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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꼬가 곰탱이 밥을 뺏아 먹는 모습.
흰꼬가 곰탱이 밥을 뺏아 먹는 모습. ⓒ 전희식
우리나라 최고령 닭이라 자부하던 '흰꼬'가 죽었다. 직접 사망원인은 폐에 연기가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고 이 때문에 하룻밤을 앓다가 끝내 숨졌다. '흰꼬'의 허파에 연기가 많이 들어가게 된 것은 내가 아궁이 속에서 '흰꼬'가 알을 낳고 있는 걸 모르고 불을 땠기 때문이다.

장마가 길어지면서 방이 눅눅해지는 것 같아 아궁이에 불을 피웠는데 불살개에 불이 붙고 나서 고추지지대로 쓰던 나무말뚝과 포도넝쿨 잘라 뒀던 것을 함께 밀어 넣었다. 이때 '두둑' 하는 소리가 아궁이에서 났다. 나는 구들장 돌이 갈라져 떨어지는 줄 알고 부지깽이로 뒤적여 봐도 이상이 없기에 불을 계속 지폈다. 나무를 다시 집어넣는데 '푸드득'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흰꼬의 날갯짓이 보였다.

깜짝 놀란 나는 아궁이 나무를 몽땅 밖으로 끄집어냈고 마당수돗가에 물이 가득 담겨있는 물통을 들고 와 쏟아 부었다. 기세 좋게 타 오르던 나무더미에 물이 끼얹어지면서 뿜어내는 연기가 지독했다. 불길과 연기를 피해 아궁이 속으로 깊이 기어들어가는 흰꼬 때문에 나는 가슴이 졸아드는 것 같았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아궁이 속으로 넣어 팔을 길게 뻗고서야 흰꼬를 구출 할 수 있었다.

난리 통에 흰꼬가 낳은 달걀은 깨졌고 껍질의 흰 잔해가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밥을 뺏긴 곰탱이가 나한테 어찌 해 보라는 눈빛
밥을 뺏긴 곰탱이가 나한테 어찌 해 보라는 눈빛 ⓒ 전희식
집에 손님이 올 때마다 잡아먹자고 했지만 차마 잡아먹지 못했다. 그렇게 올해로 만 여섯 살이 된 흰꼬였다. 내가 마당을 걸어다닐 수 없을 정도로 내 발등 위로 오르내리던 흰꼬는 내가 외출을 하려고 하면 한참을 따라나와 집으로 되돌려 보내는데 애를 먹어야 했다.

올 초에 한 달 반 된 '곰탱이'(중국 토종개 챠우챠우의 이름)가 우리집 새 식구로 들어오자 흰꼬는 곰탱이 밥까지 다 뺏어 먹더니만 두어 달 지나자 이번에는 덩치가 훌쩍 커버린 곰탱이가 흰꼬 밥을 뺏어먹기 시작했다.

내가 한쪽 손에는 흰꼬 먹이, 다른 한쪽은 곰탱이 먹이를 들고 두 놈을 부르면 한 놈은 손바닥을 핥고, 한 놈은 손바닥을 쪼았다. 먼저 식사를 끝낸 놈이 꼭 다른 놈 먹이를 기웃거리는데 그때부터 흰꼬와 곰탱이의 밉지 않은 먹이 다툼이 벌어진다. 닭장에 기어 들어간 곰탱이가 달걀을 덥석 깨물어 먹으면 화가 난 흰꼬가 곰탱이를 쫓아 마당을 돌고 나는 캠코더를 들고 흰꼬 뒤를 쫒곤 했었다.

우리집에 온 사람들에게 흰꼬를 소개할 때 항상 나는 우리나라 최고령 할머니 닭이라고 했다. 육계는 보통 입식 후 40일이면 도살하고 산란계도 1년 반에서 2년이면 도살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만 여섯 살 된 닭이 또 있으랴 했던 것이다.

다투느라 땅바닥에 흘린 곰탱이 밥까지 싹쓸이 하는 모습.
다투느라 땅바닥에 흘린 곰탱이 밥까지 싹쓸이 하는 모습. ⓒ 전희식
밖에 나갔다 집에 들어서면서 큰 목소리로 '흰꼬야아~' 하면 살찐 궁둥이를 뒤뚱거리며 달려오던 귀여운 우리 흰꼬와 10여년 이상 자연수명이 다할 때까지 한 식구로 살자고 했던 다짐이 이제 물거품이 되었다. 항상 달걀을 낳고 나면 닭장 문을 열어 주었었는데 사고가 난 날은 달걀을 안 낳기에 하루 건너뛰나 싶어 오후에 닭을 내 놨는데 이런 불상사를 만난 것이다.

그날 저녁에 나는 목초액을 탄 물을 먹여도 보고 닭장 잠자리에 왕겨를 듬뿍 쌓아 흰꼬가 편히 쉬게 했지만 다음날 새벽 급히 닭장에 가 보니 흰꼬는 쓰러져 있었고 나를 발견하고 눈을 몇 번 감았다 떴다 하더니 숨을 거두고 말았다.

흰꼬의 주검을 텃밭 귀퉁이에 묻었다. 혹시 산 짐승이 주검을 헤칠까 봐 흰꼬의 무덤 위에 널빤지를 덮고 큰 돌을 올려놨다. 곰탱이가 시커먼 눈을 껌뻑대며 시종 지켜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농어민신문 7월 첫째주 화요일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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