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상봉은 남북간의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지만, 상봉 이후 국내외의 상황 전개는 매우 유동적인 것으로 보인다.
김영남씨가 꺼내놓을 얘기들에 대해 일본의 보수적인 여론은 어떻게 반응할 것이며, 국내 보수언론들은 또 어떠한 입장을 내놓을 것인가. 그동안의 경험을 돌아보면 김영남씨의 말을 듣고 그냥 쉽게 넘어가려 할 것 같지는 않은 예감이 든다.
특히 메구미씨 문제와 관련하여 어떠한 내용의 얘기가 나오든간에, 북한 당국의 각본에 의한 거짓말이라는 논란을 제기하고 나설 가능성이 다분히 있어 보인다. 일본측에서는 상봉 이전부터 벌써 그같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식으로 가서는 안된다.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납북자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정작 일본의 여론은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한 규탄으로 번져갔고, 결국 북·일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우리의 상황도 그리 간단할 것 같지만은 않다. 국내의 보수언론들이 '28년만의 모자상봉' 자체보다는 '납북'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이번 상봉에 대한 '북한당국의 각본' 의혹을 제기하고 나올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이들 언론들의 북한관련 보도태도를 보면 이같은 예상이 무리는 아니다.
남북 당국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김영남씨 모자상봉을 성사시켰지만, 보수언론이나 단체들은 이를 '반북' 캠페인으로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어렵게 이루어진 남북의 결단은 원점으로 돌아가버릴 위험마저 있다.
모자상봉은 이제 출발점
김영남씨 모자상봉은 납북자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출발점이다. 그동안 납북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북측이 이런 상봉을 성사시킨 것은 전향적인 결정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번 상봉을 계기로 납북자 전체의 문제를 단계적으로 풀어나갈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런 마당에, 만약 오늘의 상봉을 반북 캠페인으로 연결시키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다면, 납북자 문제의 해결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에게는 납북자 문제를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연착륙시켜야 할 과제가 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를 정치적으로 몰고가기 시작하면 문제는 다시 뒷걸음질치게 될 뿐이다.
그런 점에서 김영남씨와 메구미씨 문제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은 일본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확인조차되지 않은 북한의 미사일발사 문제를 가지고 소동을 벌였던 국내 언론들이, 이제 다시 김영남씨 납북문제를 부각시키며 그 과오를 덮어버리려 하지 않을지. 상봉 이후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이유이다.
이념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생이별한 혈육들을 계속 만날 수 있도록 우리 언론들이 도와야 한다. 내일 아침 신문들은 '28년만의 상봉'을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 필자의 걱정이 노파심으로 그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