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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생태계 보호 구역'을 알리는 조종천 상류, 청계산 입간판
'자연 생태계 보호 구역'을 알리는 조종천 상류, 청계산 입간판 ⓒ 김선호
맑고 깨끗한 청계산의 계곡
맑고 깨끗한 청계산의 계곡 ⓒ 김선호
한북정맥의 한줄기를 차지하는 포천의 청계산을 어렵사리 찾았다. 이정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가는 길에 애를 먹었는데 등산로 역시 마찬가지여서 이래저래 쉽지 않은 청계산 산행이었다.

청계산 하면 '맑은 물'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푸른 물줄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장관을 상상하며 청계산 입구, 청계저수지에 다 달았다. 그런데 웬걸, 저수지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물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청계'란 의미가 퇴색하는 순간이다.

청계산(849m)의 '청계'는 푸른 물줄기와는 상관없는 '푸른 닭'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청계산 정상에 적혀 있는 바론 '靑溪'와 '靑鷄'의 중간을 뜻한다는데 그 내용이 모호하다. 어쨌든, 메말라 바닥을 드러낸 청계저수지를 지나 청계산 들머리에 들어섰는데 생태보호구역이란 말이 무색하게 개발이 한창이다.

음식점과 펜션이 계곡 주변에 들어섰고, 산을 깎고 있는 건설 현장도 눈에 띈다. 역시 포천의 청계산은 '푸른 물줄기'와는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등산로 오른편으로 흐르는 계곡의 규모가 작기도 하거니와 물줄기는 가늘게 흐르고 있다. 그나마도 음식점과 펜션이 들어선 주변의 계곡은 전혀 깨끗한 느낌이 아니다.

다행히 상가를 벗어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들머리의 계곡은 맑고 깨끗하다. 사람의 손길이 이토록이나 무섭다. 등산 초입부터 등산로 표시가 없어 애를 먹었다. 들머리에서 시작해 산으로 나 있는 길로 들어서니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이 끊어졌다. 계곡을 건너 반대편으로 등산로가 이어져 있는 것이 표시가 안 되어 있으니 알 턱이 없었던 것이다. 하산하는 길에 역시 그 길에서 등산로를 찾을 수 없어 애를 먹고 있는 등산객에게 길을 가르쳐 주어야 했다.

얕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건너 숲길로 들어서니 비로소 호젓한 느낌이다. 때는 바야흐로 장마철, 그리고 태풍 '에위니아' 소식이 제주도로부터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태풍 소식에도 불구하고 날은 찌는 듯이 덥고 뭉게구름이 유유히 떠가는 등 화창했다.

인적이 드문 탓일까, 청계산은 원시의 숲을 간직하고 있다.
인적이 드문 탓일까, 청계산은 원시의 숲을 간직하고 있다. ⓒ 김선호
잡풀들이 길을 막는 방화선, 멀리 청계산 정상이 보인다.
잡풀들이 길을 막는 방화선, 멀리 청계산 정상이 보인다. ⓒ 김선호
첫 번째 목표인 질마재를 향해 계곡을 끼고 걸었다. 대게의 숲이 산 중턱에 이르기까지 침엽수림이 한자리를 차지하고는 했는데 청계산은 의외였다. 처음부터 줄곧 낙엽활엽수들이 숲을 넓게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산길 주변에 키 작은 관목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영문을 알 수 없는 간벌구간엔 들녘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개망초와 잡풀들이 무성한 곳도 많았다.

여름이라도 숲은 질서정연함을 유지하는 법이다. 키가 큰 낙엽활엽수와 침엽수림 아래 키가 작은 관목들이 들어서 있고, 사이사이에 작은 들꽃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숲의 질서.

청계산의 몇 군데서 만나게 되는 간벌구간의 특이한 식생은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숲의 질서를 그곳에선 전혀 볼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방화선이란다. 그런데 유독 청계산에만 방화가 자주 일어나는 걸까? 방화선을 구축할 때 주변의 식생을 고려했다면 그런 식으로 외래식물이 산 한가운데를 턱 하니 차지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싶었다.

