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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이성실(자연그림책 작가,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씨가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www.kfem.or.kr)에 제공한 생태조사단 리포트를 환경연합의 양해를 구해 전문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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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초는 붉은 기운을 더했고 비갠 뒤 하늘빛이 평화롭습니다. 바다와 갯벌이 만나는 물끝선까지 걸어가며 생각합니다. 지난 달만 해도 뒷부리도요와 흑꼬리도요, 붉은어깨도요가 3만마리 이상이나 햇살을 받으며 먹이를 잡아먹고 있었는데…. 떠나간 새들이 가을에도 다시 올까?
비가 온 다음날이라 오전 내내 갯벌이 젖어있었습니다. 걸음을 뗄 때마다 농게나 칠게 구멍이 밟힙니다. 구멍 속에는 살아있는 것들도 있고 이미 죽어 초파리가 들끓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비온 뒤에 축축해진 것을 바닷물이 들어온 것으로 알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절절 매는 두토막눈썹참갯지렁이들이 부쩍 눈에 띕니다. 한쪽은 이미 죽었는지 초록색인데 꼬리 쪽이라도 끊고 들어가지 못해 버둥거립니다. 바닷물이 들지 않으면서 부쩍 마르고 딱딱해진 뻘 속으로 빨리 파고들지 못한 갯지렁이들은 오후가 되면 말라죽을 것입니다.
게 구멍 속에는 산 것과 죽은 것이
오후에는 화포 갯벌에 다시 가보았습니다. 바닷물과 민물이 오가던 갯골 가득히 구멍에서 나와 커다란 집게발을 든 채 해바라기를 하던 농게들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갯골도 거의 사라졌고요.
물끝에선 가까이 걸어가서야 농게 몇 마리를 만났습니다. 육지 가까이 살던 농게들이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바다 쪽으로 옮겨와 자리 잡은 것입니다. 그나마 오후 내내 해가 내리쬐면서 갯벌은 하얗게 소금기가 올라오고 농게가 급하게 뻘을 먹은 흔적도 말라갑니다.
나는 지난 3년 동안 한달에 한번 새만금 갯벌에 갔습니다. 2003년에 삼보일배가 끝난 뒤 뭔가 해야 할 듯해서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에 참여했지요. 지난3 년 동안을 떠올리면 서울과 군산을 오가는 고달픔이나 얼굴이 부어오르며 딱딱하게 굳을 정도의 추위, 여름의 더위와 무릎까지 빠지는 뻘 위에 말뚝을 박는 힘겨움이 먼저 떠오릅니다.
사람들에게 새만금의 소중함을 더 많이 알려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실이 절박한 데 비해 나의 지난 3년은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다니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나마 방조제를 막기 전부터 새만금에 다닌 것이 다행이다 싶습니다. 생명으로 가득한 갯벌을 보고 다녔으니까요.
자연은 계절에 따라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보여주는 것이 달랐습니다. 갯벌에 들어가 칠게와 농게를 관찰하고 백합과 동죽을 캐보는 일, 갯벌에 찾아오는 새들을 하나하나 세고 식물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 모두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갯벌에 찾아가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제부터는 생명을 기록하기보다 수많은 죽음을 기록하고 증언해야 하니까요.
생명을 기록하던 3년, 이젠 죽음을 증언하기 위해
지난 4월에 방조제를 막아도 좋다는 대법원 판결이 났습니다. 새만금의 무수한 생명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린 셈입니다.
판결이 나기 훨씬 전부터 우리는 방조제 곁에 쌓아둔 바위더미들을 보며 두려워했습니다. 바위들은 마치 갯벌을 향해 출정하려는 군사들처럼 서있었습니다. 부안의 커다란 바위산들은 한쪽 얼굴이 뭉텅 잘린 채 서 있었고요. 5월에 만난 조개 캐는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소금기가 허옇게 눈 내리듯 내렸어. 물이 들지 않자 물을 애타게 기다리던 생합들이 비가 내리자 모두 갯벌 위로 나왔제. 하지만 그 물은 조개들이 먹고 숨쉴 수 있는 바닷물이 아니야. 조개들도 울고 나도 울었어."
