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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가물가물 해지자 수이는 더 이상 망설일 수 없었다. 수이는 계속 소리를 내며 손짓을 하는 이상한 짐승을 뒤로 하고서는 솟을 뒤쫓았다.
이상한 짐승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먼발치에서 솟과 수이의 뒤를 어색한 걸음걸이로 따라 나섰다. 짐승이 따라오는 것을 알아챈 솟은 방향을 틀어서 숨기 좋은 곳을 골라 수이와 함께 웅크려 앉았다.
이상한 짐승은 이미 그들이 숨은 장소를 알아채고서는 숨어있는 곳까지 천천히 솟을 뒤쫓아 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솟은 그 이상한 짐승이 동료들을 불로 죽였다는 사실에 점점 의구심이 갔다.
솟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을 돕고 먹을 것 까지 나누어 준 짐승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전혀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솟은 깊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걸을 수 있는 것이 이상한 짐승이 준 음식 덕분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이상한 짐승은 솟과 수이에게서 조금 거리를 둔 채 조심스럽게 웅크려 앉았다.
수이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려 했지만 솟은 이를 만류했다.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수이는 솟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상한 짐승에게 다가갔다.
-솟, 아무리 봐도 이 놈은 전에 사로잡았던 놈과는 다른 것 같아.
솟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다만 편안히 누워 쉬고 싶었지만 이상한 짐승이 신경 쓰여 그럴 수가 없다는 점이 불편할 따름이었다. 수이는 이상한 짐승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어디론가 뛰어갔다.
-수이! 어딜 가는 거야! 수이!
-금방 올게
솟은 얕게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과 모든 동물들이 몰살당하고 눈앞에서 동료가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수이는 쾌활함을 잃지 않았지만 그런 수이를 솟은 이해할 수 없었다. 위험할지도 모르는 짐승과 함께 자신을 남겨둔 수이에 대해 솟은 순간적으로 조금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솟은 당장이라도 공격할 수 있게끔 허리를 일으켜 세우고 경계심 가득한 태도로 이상한 짐승의 행동을 주시했지만 이상한 짐승은 솟을 한번 힐끗 쳐다볼 뿐이었다. 그리고선 이상한 짐승은 무덤덤한 태도로 등에 매고 있는 가죽을 끌러 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었다.
솟은 바싹 긴장한 눈초리로 한쪽 손에 무기로 쓸 돌을 주워 감춘 채 이상한 짐승의 행동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이상한 짐승은 꺼내든 물건을 한번 문지르더니 그것을 입에 가져가 먹기 시작했다. 솟의 표정은 경계에서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바뀌었다.
이상한 짐승은 솟을 바라보더니 손바닥에 자신이 먹던 음식을 놓고 솟에게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그것은 솟이 보기에 마치 굵은 나무 벌레 같이 생각되었다. 솟은 벌레를 먹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았다.
-안 먹어
이상한 짐승은 솟의 말을 못 알아들었는지 계속 먹을 것을 권했다. 솟은 목소리를 높였다.
-안 먹는다니까!
이상한 짐승은 큰 소리에 놀라 움찔거리더니 손에 든 음식을 마저 먹어치워 버렸다. 그리고 배낭에서 각이 진 물건을 꺼내어놓더니 거기에 대고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솟은 조금은 안도를 할 수 있었다. 그 태연함에 이상한 짐승이 앞으로 전혀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솟에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긴장이 풀린 솟은 손에 든 돌로 땅에 그림을 그렸다. 가끔씩 무료해지면 하곤 하는 행동이었지만 별 의미 있는 것을 그리는 것은 아니었다.
솟은 선을 길게 그어도 보고 짧게도 그려 보았다. 솟에게 있어 땅에 이렇게 무엇인가를 그린다는 것은 매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일상의 괴로움에서 잠시나마 떠나게 해주는 놀이였다.
이상한 짐승이 그림을 그리는 솟을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공격적인 태도가 아닌 단지 호기심에 가득 찬 행동이었기에 솟은 종전과는 달리 그러한 짐승의 태도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림을 그린 솟은 짐승 쪽으로 돌을 툭 던져 놓아 버렸다.
-솟!
수이가 뛰어오며 소리치고 있었다. 수이의 손에는 하얀 꽃 한 다발이 쥐어져 있었다. 솟은 그런 수이의 모습을 보며 유쾌한 기분에 활짝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린 순간 솟은 크게 놀라 엉덩이를 끌며 뒤로 물러섰다.
이상한 짐승의 손에는 솟이 던진 돌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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