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5·31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난 뒤, 진보세력과 풀뿌리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시민운동단체에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갑갑함을 토로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그 해법을 지역에서,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며 실천하는 사람들에게서 찾으려 합니다. <오마이뉴스>가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함께 7월 1일부터 16일까지 전국을 돌며 '세상을 바꿔가는 현장보고서 - 희망버스의 16일간 전국일주'란 제목의 공동기획 기사를 연재하는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이 기간 동안 11인승 미니버스를 타고 전국 곳곳에서 느릿느릿 세상을 바꿔가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그리는 '대한민국 희망지도'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재래식 화장실에 붙어있는 '안티조선' 문구.
재래식 화장실에 붙어있는 '안티조선' 문구. ⓒ 김병기

[세상을 바꿔가는 현장보고서-16일간 전국일주] 공식블로그 바로가기

옥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정지환 <시민의 신문> 기자를 통해서였다.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인 < CBS >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을 진행할 때니까 꽤 오래 되었다. 충청도의 한 지역에서 <조선일보> 보는 사람이 거의 없게 만들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곤 한동안 잊고 있었다. 간혹 언론문화제 한다는 이야기로 옥천이야기가 흘러 지나가긴 했어도 그러려니 했고.

결국 옥천을 가보게 만든 것도 정지환 기자였다. 저녁방송 출연이 있던 날 핸드폰으로 문자가 들어왔다. 정지환 기자 부친상. 정 기자 고향인 여주로 가야했다. 밤 12시가 다 되어 도착하니 아는 얼굴이 거의 없었다. 그때 그 상가 구석에서 오한흥 대표를 만났다. 1시간도 안 되는 동안 오 대표 이야기에 웃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대낮부터 술잔 들다

대청호가 가까이 있다 해서 댁도 대청호 옆이냐 하였더니 대뜸 '아니 우리 집 옆에 대청호가 있다'는 그의 말 한마디는 그가 세상을 어찌 보고 사는 지 느끼게 해줬다. 3년 시한으로 옥천에 초청한다는 구두초청장을 받아들고 서울로 와서는, 며칠 후에 옥천을 수시로 다닌다는 정 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언제 가느냐고.

대전역에 내리니 오 대표가 맞는다. 3년 시한의 초청장을 너무 일찍 사용해버린 것은 아닌 지 모르지만 하여간 나로서는 언제 사용할 지 모르는 초청장이라 이왕이면 좀 짬이 나는 요즈음에 사용하지 않고는 기약 없는 일이라 염체 불구하고 와 버린 셈이다. 오후 무렵 도착한 셈인데, 결국 대낮부터 술잔을 들게 되었다.

오 대표 집 마당 한쪽에 마련된 화덕은 그 집을 찾는 사람들이 고기 굽고 둘러앉아 술잔을 기울일 수 있게 그가 직접 기둥을 세우고 천장을 만들고 화덕을 만든 것이었다. 불쏘시개가 들어가는 화덕 앞에는 '이문렬의 금시조 여기에 추락하다'는 글귀가 붙어 있다. 이문렬의 언행에 대한 냉소를 그렇게 희극적으로 표현한 '공간'을 만들어 새삼 <조선일보>를 생각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었다.

그 화덕 앞에서 권커니 잣커니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오 대표의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아예 MT를 할 수 있도록 별채를 만들었고, 별채 뒤에는 작은 연못도 하나 꾸며두었다.

화장실 문에 '똥만도 못한 조선일보'라 문구가 붙어 있는 것은 역시 <조선일보>에 대한 냉소를 희극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화장실 옆 닭장에 대한 그의 설명은 그것이 하나의 작은 우주라는 것이었다. 장닭과 암탉들이 어우러져 알을 낳고 이를 품어 나온 병아리들이 삐약 대는 소리는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이었다.

그곳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섭리를 알게 된다는 그의 말을 온전히 다 이해하기는 힘들어도 자연순환형으로 집안 곳곳을 설계해 놓은 그의 말에 비추어 보건대 자신의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운동과 생태를 이어가는 그의 생각 한 자락을 어렴풋이 느낄 것도 같았다.

방벽의 흔적... 자연스런 소통의 공간

화덕 앞에는 ‘이문렬의 금시조 여기에 추락하다’는 글귀가 붙어 있다.
화덕 앞에는 ‘이문렬의 금시조 여기에 추락하다’는 글귀가 붙어 있다. ⓒ 김병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바쁜 날이었다. 성공회대 최영묵 교수가 성공회대 신방과 학생들을 데리고 <옥천신문사> 강좌에 강사로 와 있었고, 과천시 공무원노조가 오대표 집으로 MT를 오기로 되어 있고, 성공회대 신방과 학생들도 MT를 할 모양이고 저녁엔 지역문화를 연구하는 아자센터의 노래마당도 열려 조그만 동네가 많은 사람들로 어느새 북적대고 있었다.

실컷 술이며 고기며 먹고 나서는 별채 작은 방에 정 기자와 앉아 <옥천신문>으로 시작된 옥천지역운동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기도 하니 굳이 옮길 것은 없겠다. 궁금한 사람들은 정지환 기자의 기록을 뒤져봐도 좋겠다.

과천공무원노조 사람들이 나서는 반딧불이 체험행사에 따라 나섰다. 오 대표 집에서 대청호 가까이까지 왕복으로 3시간이 좀 넘게 걸리는 밤길이었다. 그저 반딧불이 한 두 마리쯤 보려니 하는 생각들로 나섰던 길이 수많은 반딧불이를 보게 되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나오고 새벽녘에야 다시 돌아왔다.

아침 해장을 올갱이국으로 하고는 새삼스레 MT공간을 둘러보게 되었다. 방 벽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을 남겨 놓았다. 그곳은 자연스레 형성된 소통의 공간이니 이름과 연락처를 남겨놓는 수고를 해달라는 오 대표의 말대로 몇 자 적어 놓고 나왔다. 사회운동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름깨나 들어봤음직한 사람들부터 평범한 사람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한 마디 이야기가 아무런 질서 없이 적혀 있었다.

자신의 집에 연출한 무대와 공간

오한흥씨.
오한흥씨. ⓒ 김병기
그는 지금 <옥천신문> 대표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자기 집을 지키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자신의 집이 하나의 무대고 연출된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 들어서는 사람은 그 순간 그 공간이 담고 있는 문맥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들어선 사람이 그 문맥을 온전히 이해하든 그렇지 않든 다 자기방식으로 소화하는 것이니 굳이 '대본'대로 말하고 행동해야 될 일은 없다. 그저 누구나 다녀가는 것이지만 그들을 맞는 오 대표는 자신이 생산한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누구건 그들과 이야기하고 관계 맺는 셈이었다. 모두가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고 전달받는 셈이다.

결국 오 대표는 스스로 중심이 되려 하진 않지만 자신이 만든 공간을 매개로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또 다른 하나의 중심이 되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공간으로 여러 다양한 세계를 불러들이고 있는 셈이다. 뭐 굳이 무엇을 만들려 하지 않으니 무엇으로 발전할까를 궁금해 할 이유는 없을 것이고 단지 그 소통의 범주가 어디까지 확대될 것인지는 눈여겨볼 일이다. 그 소통의 범주가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어디로 가는 지 그 일단을 볼 수도 있을 터이다.

머리를 비워야 할 일이 있거든 아무 생각없이 옥천을 한번 휭 하고 다녀오는 것도 괜찮은 일인 듯싶다.

[클릭!] 풀뿌리운동의 희망씨앗을 심어주세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