어민들은 올해 여름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홍수가 나서 제방이 무너졌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물 때에 맞춰 한가롭게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던 문포마을의 어부는 과거에 60여종의 바닷고기가 잡히던 집 앞 바다에서 이제는 붕어가 놀고 민물새우가 잡힌다며 한탄을 합니다. 찔끔찔끔 받은 보상금은 빚갚는 데 다 썼고 도시로 나가 뭘 해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지난 봄 허무하게 끝난 어민들의 시위를 한탄했습니다.
일본에서 찾아와 함께 저서생물을 조사하던 야마시타 씨는 일본말로 '가족'과 '조개'가 음이 같다고 합니다. 우리는 새만금에서 새로운 종의 조개를 찾아내 발표하기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야마시타 씨는 새로운 가족을 만나 이름을 불러보기도 전에 그들의 죽음을 지켜보아야겠냐며 새만금 갯벌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조개도 꿈을 꾼다면
서울로 돌아온 뒤 나는 자주 악몽에 시달립니다. 평화로운 일상이 거북합니다. 공기도 숨쉴 만하고 마실 물도 일용품도 넉넉한 것이 오히려 정서적 뒤틀림을 겪게 합니다.
어린 조카가 잘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도 가끔은 조개들을 떠올립니다. 죽도록 숨 막히고 목마른 상황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하면서요. 뒤숭숭한 꿈을 꾸고 난 뒤에는 문득 '조개도 꿈을 꿀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심란한 마음에 <모래군의 열두 달>을 다시 읽었습니다. 야생의 열두 달이 갖는 생동감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던 알도 레오폴드는 '토지 윤리'의 장에서 갑작스레 오디세우스이야기를 꺼냅니다. 신과 다를 바 없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12명의 젊은 여자 노예들을 자신이 집을 비운 동안 부정을 범했다는 의심에서 모두 한가닥 밧줄에 목을 매달아 죽였다고 합니다.
당시에 이 행위의 정당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 여자들은 재산이었으니까요. 오늘날도 그렇듯이 재산의 처분은 편의의 문제일 뿐 옳고 그름을 따질 것이 아니었고, 노예들에게까지 윤리가 확장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알도 레오폴드는 오디세우스의 예를 통해 '토지와 그 위에서 살아가는 동식물'에게 까지 윤리가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3천년이 지난 지금 오디세우스의 행동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잔혹하기 그지없습니다. 게다가 노예들의 가족들은 얼마나 괴롭고 슬펐을까요?
갯벌을 메워 그 위에 거대한 부를 축적하겠다는 개발계획은 영웅 오디세우스의 신화처럼 위력적입니다. 새만금 개발계획이 '벌거숭이 임금님'에 나오는 옷장수가 벌이는 거짓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듯합니다. 모두들 개발 신화에 세뇌당한 듯합니다.
그래도, 새만금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바다가 몇몇을 위한 토지로 바뀌면서 삶을 도난당한 어민들, 한 가닥 밧줄에 목이 매달리듯 순환의 고리가 끊겨 죽어가고 있는 조개와 게, 갯지렁이들이 존재하는 한 새만금은 포기할 수 없는 곳입니다.
우리는 죽어가는 갯벌을 보면서도 조사를 멈출 수 없고 새만금이 끝났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새만금 조사를 시작할 때 약속한 대로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새만금에 계속 찾아갈 터입니다. 새만금이 다시 살아나 생명으로 가득 찬 땅과 바다가 될 때까지 말입니다.
지금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 가운데에도 새만금의 기록을 토대로 우리 활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나타나겠지요. 먼 미래에 올 또다른 세대를 위해서라도 새만금을 계속 지켜야합니다. 세대가 달라지고 사는 방식이 변하면 언젠가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요.
그나저나 조개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요? 아마도 조개들은 숨이 막히고 배고픔과 목마름에 시달리는 꿈 대신 시원하게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는 꿈을 꿀 듯 합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지던 삶, 바다와 갯벌의 풍요로움 속에 살던 꿈을 오늘도 꾸고 있겠지요.
덧붙이는 글 | * 새만금 생명리포트2호는 http://www.kfem.or.kr/campaign/sos_e_report/060622/
http://blog.daum.net/saemangeu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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