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중국 양쯔강 중상류 충칭시와 후베이성에 걸쳐있는 취탕샤(瞿塘峽)·우샤(巫峽)·시링샤(西陵峽) 등 싼샤(三峽, 장강삼협)를 잇는 세계 최대의 댐인 싼샤댐은 그 거대한 규모로 인해 중국의 지도를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싼샤댐은 물류 혁명, 홍수 방지 등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환경 재앙, 이재민 문제 등 부정적인 효과도 예상된다. 모종혁 통신원은 최근 싼샤댐 일대를 방문하고 싼샤댐 건설의 명암을 심층 조명했다. 오마이뉴스는 이를 3회에 걸친 심층 르포로 게재한다. <편집자주>
안개에 잠긴 댐  싼샤댐은 언제나 안개에 둘러싸여 있다. 싼샤댐 때문에 생기는 심한 안개는 댐 뿐만 아니라 수몰지 전체를 삼켜버렸다.
안개에 잠긴 댐 싼샤댐은 언제나 안개에 둘러싸여 있다. 싼샤댐 때문에 생기는 심한 안개는 댐 뿐만 아니라 수몰지 전체를 삼켜버렸다. ⓒ 모종혁

벌써 4시간이 지났다. 오전 10시 40분에 이창(宜昌)으로 떠나기로 한 비행기는 이창 일대의 심한 안개에 출발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충칭(重慶)공항 곳곳에 설치된 TV에서 흘러나오는 이창의 일기예보는 맑은 날씨에 안개가 조금 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탑승구 앞에서 반나절이 다 되도록 앉자있는 필자는 울화통이 터지기 일보직전이지만, 다른 중국인 승객들은 한가로이 낮잠을 자거나 트럼프 놀이를 하는 등 별다른 동요가 없다.

창장(長江)싼샤공정개발공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한다는 허웨이(何薇, 여)는 이 같은 일이 자주 발생한다고 했다. 그는 "싼샤(三峽)댐 건설 이후 이창에서 안개가 출몰하면서 항공편의 연착이 다반사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충칭에서 이창까지의 거리는 660㎞. 거대한 중국 대륙에서 본다면 멀지 않은 거리이지만, 현재 이 지역에서는 중국 역사상 유례없는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

관련
기사
싼샤댐


아직도 공사중 싼샤댐 프로젝트의 모든 공사는 2008년에야 끝난다.
아직도 공사중 싼샤댐 프로젝트의 모든 공사는 2008년에야 끝난다. ⓒ 모종혁

13년 대공사... 소양강댐 15배에 달하는 저수용량

오후 4시가 가까워서 도착한 후베이(湖北)성 이창시. 공항 건물 외벽을 화려한 전통문양으로 장식한 이창공항의 정식 이름은 '싼샤'국제공항이다. 한적한 양자강 변의 작은 도시였던 이창을 후베이성 수도인 우한(武漢) 다음으로 발전시킨 싼샤댐의 공로를 기리는 것일까. '싼샤'가 이창을 대표하는 명칭이 되어버린 듯하다.

공항에서 싼샤 댐을 가려면 차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달려야 한다. 쌴샤댐 건설을 위해 1997년 개통된 전용도로는 험준하고 수려한 양쯔강 변을 끼고 놓여져 있다. 하지만 도로 주변의 산들은 곳곳이 흉측하게 파헤쳐졌다. 택시기사 만이(滿毅)는 "싼샤댐 건설에 필요한 석재와 토사 채취를 위해서 댐에서 가까운 석질과 토질이 좋은 산들이 이용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 무장경찰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는 몇몇 검문소와 초소를 지나 드디어 싼샤댐이 눈앞에 위용을 드러냈다. 중국 문명을 꽃피운 양쯔강을 가로막고 선 싼샤댐은 1994년 12월 공사가 시작되어 1998년부터 댐 축조에 들어갔다. 흔히 만리장성 이후 2300여년 만에 이뤄진 중국 최대의 역사(役事)라 할만큼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에 위치한 나이아가라폭포가 높이 48m, 폭 900m로 웅장한 위용을 뽐낸다지만, 높이 185m, 길이 2309m, 너비 15m인 싼샤댐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뒤에선 신도시 건설  싼샤댐 후면에서는 접항 시설과 싼샤댐 공사인력을 위한 신도시 건설이 한창이다.
뒤에선 신도시 건설 싼샤댐 후면에서는 접항 시설과 싼샤댐 공사인력을 위한 신도시 건설이 한창이다. ⓒ 모종혁

