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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과 수이가 가는 방향으로는 나무 없이 풀만 자라는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지나야 했다. 그곳을 지나는 것은 필연적으로 굶주림과 갈증에 맞서 싸워나가는 것을 의미했다.
-이리로 가면 맛있는 과실 따위는 당분간 없어.
솟의 말에 수이는 이미 알고 있다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어쩌면 물 한 방울, 벌레 한 마리조차 보기도 힘들지 몰라. 하루가 넘어가기 전에 지나가는 게 좋을 거야.
솟은 수이까지 데리고 험한 곳을 넘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행여 수이가 중도에 포기라도 하지 않도록 솟은 수이에게 어려운 길임을 주지시켰다.
산등성이에 접어들수록 굵은 나무들이 점차 줄어들더니 한참을 지나서는 풀조차 드문 황량한 곳이 펼쳐졌다. 게다가 고운 흙보다는 모난 돌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빠른 걸음으로 길을 가기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거친 황무지는 넓기까지 해서 이곳을 뛰어간다고 해도 하루 만에 지나 갈수는 없었다.
솟과 수이는 커다란 바위 뒤에 몸을 웅크리고 끌어안아 서로의 체온을 나누었다. 솟의 품안에는 좋은 부싯돌이 있었지만 주위에는 불씨를 옮겨 붙일만한 그 어떤 것도 구할 수 없었다. 멀리서 알 수 없는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리기는 했지만 가까이에서는 벌레조차 기어가지 않았다. 사방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고 그 날은 달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이럴 때 사나운 짐승들의 공격이 있으면 속절없이 당할 위험도 있었다. 불안해하는 수이를 안고 솟은 눈을 부라리며 주위를 살폈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려주던 예전의 낭만이 그리웠지만 정든 곳을 떠나온 지금에는 그런 것을 따질 여유조차 없었다.
-답답하지 않아?
솟이 너무나 꼭 끌어안고 있자 금방 잠이 들기도 힘들어진 수이가 속삭였지만 솟은 침묵을 지켰다. 불도 없는 마당에 이런 곳에서 섣불리 소리를 내었다가는 어디에선가 몸을 숨기고 있을 포식자가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고 수이의 말을 모진 말로 매정하게 무질러버릴 수도 없어 솟은 침묵이라는 차선책을 택한 것이었다. 수이는 솟의 의중을 곧 알아차리고서는 애써 잠을 청했다.
황량한 대지에 한바탕 거친 밤바람이 휘몰아쳤다.
솟은 수이를 꼭 끌어안으며 그간 삼켜왔던 눈물을 흘렸다. 이상한 짐승들의 위협을 피해서 낯선 곳으로 발길을 옮겼지만 솟은 사실 자신이 살아온 정든 터전을 떠나기 싫었다. 솟의 소망이 있다면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정든 땅에서 살아가며 많은 자손을 낳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솟은 남들보다 더 빠르고 용맹하게 사냥감을 낚아채는 방법을 몸에 익혀왔다. 그것은 자기 자신만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먹을 만큼의 부분 외에는 타인의 몫이었고 언제나 이것을 챙겨줄 수 있는 솟의 능력은 남들의 존경을 받고도 남을 수 있었다. 결국에는 궁극적으로 솟과 그의 가족들은 모든 이들의 존중을 받으며 번성해 나갈 터였다.
이제는 그런 존중을 줄 이들도 받을 수 있는 이들도 모두 죽고 없었다. 솟이 미워했던 자들도, 사랑했었던 모든 이들도 모두 이상한 짐승의 짓으로 숯덩이로 변해 정든 땅의 대지에 잠들어 버렸다. 솟은 모든 것을 잃었다. 아니, 수이만은 솟의 곁에 소중하게 남아 있었다. 솟이 살아가던 가치와 모든 이들을 위하던 마음은 이제 수이 하나만을 위해 집중되어 있었다. 솟에게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지만, 만약 수이를 잃는다면 자신 역시 살아갈 의미가 없어지는 셈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라는 느낌에 가슴 속이 찌릿해져 왔다.
밤이 더욱 깊어지자 솟도 마침내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솟은 잠을 억지로 참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억지로 잠을 참고 주위의 어떤 위협이 수이를 노리고 있는지 끊임없이 신경을 곤두세워야했다. 그러다가도 잠시 동안 솟은 자신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지만 곧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는 바람 한 줄기에도 깜짝 놀라 잠에서 퍼뜩 깨어나곤 했다. 솟은 그렇게 아침까지 수이를 품에 안고서 밤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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