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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순환도로 근처에 있는 전직 노태우 대통령의 생가터를 지나게 되어 잠시 들여다 보았다. 권불십년(權不十年) 이라고 했던가. 대통령을 배출한 마을의 모습은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르지 않았지만 좁은 골목 길가에 우두커니 서있는 팻말이 없다면 전직 대통령의 생가를 기억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 외롭게 서있는 팻말이 아니라면 아무도 이곳을 눈여겨 볼 사람은 없다
ⓒ 백성태

빛바랜 팻말을 따라 서너 걸음을 옮기니 좌측 돌담 너머로 키작은 기와집 한 채가 을씨년스럽게 앉아있다. 디딤돌을 딛고 마당으로 들어서니 안내문 하나 소품 하나 흔적도 없이 사람들의 관심조차 잊혀진 그저 빈집이며 두리번거릴 만큼의 공간도 되지 않는 소박하고 자그마한 집이다.

▲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
ⓒ 백성태

대통령의 생가임을 말해주는 어떤 느낌도 없는 평범한 시골집. 팻말이 아니었다면 슬쩍 곁눈질도 해볼 것 같지 않은 그런 곳이다. 달리 눈길을 줄 공간도 대상도 없는 썰렁함에 언뜻 전직 대통령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보통 사람" 그가 국민들을 향해 호소하던 말이다. 평범한 시골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라 권세를 누렸기에, 그의 말처럼 보통의 사람이라 여길 사람은 없을 것이다.

ⓒ 백성태

보통 사람으로 태어나 보통 사람이 아닌 세상을 누리다가 보통 사람들이 겪지 않을 온갖 특별한 삶을 살던 사람이 종국에는 국민들로부터 특별한(?) 평가를 받고 잊혀져갔다. 찾는 이 없이 외롭게 서있는 팻말이 마지막 훈장처럼 '대통령의 생가' 라는 특별함을 더해 덩그러니 서있는 것이 권불십년(權不十年) 도 채우지 못한 오욕의 징표처럼 느껴진다.

▲ 영글어 가는 포도 송이가 탐스럽다
ⓒ 백성태

잠시나마 눈길 하나 줄곳 없는 그곳을 떠나, 작은 길을 따라 내려오며 만난 포도밭의 포도는 제법 살이 여물어 있다. 누구나 당연스럽게 포도송이가 먹음직한 열매가 되리라 생각하겠지만, 하늘의 이치와 농부의 힘겨운 정성과 특별한 애정이 없다면, 끝내 단맛을 내며 결실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 백성태

아무리 탐스런 열매도, 단맛을 지니지 못하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처럼 한 시대를 풍미하며 권세를 가졌다 해도 국민들로부터 잊혀진 세도가의 종말은, 홀로 설익어 버린 열매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전직 노태우 대통령의 고향은 대구시 동구 신용동 용진 마을로, 팔공산 순환도로 근처 구릉지 한 자락에 있다. 이곳 지세는 한 마리 큰 용의 형상이라 이야기되며 마을은 용의 머리에 위치한다고 그의 전기에서 적혀있다. 특히 노태우 생가는 용머리의 중심처에 자리한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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