로 버텨서 우뚝 선 모습을 보여줘서.
[조은미의 비틀어뷰]란 칼럼에 그런 그녀 이야길 썼습니다. 그리고 전화와 쪽지와 여러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기분이 좋았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너 때문에 백지영씨가 더 상처를 받는다. 왜 지나간 과거는 들추느냐? 누구는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고 했습니다. 당혹스러웠습니다.
매니저란 분이 전화를 했습니다. 그는 대뜸 말했습니다. "그런 기사를 쓰기 전에 상의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는 불쾌하다며 얼른 기사를 내리라고 했습니다. 왜 불쾌하다는 건지, 어리둥절했습니다. 의아했습니다. 왜 잊혀진 이야기는 들추었냐며 그는 재차 말했습니다. "쓰기 전에 저희하고 상의를 하셨어야죠."
할 말을 잃었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기사 쓸 때도, 대통령하고 상의하고 기사 쓰지 않습니다. 더구나 칼럼이었습니다. "기사를 읽으셨나요?" 물으니 그는 글은 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포털에서 가장 많이 읽은 기사로 뽑혔다며 회사에서 난리가 났다고만 했습니다. 얼른 내려달란 소리만 했습니다. 그와 통화가 끝났습니다.
두어 시간 뒤에 이번엔 다른 매니저분이 전화를 했습니다. 제가 마침 통화중이라 연결이 안 됐습니다. 메모 남긴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까 그분보다 좀 더 높으신 분이었습니다. 그가 대뜸 말했습니다 "기사를 왜 그렇게 쓰셨어요? 같은 여자 입장에서 너무한 거 아닙니까?" 같은 여자 입장에서도 잘 했다고 쓴 글이 되레 반대로 읽혀 어리둥절했습니다. 글을 읽으셨나 물으니, 글을 프린트해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한 손으론 '야동'을 내려받고, 다른 손으론 여자들을 손가락질 한다. 이거 조기자 아버님이세요? 기자님. 대학 나왔어요? 중졸이죠? 창피하지도 않으세요? 같은 여자가 그럼 안돼요." 독자로 전화를 거신 건지, 매니저로 전화를 거신 건지 물었습니다. 그분은 "싸우려고 전화한 게 아니에요"라면서 계속 말했습니다. "기자님, 중졸이에요? 이렇게 쓰지 마세요." 그리고 전화가 툭 끊겼습니다. 소통할 길을 잃은 전화기가 뚜뚜 울렸습니다. 오독하신 거라 말할 틈도 없었습니다.
또 백지영씨가 소속된 음반사 높으신 분이라고 밝힌 분도 쪽지를 보내서 질타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던 그 분은 말했습니다.
"당신도 부모님의 성관계로 태어난 부산물이란 것을 자학하시는 글입니까? (중략) 노력해서 재기했다는 말씀을 하시고 싶은 것 같으나 세상은 그렇게 더럽지만도 깨끗하지만도 않은 것 같고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변해가고자 노력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어리둥절했습니다. 사람들이 성숙한 모습으로 변해가고자 노력하는 게 미덕이다. 바로 제가 백지영씨에 대한 칼럼에서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했던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썼습니다. "백지영이 다시 뜬 건, 우연이 아니다. 바뀐 시대에 무임승차한 게 아니다. 그녀가 한 거다. 그녀가 뼈 빠지게 일해 얻은 티켓이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그녀는 했다. 잘했다. 백지영." 백지영씨가 재기에 성공한 게, 백지영씨가 노력해서 얻은 거다. 백지영씨가 잘한 거다라고 말한 게 안 보인단 건가요?
세상엔 많은 오독이 넘쳐납니다. 물론 정반대로 읽게 만든 제 탓일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백지영씨가 잘했고, 재기에 성공한 백지영씨가 멋지다는 목소리가, 박수 소리가 들리지 않던가요? 박수를 치는 손에 난 종기에 눈을 두느라, 박수 소리를 듣지 못했던 건 아닌가요?
착잡한 금요일입니다. 여하튼 백지영씨 응원가에 같이 동참해준 분들께 고맙습니다. 남성분들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드린 두 문장을 넘어서 전체적인 글의 진의를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환호성 응원가가 백지영씨에겐 제대로 전달되기 바랍니다. 독자들 여러분께도. 백지영씨는 더 더 더 성공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