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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은 화려하지만 놀이가 끝나고 나면 허공이 있을 뿐이다.
불꽃은 화려하지만 놀이가 끝나고 나면 허공이 있을 뿐이다. ⓒ 조태용

"한국 축구 언제 하는데? 언제 하는 거야?"
"새벽에 한다던데."
"오늘 새벽? 내일? 모레?"
"몰라. 언젠가 하겠지."


아침 식사 자리에서 아내와 내가 나눈 대화다. 대한민국에 온통 월드컵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지만 아내와 나는 딴 세상 사람인지 통 관심이 없다. 한국과 스위스의 경기 결과가 16강 진출 여부를 결정한다는 보도를 들었지만 언제, 어느 경기장에서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그냥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축구를 좋아하지만 그것은 내가 직접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달리고 있을 때다. TV로 보는 축구에는 별 관심이 없다. 더구나 지난번 한국과 토고의 경기 때 토고의 1인당 GNP가 350달러라는 화면을 보고는 왠지 '우리가 지면 어떨까' 하는 '반민족적인' 생각도 들었다. 토고 사람들이 행복한지, 우리가 행복하지 모르겠지만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토고가 승리한다면 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윤택해지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결론은 대한민국의 승리. 당연히 우리가 이겨서 기분 좋았다. 하지만 아마 토고가 이겼다고 해도 프랑스나 스위스에게 진 것보다는 덜 서운했을 것 같다.

또한 자국 국가가 울려 퍼져야 할 때 상대방 국가가 흘러나와, 서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토고 선수들의 모습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때 일장기를 달고 있던 고(故) 손기정 선수의 우울한 표정을 연상시켰다. 정작 자기 나라 국가가 울려 퍼졌을 때, 함께 나온 아이들이 들어가려고 하자 애써 가지 말라고 붙잡던 토고 선수들의 손짓도 떠올랐다.

FTA·대추리·새만금... 얼마나 더 월드컵에 파묻혀야 하나

우리 집에서 부부가 함께 축구를 관람한 것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내는 그 다음에 열린 프랑스와의 경기를 꼭 보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그러나 경기 당일 겨우겨우 일어난 아내는 나를 깨운 뒤 다시 잠을 잤다. 결국 나는 프랑스와 한국의 경기의 후반전 일부를 시청해야 했다. 물론 다른 나라 경기를 끝까지 본 적도 없다.

그 후 한참 동안 아내와 나 사이에서 월드컵에 대한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늘(23일) 아침 아내가 '축구 언제 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언제 하는지 모른다'고 대답했던 것이다. '한국과 스위스 경기가 열리는 날을 모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온 나라에서 월드컵 열풍이지만 어디선가 월드컵보다 중요한 일을 위해 열심히 소리치며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열린 '6·15공동선언 6돌 통일대축전'과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를 취재했던 기자들에 따르면 그 행사 기사에 대한 관심도는 최악에 가까웠다고 한다. 모두 월드컵에 관심을 두고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5·31지방선거 이후의 과제, 한미FTA 문제도 월드컵에 묻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대추리 이야기도, 이제는 막혀버려 완전히 죽어간다는 새만금 갯벌의 신음소리도 월드컵 함성소리에 밀려 우리 관심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하지만 우리가 월드컵 응원 구호로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을 때, 진짜로 발 딛고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의 현실은 월드컵이 시작하기 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한국과 스위스의 축구는 언제 하지? 아내의 물음에 답변하기 위해 신문을 펼쳐봐야겠다. 그런데 언제 하는 거야….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중단되기 전에 휘날리던 깃발. 지금은 뭐라고 외치고 있을까?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중단되기 전에 휘날리던 깃발. 지금은 뭐라고 외치고 있을까? ⓒ 조태용

덧붙이는 글 | 농산물 직거래 장터 참거래연대(www.farmmamte.com)와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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