나무를 간벌한 방화선 주변엔 어김없이 개망초가 지천이었다. 길을 가다 문득, 들녘 주변에서 개망초를 만나면 나름대로 예뻐 보였지만 산 속에서 그것도 깊은 산중에서 개망초 무리를 만나는 일은 결코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개망초 뿐인가? 흔히 잡초라고 불리는 외래종 풀들이 주변을 점령해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들의 왕성한 번식력 앞에서 기가 질릴 정도였다.

시원한 조망을 보여준 청계산 정상.
시원한 조망을 보여준 청계산 정상. ⓒ 김선호
계곡을 따라가는 청계산 등반길에서 만난 산수국 군락지
계곡을 따라가는 청계산 등반길에서 만난 산수국 군락지 ⓒ 김선호
바짝 마른 청계저수지가 가득 채워지면, 청계산은 비로소 제 이름을 찾지 않을까.
바짝 마른 청계저수지가 가득 채워지면, 청계산은 비로소 제 이름을 찾지 않을까. ⓒ 김선호
가장 위태로웠던 구간은 질마재를 넘고 멀리 질마봉을 뒤로 하고 청계산 정상으로 향할 때였다. 바로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였고, 주능선을 점령한 개망초을 비롯한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길이 안보였다. 여차해서 발이라도 잘못 디디면 천길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았다. 머리위로는 따가운 뙤약볕이 쉼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산을 오르면서 보았던 산봉우리의 뭉게구름도 어디로 가버리고 없었다. 나무가 없는 자리에 칡이 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칡넝쿨이 주변식물을 감싸며 길까지 점령했고, 촉수를 뻗듯이 길 쪽을 향해 있는 칡넝쿨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해서 끔찍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렵사리 방화선 구간을 벗어나니 살 것 같았다. 산을 오르는 일이 늘 쉽지만은 않았지만 여름의 청계산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한숨을 돌리며 주변을 보니 앞쪽으로 질마봉이 우뚝하고 푸른물결이 출렁이듯 산능선이 사방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방화선을 벗어나면 정상까지 된비알이다. 다행히 철계단도 설치되어 있고, 로프가 잘 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정상을 올랐다. 정상에 올라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차라리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고 말지 양옆도 분간할 수 없는 잡풀이 무성한 길은 다시 걷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려가는 길은 질마재를 돌아서 올라온 반대 구간이다. 계곡을 낀 습한 등산로를 따라 산을 내려가면서 길이 미끄러워 몇 번인가는 미끄러질 뻔했던 것 같다. 좋았던 것은 계곡 주변에 피어있는 산수국 군락지를 만났던 것이다. 막 피어나는 산수국은 연보랏빛이다. 흔히 꽃이라고 착각하는 꽃봉우리 주변은 총포일 뿐인 가짜 꽃이라는데 가짜 꽃일망정 연보랏빛의 산수국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꽃 빛과 꽃 모양이 청초하고 우아하기까지 하다. 이 아름다운 꽃에 날비도 즐겨 앉는다. 산수국이 나비모양의 꽃을 하고 있어 꽃인지 나비인지 분간하기가 힘들다.

촉촉하게 젖은 숲길을 벗어나 하산을 얼마 앞두고 몇 군데의 개망초가 우거진 잡풀구간을 만났다. 목 언저리까지 올라오는 잡풀을 헤치듯 건너와 멀리 청계저수지가 보일 때,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인간의 손길이 미친 곳에 어김없이 생태계의 파괴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청계산이 조금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생태보전 구역인 청계산의 비생태적인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의 환경에 대한 현주소를 보았다면 과장일까? 청계산은 주변의 명지산과 더불어 조종천 상류에 속한 중요한 지류중 하나이다.

덧붙이는 글 | 조종천의 상류를 형성하는 청계산은 명지산과 더불어 희귀식물이 집단서식하는 생태보호 구역이랍니다. 보호 구역안 계곡을 따라 펜션과 음식점들이 들어와 있는 풍경이 다소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태계 보호구역, 구호가 아닌 실질적인 보호장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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