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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상 담양에 갈 일이 생겼다. 망태버섯이 솟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대밭이 많은 곳이니 운 좋으면 보겠구나 싶었다. 망태버섯은 대밭을 좋아한다.

▲ 모델로 선정된 망태버섯이 솟아나는 모습
ⓒ 고평열
부지런한 망태버섯은 이른 새벽이면 솟아나기 시작하여 한낮 즈음이 되면 벌써 생장이 끝나 아름다운 망사를 허물어 버린다. 망태버섯이 나올만한 장소를 전날 밤에 미리 도착해 물색하고는 그 인근의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의 시간은 아침 9시까지가 전부이므로 나는 망태버섯보다 더 부지런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 낙엽을 치우니 무리진 유균의 모습이 드러나고, 망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 고평열
새벽 4시의 기상. 새마을 장례식장 인근의 대밭으로 갔다. 전날 밤에는 어두워 보이지 않았던 공동묘지도 보인다. 날이 밝은 기미도 없는 시간, 이맘쯤이면 밝아지기 시작해야 하는데, 짙은 안개와 가랑비가 을씨년스러움만을 보탠다.

▲ 뚜렷이 드러나는 망사의 형상
ⓒ 고평열
망태를 만나기 전에 귀신부터 만날 듯싶다. 울울창창한 왕대 숲엔 장마기의 습한 곰팡이 냄새와 바람 한 점 없는 정적, 간간이 안개비 머금은 대나무에서 떨어지는 굵은 물방울이 선듯선듯 목덜미에 떨어진다.

▲ 망사가 드리워지기 시작, 아랫부분의 유균의 정단부가 열릴 조짐이 보이고 있다.
ⓒ 고평열
대밭에서 가장 무서운 건 귀신보다 모기가 아닐까. 손톱만큼씩 커다란 모기들이 모처럼 피냄새를 맡고는 때를 만난 듯 몰려든다. 긴소매의 등산셔츠를 입었지만 옷 위로 사정없이 공격한다. 가지고 갔던 외투를 입고 귓볼을 막기 위해 모자 위에 잠바에 달린 모자를 다시 덧쓴다. 이만하면 더위도 살인적이다.

▲ 망사는 길어지고, 유균은 두툼한 입을 드러내었다. 질긴 알껍질을 녹이는 어떤 물질을 분비하는 듯.
ⓒ 고평열
여기저기 망사를 드리우기 시작하는 망태버섯과, 아직 준비 중인 버섯들, 스러져가는 버섯 등등이 밝아오는 여명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빛이 주어지지 않는 환경에서 카메라와 망태버섯과 모기와 세 시간의 사투를 벌였다.

▲ 쑤~욱 고개내민 또 다른 망태버섯
ⓒ 고평열
20cm 정도의 장대한 키와 지름 3cm의 오동통한 몸매, 입은 머리 위 정수리의 한가운데에 합죽하게 달렸다. 말뚝버섯과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솟아나다가 어느 순간부터 순백의 망사를 스르르 펼치며 누군가의 눈에 띄기 위한 매직쇼를 연출한다.

▲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
ⓒ 고평열
평지보다 경사지에 망태버섯이 주로 발생해 있다. 햇살이 여북하나마 스며들기 적당한 듯, 안개 속의 새벽빛이 굼벵이가 기어가듯 느릿느릿 스며든다. 카메라의 초점이 향하고 있는 망태버섯은 치맛자락을 서서히 늘어뜨리며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동안도 가랑비와 안개는 계속되고, 까마귀는 까악까악 울어댄다. 이른 아침 가장 먼저 깨어나는 새는 까마귀인가 보다.

▲ 또 다른 망태버섯이 망태를 드리울 준비를 한다.
ⓒ 고평열
말뚝버섯과 망태버섯은 한 어미의 자손일 것이다. 낙엽활엽수림에 사는 말뚝버섯보다 더 습하고 어두운 환경인 대숲에 놓여진 망태버섯이, 자신의 종 보존을 위해서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을 대신해 포자를 멀리 보내줄 그 어떤 대상으로 누군가를 불러들여야 했기에, 망태를 고안해 내었지 않을까. 자신의 몸을 먹이로 내 걸어야 하는 우직스런 진화를 스스로 설계할 수밖에 없었던 거겠지.

▲ 망태버섯 스러지다.
ⓒ 고평열
새벽의 비 내리는 대숲에서 망태버섯의 성장을 한 장소에서 바라보며 또 다른 진화론을 떠올린다. 내가 내 아이를 보살피며 키워가듯이, 오늘 나를 괴롭히는 모기들도 건강한 자식의 출생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덤벼드는 것일 테고, 모기들의 집중 포화 속에서 견뎌내야 하는 나 또한 두터운 외투를 뒤집어쓰고 땀을 흘리면서도 벗어 버릴 수 없는 나를 위해 이 더위에 적응하게 만들어 간다. 진화란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적응하려는 독특한 각자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결과일 테니.

▲ 생을 다한 망태버섯
ⓒ 고평열
생명의 본분이란 무엇일까. 불과 몇 시간의 생명이 주어진 동안 망태버섯은 자신의 삶이 만족스러웠을까. 허물어져가는 마지막 모습은 만물이 다 같은 공통분모에 속한다. 손실된 아름다움과 숙연함, 온 몸으로 말하고자 하는 그 무엇을 표현하며 삶을 마감한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지난 6월 28일 담양 새마을 장례식장 인근 대숲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제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같이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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