지난 5월 20일 싼샤댐은 13년에 걸친 대역사 끝에 준공됐다. 착공 전 중국정부는 총공사비로 약 108억달러를 산정했지만 현재까지 약 210억달러가 투입됐다. 소양강댐의 15배에 달하는 390억t의 저수용량과 초당 10만2500t의 방류량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싼샤댐이 축조되었다지만 댐 현장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이는 댐 전체구조 가운데 양쯔강 물길을 막는 본체 공사만 끝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체 전력생산의 30%에 달하는 1820만㎾의 설비용량을 자랑하는 발전시설과 양쯔강 상하류의 선박을 오가게 하는 통항구조물은 지금도 건설이 한창이었다.

맑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댐 주위를 자욱하게 물들인 안개 때문에 윤곽이 분명치 않은 싼샤댐의 건설 현장은 분주해 보였다. 수없이 움직이는 타워 크레인과 수천 명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싼싸댐 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창장싼샤공정개발공사 차오광징(曹廣晶) 부총경리는 "발전설비와 수로공사, 수위조절 등에 박차를 가해 당초 계획보다 1년 빠른 2008년에 모든 공사를 완료될 예정"이라며 "댐의 구조가 각기 독립적으로 설계되어 7급 이하의 지진이 일어나거나 핵공격을 받아도 댐이 순식간에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은 차오르는데... 현재 수위는 140m, 올해 10월에는 156m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적지않은 수몰 마을에는 아직도 이주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물은 차오르는데... 현재 수위는 140m, 올해 10월에는 156m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적지않은 수몰 마을에는 아직도 이주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 모종혁

중국 전인대 사상 가장 많은 반대표 나와

홍수는 중국인들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한나라 이후 2천년동안 10년 단위로 200번 이상의 큰 홍수가 양쯔강 주변에 사는 사람과 마을을 덮쳤다. 양쯔강을 수시로 황폐화시키는 홍수는 왕조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했다. 쓰촨성 사회과학원 궈홍(郭紅, 여) 교수는 "역사적으로 양쯔강 유역의 홍수는 나라를 통치하는 데에 있어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면서 "홍수를 다스리지 못하면 민심이 동요하여 민중 반란이 일어나고 왕조가 붕괴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홍수를 예방할 싼샤댐의 건설은 중국인의 뇌리를 떠나지 않던 오랜 염원이었다. 1919년 중국 혁명의 아버지인 쑨원(孫文)은 홍수를 예방하고 수력발전을 촉구하는 글을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양쯔강에 댐을 건설하는 구상을 선보였다. 쑨원에 이은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는 실천에 나서 1932년 싼샤지역을 측량하여 댐 건설에 위한 실질적인 조사를 벌였다. 국민당을 대만으로 쫓아낸 중국 공산당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홍수를 해결하고자 1950년 창강(長江)수리위원회를 설립하여 대책에 나섰다.

1954년 20세기 최대의 홍수가 양쯔강을 휩쓸어 수십만 명이 죽고 천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1956년 마오쩌둥(毛澤東)은 댐 건설을 정식으로 결정하고 양쯔강을 직접 시찰하기도 했다. 하지만 초대형 댐을 건설하기 어려운 낮은 토목기술과 건설재원 확보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건설 계획을 보류됐다. 1970년 이창에 연습용 댐으로 거저우(葛州)댐을 착공하여 중국은 댐 건설의 의지를 다시 드러냈다. 1980년에는 덩샤오핑이 충칭에서 지금의 싼샤댐이 자리잡고 있는 싼떠우핑(三斗坪)까지 순례하면서 사업 추진의 급류를 타게 된다.

퇴출 위기의 절경  샤오싼샤 디취샤의 절경. 싼샤댐은 아름다운 자연 풍광까지 삼키고 있다.
퇴출 위기의 절경 샤오싼샤 디취샤의 절경. 싼샤댐은 아름다운 자연 풍광까지 삼키고 있다. ⓒ 모종혁

정부 차원에서 싼샤댐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안이 수립된 1980년대 중반부터 중국 사회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댐 건설능력에 대한 회의에다 싼샤댐이 가져올 수많은 재앙을 우려한 지식인들과 전문가들이 격렬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를 보여주듯, 싼샤댐 건설안이 통과된 1992년 4월 전국인민대표회의(全人大)에서는 투표 참가자 2608명 가운데 1767명만이 찬성하고 33%에 이른 841명이 반대하거나 기권했다. 중국 전인대 역사상 가장 많은 반대표와 기권표가 나온 전무후무한 투표 결과였다.

