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석은 깔렸다. 이제 춤을 춰야 한다.
청와대 만찬장에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당을 좀 도와달라"고 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분의 의견을 큰 틀에서 수용한(다)"고 했다. '도움 요청'과 '의견 수용'의 결과로 6억원 미만 부동산의 재산세를 경감하겠다는 애기가 나왔고, "탈당은 절대 안 한다"는 다짐이 나왔다.
이로써 김근태 의장이 '비상 대책'을 펼칠 조건은 완비됐다. 부동산 대책을 손질함으로써 정책 운용의 최대 걸림돌이 제거됐고, 탈당 변수를 배제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성이 확보됐다.
춤사위는 정해졌지만...
이제 김근태 의장이 춤을 춰야 한다. 춤사위도 대충 정해졌다. '반한나라당 연합'을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비전이다. 신자유주의 반대 기조 위에서 정책을 조합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을 끌어내겠다는 구상도 나왔다. 각론을 가다듬기 위한 서민경제회복추진위도 구성됐다.
정점은 가을 정기국회가 될 것이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비상대책위의 합의에 따라 정계개편 논의의 물꼬가 트일 것이다.
김근태 의장은 이때까지 뭔가를 내놔야 한다. 단지 내놓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되고 새 패러다임과 비전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끌어내야 하고 이를 통해 열린우리당의 회생기반을 다져야 한다. 그래야 김근태 의장이 정계개편의 중심에 설 수 있다.
가능할까? 쉽지 않아 보인다. 어제의 청와대 만찬장으로 돌아가자.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의 의견을 수용했지만 그건 '큰 틀'에서의 수용이다. 민심을 받아들이고 민생을 챙긴다는 원칙엔 이견이 없지만 정책대안과 실행방법에선 충돌의 여지가 남아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FTA를 언급하면서 '철저한 의견수렴'을 약속했지만 그에 앞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김근태 패러다임'의 기조는 신자유주의 반대다.
양립하기가 어렵다.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는 사람과, 신자유주의 정책의 최종결산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단정하는 사람 간의 '철저한 의견수렴'은 기실 불가능하다. 수렴사항이 아니라 선택사항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김근태 의장은 '철저한 의견수렴'에 동의했다. 왜일까? 지금은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FTA협상은 딱 한 차례 열렸을 뿐이다. 탐색은 했지만 각이 서진 않았다. 수용카드와 불가카드가 혼재돼 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보자'는 말을 내밀 여지가 남아있다.
하지만 정기국회가 한창 열릴 때쯤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쟁점이 정리되면서 미래에 닥칠 화가 선연해지고 당사자들의 반발은 첨예해질 것이다. 이 때는 피해갈 수 없다. 김근태 의장은 선택을 해야 한다. 반대를 하든지 수용을 해야 한다.
조합은 성립불가능하다. 패키지 딜을 하자는 한미FTA협상이다. 협상 범위를 조절하자는 얘기는 성립할 수 없다. 속도를 조절하자는 얘기는 꺼낼 수 있지만 자칫하다간 양쪽에서 다 욕을 먹을 수 있다. 대선에 집착해 국가적 대사를 피해가려는, 기회주의적 행태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 김근태 의장은 어찌할 것인가?
'한미FTA 산' 넘어 '노사 대타협 산'
한미FTA만이 아니다. '김근태 패러다임'의 요체 역시 패키지 딜이다. 경제도 살리고 민생도 살리기 위해 재계와 민중부문이 서로 취하고 버릴 카드를 조합해 대타협을 하자는 것이다.
실현시키기 위해선 먼저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녹록하지가 않다. 비정규직법과 노사관계 로드맵이 버티고 있다. 일방적으로 처리하면 노동계가 반발하고 미루면 재계가 들고 일어난다. 새로 복원되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합의를 끌어내는 게 최선이지만 기약도 없고, 설령 기약이 있더라도 시간이 필요하다. 자칫하다간 추진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산다.
첩첩산중이다. 어느 것 하나 쉽게 처리할 수 없다. 어찌 할 것인가?
공짜 기회는 없다. 늘 사후 평가가 조건으로 달린다. 김근태 의장 앞에 펼쳐진 멍석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한판 흐드러지게 춤출 수 있는 마당이 될 수도 있고, 빈사상태에 이른 리더십을 덮는 거적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