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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뭡니까?”

남현수는 자신이 분명히 호텔방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에 별일 아니라는 듯 조작스틱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마르둑에게 물었다. 마르둑은 남현수와 마주하던 시선을 슬쩍 비킨 채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거 아무래도 충전을 덜한 모양이군요. 예비 배터리로 교체해야겠습니다.

“뭐냐고 물었습니다.”

남현수는 기분이 상해 핏대를 세우며 언성을 높였다. 분명 외계인이 미지의 기술로 자신을 농락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7만 년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드린다고 했지 않습니까? 하쉬의 기술로 그 때의 일을 보여드리는 겁니다.”

남현수는 마르둑을 더욱 믿을 수 없었다.

“이게 정말 그 때의 일인지 당신의 장난인지 내가 알게 뭡니까?”

“제가 장난이나 치자고 남 박사님을 여기까지 부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기기의 원리를 얘기하지만, 남 박사님의 몸에 남아있는 기록과 우리가 7만 년 전에 전송받은 기록이 서로 융합되어 제대로 완성된 기록이 나오게끔 되어 있지요.”

“기록? 지금 내가 7만 년 전의 기록을 기억하고 있다는 겁니까?”

남현수는 마르둑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아무리 외계인이 뛰어난 기술을 갖추고 있다지만 남현수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얘기였고 매우 비과학적으로 들리는 소리였다.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를 들어 보셨습니까?”

마르둑의 말에 남현수는 문득 사이코메트리에 의존하여 고고학적 발견물에 대한 학술발표를 하다가 무시당한 미국의 학자가 떠올랐다. 사이코메트리는 사물에 맺혀 있는 옛 기억을 끄집어 올리는 일종의 초능력이었고 범죄수사에 활용된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증명 불가능한 사기로 얼룩져 있다고 남현수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 기기는 일종의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쌍방향으로 증폭시켜 그 당시의 상황을 실제와도 같이 보여주는 것이지요. 지구말로는 사이코메트리 능력 증폭기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 주머니 속에 아주 오래된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한번 꺼내어 보시겠습니까?”

남현수가 주머니를 뒤지자 자신의 서랍 안에 보관하고 있었던 부싯돌이 나왔다.

‘아마도 무심결에 주머니에 넣고 나온 모양이군.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남현수가 부싯돌을 탁자에 놓자 마르둑이 충전기를 갈아 끼운 기기를 부싯돌에 겨누고 단추를 눌렀다. 순간 하연 빛이 주위를 맴돌더니 부싯돌을 들고 불을 붙이는 고대 인류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런!”

놀란 남현수가 소리치자 마르둑은 기기 작동을 멈추고 예의 그 이상한 웃음으로 남현수를 바라보았다.

“이 기기는 사물에만 적용되는 게 아닙니다. 생명체에게도 적용이 되지요. 아까 남박사님이 보았던 일들도 머나먼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에 새겨진 기록이 떠오른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당신 행성의 사람들이 했던 일까지 바라보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마르둑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돌아와 다시 기기를 작동시켰다.

“그 부분은 저희 하쉬의 기록이지요. 쌍방향으로 적용되며 저희가 모르는 부분은 남박사님이 가진 기록으로 메워 나가는 겁니다. 자, 이젠 아까처럼 끊이지는 않을 겁니다.”

“이봐요, 궁금한 것이 있는데 잠깐......”

“또 무엇이 궁금한 겁니까?”

“굳이 날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특별히 선택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박사님이 처음으로 이 기기를 사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희가 찾고자 하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 분도 나중에는 엉뚱한 기억으로 빠져 버리곤 하더군요. 하지만 지금까지는 진행이 좋으니 기대를 가지는 겁니다.

“잠깐, 그렇다면......”

남현수가 더 이상 말을 할 사이도 없이 마르둑이 기기를 작동시켰고 하얀빛이 그의 시선을 모조리 뒤덮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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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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