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하반기, "북한이 금창리 지하시설에서 비밀리에 핵개발을 하고 있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와 2주 후 북한의 소형 인공위성인 광명성1호(대포동1호) 발사로 한반도 정세는 가파르게 악화되었다.
미국 안에서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일각에서는 북폭론까지 거론됐다. 공화당 주도의 의회로부터 강한 공격에 직면한 클린턴행정부는 1기 때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를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해,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고 새로운 정책을 입안토록 했다.
당시 미국 안의 강경론에 밀린 클린턴 행정부는 강경 기조의 대북정책을 채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 김대중 정부가 미국을 설득하고 나섰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도, 이들 문제를 대북 경제제재 해제 및 북미관계 정상화와 연계시켜 해결하는 '일괄타결안'을 제시했다.
또한 북한의 광명성1호 발사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북미 미사일회담과 금창리 핵의혹 시설 해소를 위한 북미접촉을 중재하기도 했다. 아울러 닻을 올리기 직전에 터진 금창리와 미사일 문제에도 불구하고 금강산관광 사업과 대북 인도적 지원도 예정대로 추진해 나갔다.
이와 같은 DJ의 뚝심과 철학은 클린턴 행정부를 움직이는데 성공해, 대북포용과 일괄타결을 골자로 한 '페리 보고서'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DJ외교'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흔들리는, 그러나 흔들리지 말아야 할 대북 포용정책
미국의 집권세력을 비롯해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지만, 1998~1999년 사례는 오늘날과 흡사한 측면이 있다.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사일 문제까지 불거졌고, 이에 따라 미국과 일본은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등 군사적 준비 태세를 강화한 것도 닮은꼴이다. 미국 내 대북정책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남한의 대북 포용정책이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것 역시 흡사한 모습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보다 후퇴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규정하는 한편, 북한에게 실질적인 부담을 안길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며 쌀과 비료의 지원을 유보키로 했다. 또한 북한에 경공업 원자재 유상제공 등 정부차원의 남북경협도 속도조절에 들어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러 차례에 걸친 남한의 설득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것은 분명 유감스럽고도 당혹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경기조의 대북정책으로 선회하는 근거로 삼는다면, 이는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쌀과 비료 등 인도적 지원마저 중단한다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 등 경제협력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명분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내의 보수파와 미일 양국의 강경파들은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에 들어가는 현금이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김정일체제 유지비용으로 사용된다며, 경협 축소 내지 중단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도적 지원의 지속은 남북경협까지 부정적 영향을 차단하는 '방파제'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대북 지원축소 등 대북 강경기조의 정책이 과연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유용한 정책수단이냐는 것이다. 보수언론과 정치인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대북 포용정책의 총체적 실패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결코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98년부터 본격화된 DJ의 대북포용정책은 금창리와 미사일 위기를 해소하는데 크게 기여하면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병행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부시행정부의 '악의 축' 발언 및 선제공격 채택으로 한반도에 위기가 조성됐던 2002년 봄, DJ정부는 임동원 특사를 평양에 파견해 남북관계를 한단계 발전시키기로 합의함으로써 제2의 6·15시대를 열기도 했다.
2005년 상반기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로 규정하고 '폭정의 종식'을 2기 행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로 내세우자, 북한이 핵보유 선언으로 맞대응하면서 조성됐던 위기상황도 남북대화의 복원 및 정동영 특사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을 계기로 수습됐다. 대북 포용정책은 이처럼 때로는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데, 때로는 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제어하는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오히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대북 포용정책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 강경책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현명한 처사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는 부시 행정부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대북 강경책으로 인해 초래된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대북 강경책으로 풀어보겠다는 것은 기름으로 불을 꺼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북 포용정책의 대전제는 제재와 압박이 아니라 대화와 협상을 기초로 상호위협 감소 및 경제협력 강화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데 있다. 그런데 정부가 미국 주도의 대북제제와 압박노선에 동참한다면, 이는 지난 8년간 어렵게 쌓아온 대북 포용정책의 기반을 허무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북 포용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일괄타결안을 기본 원칙으로
오히려 노무현 정부는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번 미사일 사태로 조성되고 있는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8년 전 김대중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남북관계를 종전처럼 가져가는 것이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책변화의 방향은 대북 지원중단과 미국 주도의 대북 압박구도에 동참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일괄타결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 정부는 얼마 전까지 미사일 문제는 북미간의 사안이라며 방관자적 자세를 보였다. 그러다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가 포착된 5월 들어 대응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유감스럽게도 그 대응책은 북미간의 대화 중재보다는 북한에 대한 경고에 치우쳤다.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강행이 보여주듯 대북 압박과 경고는 통하지 않았다. 이는 앞으로도 대북 제재와 압박이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키는데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1998년 DJ가 추진했던 일괄타결안을 문제해결의 기본원칙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일괄타결안의 골자는 북한이 핵뿐만 아니라 탄도미사일도 포기하고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 북미, 북일관계를 정상화하는데 있다.
북한 역시 북미관계가 정상화되면 장거리 미사일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밝힌 바 있어, 한국이 미국과 일본을 설득한다면, 이러한 접근법은 유력한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미국 내에서 일괄타결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 역시 이러한 접근법의 유용성을 높이는 요소이다.
물론 대북강경책으로 일관해온 부시 행정부가 일괄타결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일괄타결안을 공론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는 미국 내 협상론에 힘을 실어주고 국제사회에서 해법을 공론화시키는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북미간의 극한 대결을 완충시키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현명한 대처를 간곡히 당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내일신문 7월 6일자에 기고한 칼럼을 크게 수정한 것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