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에 이은 두 번째 '고구려 드라마' <연개소문>이 시작됐다. 1, 2회의 안시성 전투 장면에만 몇 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컴퓨터 그래픽을 써서 웅장하게 만들었으며, 이 두 회를 만드느라 6개월이 지나갔다고 한다. 안시성 전투를 어떻게 표현했을 지가 궁금해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4회까지 끝난 현재, 기자의 솔직한 심정은 우려 반 기대 반이다. 판타지에 가까운 <주몽>과 달리 <연개소문>은 사료에 충실한 드라마로 만들겠다고 작가는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실제 드라마는 작가의 말과 달라 보였다.
연개소문의 오른팔 양만춘?
당 태종이 침입하던 당시 안시성의 성주의 이름을 보자. <삼국사기>는 이름을 모른다고 하였고, 전설은 양만춘이라고 했다. 삼국사기 권 제21 고구려 본기 보장왕 상 4년(645년)에 의하면, 당 태종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내가 듣건대 안시성은 험하고 군사들이 강하며, 그 성주는 재주와 용맹이 있는 사람으로 막리지(연개소문)의 난에도 성을 지켜 굴복하지 않았으므로, 막리지도 이를 함락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맡겼다고 한다."
안시성 성주는 영류왕을 시해하고 정권을 잡은 것에 반대했다. 이에 격분한 연개소문이 군사를 이끌고 싸우러 왔지만, 성주를 이기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사료에 의하면, 연개소문은 안시성주를 굴복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두었을 뿐 결코 성주가 연개소문의 오른팔은 아니었다.
작가는 당 태종이 돌아가면서 연개소문에게는 활과 화살을 하사하고 안시성주에게는 성을 잘 지켰다고 비단 100필을 하사한 것으로 보아, 연개소문이 그 성안에 있었을 것으로 가정하고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했다.
국가의 존망이 달린 전쟁이니 어쩔 수 없이 화해하고, 연개소문이 안시성에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연개소문은 전체 전쟁을 총지휘하는 인물이니 평양성에 있거나 전선에 가더라도 좀 더 안전한 다른 성에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설사 안시성이 함락 당하더라도 제2, 제3의 성에서 계속 싸워야 하니 말이다.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에 딴죽 걸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사료에 근거한다면, 안시성에 연개소문이 왔더라도 둘이 날카롭게 대립했을 것이다. 아니라 해도 적어도 안시성주가 연개소문의 심복 같은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작가의 몫이니 여기서 기자의 의견을 접는다.
이세민의 '오버'... 지나친 연개소문 띄우기
선 굵은 남성 드라마 전문작가라서일까? 아니면 우리에게도 우러러 볼 영웅을 제시하고 싶어서였을까?
연개소문은 그야말로 천하무적에 불세출의 영웅이다. 당군이 쌓은 토성을 점령하는 계획도, 성을 지키는 계책도 모두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기자는 안시성주 또는 백성들의 계책이라 믿고 있다).
최고 권력자가 직접 무기를 들고 전쟁터 맨 앞에 나서고, 달려드는 적은 그의 창에 우수수 쓰러진다. 그야말로 문무를 겸비하셨다.
적인 이세민조차 연개소문을 칭찬하느라 침이 마른다. 시청자는 왜 우리가 이런 위대한 장군을 지금까지 몰라봤는지, 식민사학에 철저히 물든 국사 교육을 받아서가 아닌지, 살짝 의심스러워진다.
연개소문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 자체에 불만은 없다. 주인공이 연개소문이고, 작가가 중국에 의해 악인으로 왜곡된 그를 제대로 복원해 내겠다하였으니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전쟁터에서 선봉서기, 이세민의 칭찬, 아랫사람들의 무조건적인 머리 숙이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잘 짜인 이야기 속에서 시청자가 스스로 연개소문을 영웅으로 인식해야 성공한 영웅 드라마가 되기 때문이다.
장황한 이세민의 연개소문 칭찬을 들으면서, 이것이 '오버'라는 느낌이 살짝 스쳐지나갔다.
단군성조, 치우천황, 배달국... '야사' 너무 따라간다
이에 황제(黃帝)가 무력으로 제후들을 정벌하였는데, 치우(蚩尤)는 가장 포학하여 정벌하지 못하였다. ……황제가 치우와 탁록에서 싸워 드디어 잡아 죽였다. - <사기> 권1 오제본기 황제조
황제가 응룡에게 명하여 치우를 공격케 하자 치우의 제후인 풍백과 우사가 큰 풍우를 일으켰다. 왕제는 이에 천녀 발(魃-가뭄귀신)을 보내 비를 그치게 하였다. 비가 그치자 드디어 치우를 죽였다. (산해경)
강단 사학계도 치우를 우리 조상으로 보고 있다. 치우는 청동기 시대 맥족(貊族)의 군장으로 "구리 머리에 쇠얼굴을 했고 모래와 돌을 먹으며 칼, 창, 활로 천하에 위엄을 떨쳤다"는 기록으로 보아, 중국과 대등한 청동기 문명을 지녔던 세력으로 보인다.