당시 전인대 대표로 회의에 참가하여 반대표를 던진 레이헝순(雷亨順) 충칭시 고문 겸 충칭대 명예교수는 "전문가들은 싼샤댐 건설을 심의하기 전부터 많은 문제가 유발될 것을 알고 있었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회의석상에서 반대 의견을 냈지만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고 댐 건설의 문제점을 지적한 여러 자료들도 공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인대 통과후 싼샤댐 건설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리펑(李鵬) 당시 총리는 논쟁의 종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싼샤댐을 우려하는 중국 내부의 목소리는 그 후로도 끊이질 않았다.

물에 포위된 도시  가파른 산턱에 건설된 우산 신도시. 지반을 다지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물에 포위된 도시 가파른 산턱에 건설된 우산 신도시. 지반을 다지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 모종혁

기후변화와 안개에 시달리는 주변 주민들

충칭에서 만난 싼샤댐 전문가들은 "싼샤댐은 이창 사람들에게는 축복을, 충칭 사람들에게는 눈물과 한을 남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수몰지 주민들의 이주문제와 생태환경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충칭과 달리 이창은 댐 건설과 더불어 지역경제에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싼샤댐에서 만난 이창 주민들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컸다.

관광 가이드로 일하는 장천(張琛, 26)은 "싼샤댐 건설이후 이창이 중국 11대 관광도시로 발전하면서 400여만 명이 싼샤댐을 찾았다"면서 "해마다 관광객이 10% 이상 늘어나고 5월 노동절 연휴기간에만 7만 명이 싼샤댐을 방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광둥(廣東)성에서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는 천샤오칭(陳燒慶, 여)은 "이창의 도시 면모가 찾을 때마다 다르게 번화하고 발전한다"면서 "싼샤댐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데다 최대의 건설 규모로 이창 주민들의 큰 자랑거리"라고 말했다.

이창을 떠나 다음 날 도착한 충칭시 우산(巫山)현은 댐 건설로 잠기는 수몰지구의 고민을 보여주는 곳이다. 본래 싼샤는 양쯔강 상류의 3대 협곡인 시링샤(西陵峽), 우샤(巫峽), 취탕샤(瞿唐峽)를 일컫는다. 하늘이 내린 선물이랄 만큼 아름다운 절경인 싼샤는 이창에서 충칭 펑제(奉節)현 백제성(白帝城)에 이르는 192㎞ 구간이다. 우산은 싼샤 가운데 중간인 우샤의 상류 시작점에 위치하고 있다.

위태위태  우산의 건물들은 가파른 산 위에 위험하게 건축되었다.
위태위태 우산의 건물들은 가파른 산 위에 위험하게 건축되었다. ⓒ 모종혁
싼샤의 정수인 우샤, 샤오싼샤(小三峽), 샤오샤오싼샤(小小三峽) 등을 간직한 우산은 높아진 수위로 인해 도시를 뒷산으로 옮겼다. 가파른 산마루를 뒤덮은 건물들은 축대를 쌓은 위에 건축되어 보기에도 위태롭다. 우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쉬웨이한(徐威漢)은 "2년 전 한 공공건물이 무너져 수십 명이 죽고 다쳤다"면서 "작년부터서야 지대 기반을 다지는 공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심하게 비가 날릴 때면 토사 유실이 빈번하고 날림으로 지어진 건물도 많아서 주민들이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우산 주민들을 괴롭히는 또 다른 불청객은 지독한 안개와 높은 습도, 변화무쌍한 날씨다. 댐 건설이후 싼샤가 유속이 거의 없는 거대한 호수로 변모하면서 협곡으로 둘러싸인 우산은 사시사철 심각한 연무(煙霧)가 발생하고 있다. 일기예보가 필요없을만큼 하루에도 수차례 변하는 날씨에 주민들은 항상 우산을 휴대하고 다닐 정도다. 작은 동력선을 운행하는 푸뤼윈(傅絽運)은 "싼샤댐 건설이후 안개가 많이 끼고 습도가 높아져 여름에는 찜통처럼 후텁지근하고 겨울에는 뼈가 쑤실 정도로 찬 습기가 전신을 엄습해서 축농증이나 관절염, 기관지염 환자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