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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농사만 지으며 살았던 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제가 씨를 뿌려서 뭔가를 키워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단지 부모님이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시키는 것만 했을 뿐이지요. 그렇게 살다 올해 처음 작은 평수에 밭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조그만 짜투리 땅이 있어 그곳에 뭘 심을까, 봄내 고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결국 심은 것들이 감자, 배추, 상추, 고추, 땅콩, 들깨, 옥수수 등입니다. 감자는 일찍 심으면 좋을 것 같아 심었더니 꽃샘추위로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도 첫 수확의 기쁨을 누리며 고마운 분들께 조금씩 선물을 하였고요. 고추는 열기가 무섭게 따서 먹습니다. 옥수수도 잘 여물어가고, 상추는 봄내 맛있게 잎을 만들어 주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땅콩이었습니다.

▲ 태풍이 오기 전의 모습니다. 나름대로 풀을 뽑고 태풍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 배만호
처음에 땅콩을 심으려고 고랑을 만들 때에 지나가시던 동네 할머니께서 몇 가지 충고를 하시더군요.

"땅콩은 저리 심으믄 안되는디… 땅콩은 고랑을 넓게 맹글어야 혀."

하지만 저는 그냥 제 고집대로 했습니다. 할머니는 두고 보라는 식인지, 더 이상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젊은 총각이 밭농사를 짓는 모습이 대견스러운지 제가 호미를 들고 풀을 뽑을 때마다 오셔서 하나씩 가르쳐 주시더군요.

'나도 나름대로 배운 게 있는데….'

이런 생각으로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제 고집으로 하였지요. 어떤 날엔 밭두렁에 있는 풀들이 말라 죽은 일도 있었습니다. 저는 일부러 좀 키웠다가 베어 퇴비로 쓸 생각이었습니다만 할머니의 생각은 달랐나 봅니다. 바빠서 풀을 베지 못하는 줄 알고 제초제를 뿌려주신 것이지요. 할머니의 성의도 있고 해서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냥 제가 할머니보다 더 부지런히 일하고,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만 가졌지요.

▲ 잘 될는지는 저도 모르는 농사 방법입니다.
ⓒ 배만호
귀농하여 산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데, '농약은 왜 안 치냐', '풀은 왜 키우냐', '비료를 안 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냐' 등등입니다. 오랫동안 해온 농사 방법이 아닌 약간 이상한 농사를 짓다보니 마을 사람들의 입에는 늘 새로운 농사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립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느 농민은 사과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워낙 동네 어르신들께 이런 말을 많이 듣다보니 이젠 설교처럼 들린다고 합니다. 문전옥답이라는 말처럼 사과나무가 있는 곳에 집을 짓고 사는데, 어쩌다 한 번씩 동네 어른들이 오시면 기본이 세 시간이라고 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마을에서 약간 떨어져 있다는 것이지요. 가까이 살았다면 그 설교에 넘어갈 뻔했다고 합니다.

농약을 치지 않고, 비료를 하지 않고 땅콩을 키우는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고랑을 만드는 것은 할머니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땅콩이란 게 약간 신비한 생물입니다. 꽃은 줄기에서 피어나고 열매는 땅 속에서 맺힙니다. 줄기에서 핀 꽃이 수분이 되면, 뿌리 같은 게 길게 아래로 내려와서 땅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그곳에 땅콩이 달리는(?) 것이지요. 할머니는 그래서 고랑을 크고 넓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저는 좁고 높게 만들었거든요. 장마에 비 피해를 입을까봐 그런 것이었습니다.

▲ 속살을 드러낸 땅콩입니다. 얼마나 부끄러울까요?
ⓒ 배만호
비가 내리지 않아도 땅콩의 하얀 뿌리가 드러나 보이더니 지난 태풍으로 더 많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얀 속살을 드러낸 것은 땅콩인데, 오히려 제가 부끄럽습니다. 저 때문에 땅콩이 속살을 드러냈으니까요.

하는 수 없이 무성한 줄기를 아래로 눕히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조금이나마 꽃과 흙이 가까워지도록 만들어 주려는 것이지요. 그러면 영양 손실도 적을 것 같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는 아무 말도 안 하시는 할머니의 표정이 묘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이런 방법도 있습니다'라는 듯이 일을 했지요. 하지만 내년에 또 땅콩을 심게 된다면 그때는 곡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할머니의 밭입니다. 아들과 밭일을 하고 계시네요. 산에서 내려온 노루가 콩잎을 뜯어먹지 못하게 대나무를 두려고 하는 모습입니다.
ⓒ 배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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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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