또한 풍백, 우사 등 단군 신화가 연상되는 신하를 거느리고, 고구려 관직 '형(兄)'이 연상되는 형제의식으로 조직된 사회를 이끌었다. 이런 치우기에 붉은 악마의 상징으로 집행부가 잘 골랐다고 생각했던 터였다(국사교육자료집 - 국사교육연구회편, (주)교학사, 1989 참고).
<연개소문>은 고구려 사람들이 단군성조, 치우천왕, 환웅천왕을 받들고 배달국의 후예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잠시 놀랐다. 단군이야 지겹게 배웠으니 설명이 필요 없고, 치우는 위에서 언급했듯 점차 인정받는 추세지만, 배달국의 존재는 아직 인정받지 못한 고대사 사서에만 등장하기에 조심스럽다.
작가는 야사(野史)를 많이 참고하고 작가적 상상력을 펼친 듯하다. 야사의 사료적 가치를 부정하는 바도 아니고, 정사가 전혀 왜곡되지 않은 올바른 역사라고 보지도 않는다.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은 존중해 주고 싶다. 다만, 인정받지 못한 고대사 사서들이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너무나 강조하기에 드라마가 그것을 따라가는 것인가 싶어 조금 마음에 걸릴 뿐이다. 사료에 충실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판타지가 아닌 정극(正劇)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등장인물마다 '역사 강의'... 시청자는 지루해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시청자들이 아직 인정받지 못한 고대사 사서들의 기록에 익숙하지 못하다 보니 이것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역사 강의를 시켰다. 영양태왕이 수나라 사신들을 감금하고 태제(太弟)에게 역사 강의를 하는 장면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외교를 주장하는 태제에게 고구려의 위대한 정신을 강의하여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수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사옵니다"라고 말하는 부하에게 '조의'에 대해 설명하는 연태조의 모습은 그저 역사 강의일 뿐이었다. 안시성에서 전쟁의 승리를 기도하다 조의 수장에게 강의하는 연개소문의 긴 대사도 역시 역사 강의에 불과했다.
문득 <주몽>에서 사용이 소서노에게 마가(馬加)에 대해 설명해 주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것도 분명 역사 강의다. 하지만, 소서노는 부여인이 아닌 계루부의 사람이니 마가를 모를 수도 있고 사용이 그렇게 설명해 줄 수도 있다. <주몽>에서의 역사 강의는 그다지 무리 없이 극의 전개에 자연스럽게 융합되어 있었다.
어린 연개소문이 김유신 집안의 일꾼이 되는 장면에서 김서현이 삼족오를 설명하는 모습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이 장면은 김서현이 삼족오를 보고 놀라고 연개소문이 고구려 아이인 것을 짐작한 것으로 충분했을 장면이었다.
하지만, 어린 김유신의 형제자매를 보여주고자 함인지, 삼족오를 설명하고자 함인지, 김서현은 아이들에게 삼족오를 설명했고, 그다음 부인이 등장하여 부자연스럽게 아이들을 퇴장시킨다.
역사 강의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사람들이 사극을 보는 즐거움 중 하나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며 자연스레 역사도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강의는 이야기 속에 자연스레 녹아있어야 한다. 겉돌아서는 안 된다.
아직 많이 시도하지 못한 고대사 부분이기에 어려움이 커서 일 것이다. 한국인은 화려한 액션보다도, 눈부신 영상미보다도 탄탄한 스토리를 좋아한다. 이야기가 탄탄했기에 <왕의 남자>도 흥행에 성공했던 것이다.
진정 동북공정에 대항하려면...
<연개소문>을 보며 가장 거슬렸던 말은 '민족'이라는 말이었다. 기자는 민족주의에 긍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이고 우리 민족의 통일과 발전을 염원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고구려 시대 때 과연 민족이라는 말을 썼을지 의문이다. 신라와 백제를 같은 민족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한숨까지 나왔다. 언어가 비슷했다고는 하지만, 그 당시 삼국은 서로를 같은 민족으로 인식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는 드라마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연개소문>에는 구석구석 한민족의 위대함을 강조하고 민족의 자부심을 강조하는 모습이 들어있다.
기자 역시 중국의 동북공정에 분노했고, 그 해결책은 고구려를 소재로 한 멋진 드라마를 만들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개소문>의 해결방식은 2%의 부족함을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 사람만 고구려사가 우리 역사라고 떠든다고 동북공정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인이 고구려사가 한국사라고 인정해야 해결된다.
그러기 위해 <연개소문>은 국내용 드라마여서는 안 된다. 진정 동북공정에 대항하고 고구려사를 세계에 바르게 알리고자 한다면, 중국 수출이야 당연히 힘들겠지만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여야 한다.
지나친 영웅 만들기이건 말건, 역사 강의를 해서 스토리랑 따로 놀건 말건, 우리 한국인만 통쾌하게 보는 드라마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현재 <주몽>은 시청률 40%를 넘으며 <대장금> 못지않은 흥행 가능성을 조금씩 보이고 있다. 과연 연개소문은 어떻게 될 것인가. <연개소문>의 성공을 기대해 본다.