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말부터 한달여 동안 한반도를 강타한 북한의 로켓 발사 준비설이 소강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북한이 로켓 발사를 강행할 것이라는 확실한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고, 부시행정부는 '악의적인 무시'로 일관하면서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을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은 비공식 6자회담을 제안해 교착상태를 타개해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한국 역시 미국과의 정책 조율에 나서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로켓 발사 준비설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한반도 정세는 어디로 갈 것인가? 단기적으로 관심의 초점은 두 가지로 모아진다. 하나는 북한의 로켓 발사 여부이고, 다른 하나는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를 평양에 파견하는 등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응할 것인가의 여부이다.
이 가운데 단기적으로 부시 행정부의 직접 대화 수용 여부는 독립변수로, 북한의 로켓 발사 여부는 종속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시 행정부가 어떠한 형태로든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응한다면, 북한은 로켓 발사를 자제하고 6자회담에 복귀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반면에 부시 행정부가 계속 악의적인 무시로 일관한다면, 북한이 실제로 로켓 발사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북한의 의도이다. 외교적 해결이 어려울 때, 북한은 위기를 고조시켜 돌파구를 여는 것을 선호해왔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1994년 사용후 연료봉 재처리 카드는 제네바 합의를 낳았고, 1998년 8월 대포동 1호 발사는 페리 프로세스를, 2002년말~2003년초 IAEA 사찰단 추방 및 NPT 탈퇴는 3자회담 및 6자회담을, 그리고 2005년 2월 핵보유 선언은 북미 직접 대화 및 9·19 공동성명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러한 외교적 성과가 북한의 벼랑끝 전술의 산물로만 보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르지만, 교착상태를 타개하는데 핵이나 미사일 카드가 효과를 본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의 '로켓 카드'의 1차적인 해석은 이란 등 중동에 경도된 부시 행정부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부시 행정부를 압박함으로써 북미 직접 대화에 응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외교적 의도는 절반의 성공과 실패를 동반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의회와 언론을 중심으로 북미 직접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부시 행정부는 직접 대화 수용이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넘어가는 것이라며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계속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로켓 프로그램과 '원거리 억제력'
따라서 관심의 초점은 부시 행정부가 '악의적인 무시'로 일관할 경우이다. 이는 북한의 '로켓 카드'의 외교적 의도가 충족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럴 경우 북한은 로켓 발사를 강행할 가능성이 있다.
로켓 발사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3단계 로켓을 발사한다면 이는 98년 대포동 1호(광명성 1호) 때처럼 인공위성 발사가 될 것이다. 반면 2단계 로켓을 발사한다면, 이는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를 연장하기 위한 미사일 시험 발사가 될 것이다. 만약 북한이 로켓 발사를 강행한다면, 외부의 제재 및 압박에 맞설 명분을 확보하고 내부의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인공위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북한이 로켓 발사를 강행한다면, 이는 북한의 의도가 '외교적 카드' 이상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북한의 로켓 프로그램은 핵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외교적 지렛대와 함께 '억제력' 확보라는 군사적 목적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부시 행정부의 의도에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고, 2008년까지 그럭저럭 버티기에 성공하더라도 차기 미국 행정부가 부시 행정부보다 온건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며, 미국의 군사적 능력 배가와 미일·한미동맹 재편으로 북한의 대미 억제력이 약화될 수 있으며, 북한 내 군부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북한으로서도 새로운 억제력을 추구할 동기는 생기고 있다고 봐야 한다.
특히 주한미군의 후방 재배치 계획으로 인해 그동안 막강한 억제력으로 기능해온 북한의 야포 전력이 무력화될 상황에 직면하고 있어, 북한으로서는 '원거리 억제력 확보'에 강한 유혹을 느끼고 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정리해보면, '좋은 시나리오'는 부시 행정부가 어떠한 형태로든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임하고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재가동되는 것이다. 반면 '나쁜 시나리오'는 부시 행정부가 '악의적인 무시'로 일관하고 이에 대해 북한이 로켓 발사를 강행해 한반도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두 가지 가능성 모두 낮아 보인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북한의 로켓 발사 준비설은 시들해지고 교착 상태가 길어질 공산이 높아 보인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루빨리 교착 상태를 타개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데 힘과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교착 상태의 장기화는 통제하기 힘든 변수들의 개입을 야기해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만 고조시킬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의 과감하고도 치밀한 전략 마련이 절실히 요구된다. 올해 안으로 교착상태를 타개하고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설정해 이를 가능케 하는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북미간의 직접 대화와 6자회담 재개를 절묘하게 연계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미 직접 대화와 6자회담 재개를 연계시켜야
문제는 북미간의 직접 대화를 요구하고 있는 북한과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고 있는 미국 사이의 갈등이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2005년과 흡사한 경로를 고려해볼 수 있다. 2005년 초에도 부시 행정부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과 북한의 핵 보유 선언 등으로 한반도 정세는 좋지 않았다.
그러나 북미간의 직접 접촉과 남북관계의 복원이 선순환을 이루면서 6자회담 재개 및 9·19 공동성명 채택에 이를 수 있었다. 작년과는 여러 가지로 상황이 다르지만, 정부는 북미간의 직접대화-남북관계 개선-6자회담 성과 도출 등 작년과 비슷한 경로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복원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의 긴밀한 협조체제 구축을 통해 중국이 북한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정부가 북미 양측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돌파구를 열 수 있는 방법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전제로 북미 직접 대화'를 주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작년 5월말-6월초에 북미간의 뉴욕 접촉, 6월 중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자회담 복귀 의사 표명, 7월 초 김계관-힐 베이징 회동, 7월 하순 6자회담 재개와 비슷한 경로를 고안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6자회담 차석대표인 리근 외무성 미국국장이 7월말~8월초에 MIT 공대와 스탠퍼드대 주최의 학술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북미간의 비공식적인 직접 접촉도 기대해볼 만하다.
이 접촉에 앞서 정부는 부시 행정부에게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약속할 경우 6자회담 이전에 북미간에 수석대표 접촉을 가질 수 있다는 입장을 북한에 전달하게 하는 방향으로 한미간 정책 조율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북미 양측이 김계관-힐 회동 때 6자회담 재개를 공식 발표하면 양측의 체면을 살리면서 교착상태를 타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